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건 아니고 일시정지’ 이재문 작가, 포기하지 않는 희망 [D:인터뷰]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입력 2026.01.11 14:05  수정 2026.01.11 14:05

'몬스터 차일드' 이재문 작가 신작

'환생' 키워드로 선사하는 '힐링'

크리처물의 재미를 담으면서도, 장애를 향한 사회적 시선을 꼬집으며 어린이·청소년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던 ‘몬스터 차일드’의 이재문 작가가 이번에는 청년들을 위로했다.


‘죽은 건 아니고 일시정지’를 통해 삶과 죽음 사이, ‘환생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팍팍한 현실 속 희망을 이야기했다. 음악을 목표로 달리지만, 팍팍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든 주인공 유일해를 비롯해 갑질에 지친 중년 교사 영수를 비롯해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 중학생 은비 등 저마다의 아픔을 가진 캐릭터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상처를 극복해 나간다.


‘환생’이라는 판타지적 키워드를 통해 흥미를 유발하는 동시에, 이 작가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위로를 선사하는 힐링 소설이다. 어른을 위한 이야기가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 출판사의 제안을 받고 청소년과 어른 사이. 방황하는 청춘들을 목표 독자로 삼았다.


“입시에 치여 소설을 접하기 힘든 고등학생, 어떤 소설을 읽어야 할지 고민하는 새내기 대학생, 그리고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초년생들. 그들에게 소설이 위로와 즐거움이 되고, 동시에 호기심과 몰입감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시대를 살아오며 제 안에 차곡차곡 쌓인 고민과 의문, 감정들을 이야기라는 매체를 통해 나누고 싶었다.”


환생을 꿈꾸는 캐릭터들의 내면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는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그러나 이 작가는 좌절감 대신 ‘이생망’ 뒤, 숨은 희망을 포착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잘해 낼 수 있을까?’라는 익숙한 질문 ‘이후’ 필요한 고민들을 짚어낸다.


“모든 기억을 지닌 채 환생해 이른바 ‘갓생’을 산다는 식의 이야기는 분명 대리만족을 안겨준다. 그런 통쾌함을 전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래 봤자 이야기야. 내 현실은 바뀌지 않아’라는 좌절감에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이생망’은 정말로 자기 인생이 망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반어적인 뜻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생을 잘 살아내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으니까 자조적으로 던지는 말이 아닐까. 물론 너무 쉽게 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아직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희망의 기준이 지나치게 획일화돼 있다는 데 있는 것 아닐까. 나만의 기준이 아니라 타인의 기준을 절대적인 선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미치지 못하면 자기 인생을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태도야말로 진짜 ‘이생망’일지 모른다. ”


이 같은 메시지를 탄탄하게 풀어낸 것은 이 작가의 역량이었다.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에 좌절한 유일해의 감정도 섬세하게 포착됐지만, 중학생 은비부터 70대 노인 정식까지. 다양한 세대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풀어내며 독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지만, 그 중심에는 캐릭터를 향한 깊은 이해가 있었다.


“디테일은 경험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겪은 일도 있지만, 매체를 통해 접하거나 주위에서 들은 이야기들 역시 제 안에서 필터링을 거친다. 더불어 쓰다가 만 미완의 원고들 또한 경험의 원천이 됩니다. 제 하드 속에 잠들어 있는, 이른바 ‘원고의 무덤’에서 소생한 것들이다. 이렇게 다양한 경험들이 얽히고설킨다. ‘죽은 건 아니고 일시 정지’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잘 아는 직업들, 제가 만나본 아이들, 보고 들었던 여러 사연들이 제 머릿속 ‘상상의 용광로’에서 부글부글 끓고 제련돼 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다만 그 안의 핵심, 즉 ‘감정’만큼은 원형을 보존하려 노력한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누군가는 분명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의 형태가 작품의 디테일을 완성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교사로서의 경험, 느낀 바도 녹아있다. 이 작품에는 ‘몬스터 차일드’처럼 학생이 주인공은 아니지만 환생 학교라는 설정을 통해 교사 이재문의 강점을 살렸다. 그는 “학교는 따분하고 갑갑한 공간, 감옥처럼 느끼는 시선도 있지만 관계를 배우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장소이기도 하다”며 학교의 장점을 강조했다.


실수와 실패가 허락되는 공간에서, 주인공들의 ‘일시정지’를 따뜻하게 응원한 이 작가였다.


“학교에서조차 실수가 허락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실패를 안전하게 배울 수 있을까. 체육 시간에 바닥에 까는 매트처럼, 넘어져도 충격을 흡수해 주는 완충 지대가 되어주는 곳, 학교는 내게 그런 공간이다. 청소년들은 그곳에서 잘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우리 앞에는 딱딱한 아스팔트만 놓여 있는 것 같다. 실은 어른에게도 여전히 매트가 필요하다.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차가운 바닥에 내쳐진 인물들에게 ‘환생 학교’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함께 들어주는 쉼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앞으로도 이 작가가 바라는 세상을 글로 풀어낼 계획이다. 지금까진 힐링에 방점이 찍혔지만, 장르나 타깃 독자보다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에 집중하겠다는 이 작가가 또 어떤 흥미로운 작품으로 돌아올지 기대를 모은다.


“내가 바라는 이상 세계를 작품 속에 녹여내고 싶다. 그 작품이 동화일 수도 있겠고, 청소년 소설일 수도 있겠고, 어른 독자들을 위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고 싶다. 다양한 삶을 상상하는 일은 즐겁다. 저는 앞으로도 세상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한다. 저와 함께 그 목소리를 들어줄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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