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추진 잠수함과 K-팝 데몬 헌터스의 공통점은?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12.16 07:07  수정 2025.12.16 07:07

은밀하게 활동하는 평화지킴이로

올 한해 빛낸 최고의 굿 뉴스….

헌트릭스의 황금혼문처럼

핵잠 목표도 ‘궁극의 억제력’

ⓒ 데일리안 DB

어김없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5년. 나쁜 기억은 다 지우고 좋은 일로만 국내 10대 뉴스를 선정한다면 뭘 꼽을까? 아마 두 가지는 꼭 넣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케이팝데몬헌터스(일명 케데헌) 열풍, 다른 하나는 핵추진 잠수함 시대의 가시화다. 둘은 아무 관계 없지만 묘한 연상을 준다.


‘케데헌’은 판타지 애니메이션의 오글거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OST 주제곡 ‘골든(Golden)’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미국 빌보드차트를 비롯한 전 세계 팝 랭킹에서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웠다. 덕분에 한국을 찾는 외국인도 부쩍 늘었단다. 업,업,업(Up, Up, Up) 리듬처럼 신나는 일이다.


매력적인 3인조 걸그룹 헌트릭스는 노래를 통해 악령을 물리치며 은밀하게 평화를 지킨다. 팬들의 환호와 열광이 뜨거워질수록 악령의 침입을 막는 혼문의 방어력은 강해진다. 마침내 황금혼문이 형성되면 대마왕인 귀마도 꼼짝 못 하게 봉인된다.


사실 핵추진 잠수함이 지향하는 목표도 바로 그런 것이다.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라는 냉엄한 국제질서 속에서 핵잠은 황금혼문 같은 ’궁극의 억제력‘이다. 판타지가 아니라 실존하는 비대칭 전력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한국의 핵잠 보유는 지난 10월 경주 한미 정상회담 의제로 거론된 이후 후속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핵잠 건조를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 것인지는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풀어갈 과제다. 다만 일반 국민으로선 잠수함에 담긴 비밀과 과학상식을 이해하면 그 의미를 더 잘 새기지 않을까 싶다.


일단 잠수함은 그 자체로 엄청 무서운 무기다. 바다와 접한 나라들은 모두 잠수함을 갖고 싶어 한다. 그 무서움은 ‘은밀성’에서 나온다. 헌트릭스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약하며 적을 제압한다. 그래서 별명도 ‘침묵의 암살자’다.


잠수함의 은밀성을 지켜주는 기본원리는 ‘물의 과학’이다. 물속에는 전파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 수심 몇 미터만 들어가도 대부분 흡수된다. 전자기파 일종인 빛이 깊은 물 속에 닿지 못하는 것과 같다. 육상과 공중에 촘촘한 감시망을 가진 레이더와 인공위성이 잠수함엔 안 통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물속이라 해서 은신에 유리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수중에서는 소리가 더 잘 퍼진다. 물의 밀도는 공기의 800배에 이른다. 작은 소음도 훨씬 멀리, 훨씬 선명하게 전달된다. 그래서 잠수함에겐 음향을 탐지하는 소나(Sonar)가 감각기관이다.


잠수함은 한마디로 수중음향 기술의 집약체다. 프로펠러 회전, 금속 마찰, 방향 전환에서 나오는 모든 소음과 진동이 소나의 먹잇감이다. 남의 소리를 수동적으로 들을 뿐 아니라 먼저 음파를 쏜 뒤 반사되는 소리를 분석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상대방 위치를 파악하고 어뢰도 추적한다.


반대로 나의 노출과 소음을 최소화하는 장치도 많다. 잠수함 선체는 물살 가르는 소리를 줄이도록 매끈한 유선형으로 제작된다. 외벽엔 물고기 비늘처럼 무향타일을 붙여 스텔스 성능을 높인다. 함 내부에선 엔진의 진동을 막기 위해 고무, 스펀지 같은 탄성체로 감싼다.


평상시 잠수함의 최적속도도 ‘조용한 속도(Quiet Speed)’라 부른다. 너무 빠르면 소음이 커지고 너무 느리면 기동성이 떨어진다. 승조원들은 유사시 숨소리, 발걸음 소리까지 줄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바닷속 전쟁에서 침묵은 곧 생존성이다.


그러나 잠수함엔 치명적 약점이 있다. 공기를 얻기 위해 일정 주기로 수면 위로 올라오거나 스노클링을 해야 한다. 발각 위험이 가장 높아지는 시점이다. 이 때문에 잠수함에 동력을 공급하는 추진체계가 핵심 변수가 된다.


한국은 디젤연료를 사용하는 재래식 잠수함 분야에선 이미 세계 정상급이다. 한화오션이 만들어낸 장보고-III 배치-II 잠수함(장영실함)은 공기불요추진체계(AIP)와 리튬이온전지를 장착해 잠항시간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이 모델로 캐나다를 비롯한 세계 메이저 시장에서 치열한 수출 경쟁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연소시키는 방식엔 한계가 있다. 아무리 효율을 높여도 핵추진체계를 따라잡긴 어렵다. 핵잠 동력은 소형원자로(SMR)다. 핵분열을 이용해 추진력을 얻는 과정엔 공기 자체가 필요 없다. 물속에서 수개월간 버티는 것은 물론 강한 출력으로 장시간 고속기동을 할 수도 있다.


한국은 잠수함과 원전분야에서 모두 세계적 기술력을 갖고 있어 핵잠 건조역량엔 큰 걸림돌이 없다. 다만 핵연료 사용에 대한 국제적 제약이 강하기 때문에 그동안 승인을 받기가 어려웠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해소되면서 한국의 핵잠 보유가 비로소 공식화하게 된 것이다.


핵잠은 존재만으로도 국가간 역학관계와 해양질서를 바꿀만한 요소다. 실제 건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황금혼문 같은 강력한 방패가 될 것이다. 핵잠에 관한 다양한 의견은 있을 수 있어도 국가안보엔 한 치의 빈틈도 있어선 안 된다. 정신줄을 놓으면 언제 도깨비들에게 영혼을 털릴지 알 수 없다는 게 케데헌의 핵심 주제 아닌가.

글/ 이동주 한화오션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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