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트럼프발 '관세 쇼크'에 하루 만에 충돌 양상

김주훈 기자 (jhkim@dailian.co.kr)

입력 2026.01.28 00:10  수정 2026.01.28 00:10

트럼프, 돌발 '관세 인상'에 與 '당혹감'

'국회 비준' 산 넘어야 할 대미투자법

野, '깜깜이' 한미합의에 '비준' 필요성

제기…"이면 합의 의심 들어"

이재명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9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경북 경주박물관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연합뉴스

갑작스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쇼크'가 '이해찬 정국'에 빠져 있던 정치권을 강타했다. 한국 제품에 대한 관세가 15%에서 25%로 인상된 배경으로 지목된 것은 '대미투자특별법' 처리 지연이다. 법안만 처리되면 해결될 문제이지만,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두고 입장이 엇갈리는 탓에 처리까진 진통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는 27일 우원식 국회의장 주재로 회동을 진행했다. 오는 29일 본회의 상정 안건부터 대미투자법, 통일교·공천헌금 '쌍특검' 등 여러 사안이 논의됐지만, 여야 입장만 확인한 채 마무리됐다.


여야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린 것은 '대미투자특별법'이다. 이 법안은 한미의 관세합의 양해각서(MOU) 체결에 따라 지난해 11월 발의된 법안으로 투자기금 설치 등에 관한 규정이 담겼다. 다만 현재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 계류 중인데, 국민의힘은 국회 비준이 우선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미 관세 합의에 따라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중 2000억 달러는 현금 투자로, 1500억 달러는 조선업 협력 방식으로 구성됐다. 다만 야당은 헌법을 들어 연 2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는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울 수 있는 만큼, 국회 비준 동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헌법 60조 1항에 따르면,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갖기 때문이다.


나아가 야당이 국회 비준을 요구하는 것은 '협상 내용 투명성' 문제와도 연결된다. 정부·여당은 관세 합의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야당은 국회가 동의해야만 하는 항목만 정부가 특별법으로 제정해 지출 근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합의 내용 전반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당은 지난해 11월 '국회 비준'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한미 양국이 맺은 것은 상호 신뢰를 기반한 MOU인 만큼, 국회 비준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나아가 협상 내용 공개에 대해서도 "해당 법안은 기금 규모와 조달 방식과 세부 조건 등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다루기 때문에 심사 과정에서 모든 쟁점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다룰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지난해 치열했던 여야 신경전은 12월 예산심사와 올해 초 이혜훈 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로 후순위로 밀렸고, 오는 2월 중 처리를 목표로 논의가 진행 중이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갑작스럽게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 입법부가 역사적인 무역 합의를 입법화하지 않았다"며 자동차 등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국가별 관세) 인상을 통보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 관세 인상 명분을 제공한 국회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여당은 그동안 미국 측으로부터 입법 지연 문제를 전달받은 바 없기 때문에 "우리도 의문"이라는 분위기다. 여당은 당초 정부가 오는 2월 중 대미투자법을 심의해 달라고 요청한 사안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며, 예정대로 심의 절차를 거쳐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관세 쇼크'로 국회 비준 문제는 수면 위로 재차 떠올랐고, 쟁점화가 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왼쪽)와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오른쪽)가 27일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만나 기념 촬영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국회 비준을 거치지 않아 생긴 문제라며 이번만큼은 제대로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이재명 정부는 법안만 발의되면 관세가 인하된다는 것이 합의 내용이라고 주장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입법 지연을 문제 삼은 것은 또 다른 합의 내용이 있고 이것이 이뤄지지 않아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는 의심까지 보냈다. 이는 국회 비준을 거치지 않을 경우, 협상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강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이날 우 의장 주재 회동에서 "정부·여당이 구속력 없는 MOU에 불과하니까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 없다고 얘기해 결과적으로 비준 동의 없이 진행됐다"며 "지금 와서 한국 국회가 미국과의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트럼프 대통령 메시지가 나온 것을 보면, 혹여 정부에서 국회에 알리지 않은 다른 합의 사항이나 이면 합의 사항이 있는 것은 아니냐"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송 원내대표는 여권을 중심으로 국민의힘이 '국회 비준'을 고집한 탓에 법안 처리가 지연됐고 이번 사태로 확대됐다는 책임론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대미투자법 발의 이후 법안을 조속하게 심의해서 의결해야 한다는 정부·여당 측 요청도 기억이 없다"며 "내가 볼 때는 정부가 제대로 알리지 않은 다른 사항이 있거나, 직무를 유기한 사항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우 의장은 국회를 대표해 정부에 해명을 요구해 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민주당은 현재로선 초당적인 협력 요청에 머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법안이 계류된 재경위의 위원장은 국민의힘 소속이다. 임이자 재경위원장은 이날 국회 재경위원장실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업무보고 후 기자들과 만나 "일단 비준 동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국민의힘 입장이고. 민주당은 특별법을 밀어붙인다는 입장"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여당 입장에선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이 대안이 될 수도 있지만,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해도 6개월이 걸린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인 만큼, 여야 합의를 통해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만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미투자법만큼은 국민의힘의 협조가 필요한 셈이다. 다만 사실상 대미투자법의 주도권을 쥔 국민의힘 입장에선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여야 회동에서 "한미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는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는 행정적 합의로 국회 비준 대상이 아니다"라면서도 "소모적인 비준 논쟁은 끝내고 현지 투자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대미투자법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에도 지난해 12월에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며 "재경위에서 법안을 숙성시켜 속도감 있게 처리하는 데, 초당적으로 협력해 달라"고 요청했다.


천준호 원내수석부대표도 "이 사안은 국가의 미래와 관련된 부분이라 여야가 합의해서 신중하게 논의하고 추진해야 할 법안"이라며 "법안처리 일정에 따라 머리를 맞대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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