AI 도입으로 노동소득분배율 하락 조짐
제조·금융·행정 직무 등 AI 자동화 직격탄
노동시장 양극화 심화 가능성
‘2025 부산청년 글로벌 취업박람회’가 열린 지난달 10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에서 청년구직자들이 구인업체 담당자와 채용 면접 및 상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른 속도로 노동시장을 재편하면서, 한국 사회의 경제적 허리인 ‘중산층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단순 반복직을 넘어 금융, 법률, 회계 등 고도의 지식 전문직까지 AI의 자동화 영역이 확장되면서 노동시장 양극화가 가속되는 모양새다.
국내 취업자 34%, ‘AI 대체 고위험군’
AI 기술의 확산은 과거 산업혁명의 기술 변와와는 질적으로 다른 충격을 주고 있다. 일하는 인간의 기계에 대한 공포는 1811년 영국의 방직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했던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증기기관을 비롯한 기계는 인간의 육체 노동을 대체하며 노동의 분야를 육체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으로, 저부가치에서 고부가치 영역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범용 기술의 특성을 가진 AI는 이제 인간의 ‘생각’, 즉 복잡한 패턴 인식과 판단이 필요한 인지적 업무 영역까지 대체하는 질적으로 다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용시장의 핵심 문제는 이 충격의 진앙지가 바로 ‘중간 숙련 직무’라는 점이다.
한국고용정보원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하반기 기준 국내 취업자의 34.5%가 AI 기술 대체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직무’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제조업 생산직, 은행 창구 직원, 공공기관 행정직 등 경제 구조의 중심이던 중간 기술직이 집중적으로 타격을 받으면서, 고용 양극화 구조는 상위 전문직 강화-중간직 소멸-저숙련직 확대로 심화되고 있다.
AI 자동화과 기존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대체효과’와, 자동화 부문에서 고용 창출이 덜 이뤄지며 숙련된 노동자에게만 이득이 집중되는 ‘자본-숙련 상보성 효과’가 결함된 결과다.
AI는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노동소득분배율을 감소시키고 자본소득과 노동소득 간의 격차를 확대해 사회적 불평등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춘 대기업과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 간의 AI 도입 격차는 산업 내 양극화를 부추겨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생산’에서 ‘의미 창출’로…변화하는 노동본질
AI 시대의 노동 문제는 단순히 일자리 개수 감소를 넘어 ‘노동의 질’이라는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노동의 본질이 ‘생산’에서 ‘관계, 판단, 창의, 공감’ 등 인간 고유의 ‘의미 창출’ 영역으로 이동하는 시점에서, 정부는 패러다임 전환에 필요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보고서는 AI 시대에 요구되는 역량이 단순한 기술보다 ‘AI의 고도화와 사회적 역량의 강화’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예건대, 단순 번역이나 회계 입력처럼 정형화된 업무는 AI가 대체할 가능성이 높지만, 반대로 인간 고유의 언어감각, 맥락 이해, 윤리 판단, 창의적 사고, 협업 능력, 사회적 책임감 등은 여전히 인간이 중심이 될 수 있는 영역이다.
이를 위해 단기적으로는 AI 대체 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직무 전환 프로그램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AI를 인간 노동의 대체제가 아닌 보완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AI 협업 역량 교육을 통해 중산층 붕괴 속도를 늦춰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AI 생산성 향상 이익이 노동자에게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하는 제도적 방안을 모색하고, 중소기업 노동자의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한 재정 및 기술 지원책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일부 직종은 AI 기술 덕분에 생산성 향상을 경험할 것이기 때문에 불평등은 심화할 것”이라며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한 대응, 불평등 심화에 대한 대응은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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