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손자들’, “할아버지 집에 가야 TV 볼 수 있어요”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2.05 07:30  수정 2026.02.05 07:30

집에 TV가 없어 손주들이 할아버지 집에 와서야 마음껏 본다는 이건희 회장 언급

3년간 스마트폰과 게임을 하지 않고 서울대 경제학부 합격한 이부진 사장 아들의 발언이 화제

‘이건희 손자’보다 강력한 의지로 뜻을 이룰 흙수저 청년을 기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아들 임동현 군이 지난 1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갈라 행사장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손자들이 화제다. 이재용 회장의 아들이 해군 장교가 되어 눈길을 끌더니, 이번에는 이부진 사장의 아들이 뛰어난 성적으로 서울대 경제학부에 입학해 주목받고 있다.


생전에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 주최 토크콘서트 ‘열정樂서’에 출연한 평직원 강사 6명과 오찬을 같이 한 적이 있다. 당시 담당 임원이던 필자도 배석했다. 이건희 회장은 어느 때보다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직원들은 손자들이 자주 찾아오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회장은 약간 의아한 얘기를 했다. “한 달에 한두 번 손주들이 오지. 용돈은 내가 직접 주지 않고 할머니가 줘. 그 녀석들이 오는 건 자기들 집에는 공부 때문에 TV가 없는데 우리 집에 오면 마음대로 TV를 볼 수 있어서야. TV 보는 목적으로 와. 나야 옛날부터 규제를 싫어했으니까 마음껏 TV를 보게 하지(웃음).”


그 말에 약간 놀랐다. 세계 최고 TV 업체인 삼성전자의 오너 자제들 가정에 TV가 없다니, 그것도 자녀교육을 목적으로 그렇게 한다니 놀라웠다. 물론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회장과 딸인 이부진·이서현 사장에게 물어보기는 어렵지만, 이건희 회장이 허튼 얘기를 했을 리도 없었다.


필자는 TV 자체가 없다기보다 그만큼 시청을 엄격하게 관리한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어느 참석 직원은 “재벌가 자제들은 TV든, 컴퓨터든 서민이 갖지 못한 최첨단 제품으로 마음껏 즐길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다”라며 “오히려 서민의 자녀들이 TV와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어 사는 것 같아 아쉽다”라고 말했다.


그날의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최근 이건희 회장의 외손자이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아들인 임동현 군이 어느 정도 단서를 주었다. 2026학년도 수능시험에서 단 1문제를 틀리고 서울대 경제학부에 합격한 임 군은 최근 휘문고 후배들을 위한 내신 설명회에 연사로 나섰다. 그는 “어려운 당부일 수 있지만 3년간 스마트폰, 게임과의 완전한 단절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모든 시험을 마치고 난 날, 3년 만에 맛보는 즐거움도 꽤 괜찮았다”라고 밝혔다. 그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스마트폰과 게임을 3년 동안 완전히 끊으니 집중력과 몰입도에서 확실한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임 군은 또 국어를 잘하는 비결에 대해서도 색다른 언급을 했다. 모의고사를 많이 푸는 것도 좋지만, 잘못된 논리가 뇌에 익숙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 군은 “잘못된 사고 습관이 반복 오답을 만들어 내거나, 주관적 생각 개입이 오답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선입견과 편견으로 인한 오류를 경계하는 말인데, TV나 컴퓨터 같은 전자기기를 너무 가까이하지 않은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10여년 전 아들 임동현 군과 함께 백화점 쇼핑을 하고 있는 이부진 사장. ⓒ 호텔신라

여느 재벌이라면 자녀가 어릴 때 해외로 유학 보내고 거기에서 거액의 기부입학을 하여 번듯한 학력을 취득한 뒤 다시 폼 잡고 국내로 돌아와 계열사 부장으로 입사하는 드라마 같은 스토리를 밟았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삼성가(家)는 일등기업다운 자존심이 있다. 얼마 전 이재용 회장의 아들 이지호 소위가 미국 국적으로 병역을 피할 수도 있었는데 굳이 해군 장교를 지원하여 많은 사람의 칭찬을 받은 것도 어찌 보면 재벌가 자녀들에게서 볼 수 있는 스테레오타입(stereotype)과 달랐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망나니 자녀를 둔 재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임 군의 스토리가 화제가 되자, 어느 아버지가 고교생 아들에게 잔소리했단다. 그러자 그 아들이 “아빠, 나도 이건희 회장 손자였으면 서울대 아니라 하버드도 갔겠다. 우리처럼 찌질하게 살지 않고 모든 것이 풍족하다면 공부 잘 했을 거야”라고 항변했단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이건희 손자’라고 하여 서울대든 어느 대학이든 절대로 입학이 보장되지 않는다. 물론 임 군은 집안의 재력으로 대치동 학원가는 마음껏 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 없다면 최일류 가정교사로 24시간을 채운다 해도 성적은 오르지 않는다.


사실 집안이 부유하든 가난하든, 대학에 입학하는 과정은 자기 수련과 자기 절제가 필요하다. 하루에 2시간씩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고 틈만 나면 스마트폰으로 숏폼을 즐기는 그 고교생은 설혹 자신이 ‘이건희 손자’가 되었더라도 목표를 이루기 힘들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스마트폰과 게임 없이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청소년이 많다. 청소년기는 행동과 충동을 조절하는 두뇌의 전두엽(前頭葉·frontal lobes) 기능이 아직 발달하지 못한 상태라 무절제하고 충동적이기 쉽다. 보통 스마트폰이든 게임이든 ‘△내성 → △금단 → △일상생활 장애 → △가상세계지향’ 등의 순서로 중독의 과정을 밟는다. 스마트폰과 게임 중독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경우가 많다. 중독 치료는 길고 어려워 부모의 지지와 체계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매일 생계가 버거운 부모 처지에서는 꿈같은 일이다. 부모가 일하러 나간 뒤 스마트폰과 게임의 유혹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학생들은 항변한다. 영어나 수학은 죽어라 몇 달을 공부해도 뚜렷하게 성적이 오르는 걸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게임은 매일 몇 시간씩 꾸준하게 투자하면 레벨이 오르고 아이템이 늘어난다. 패배도 즐긴다. 게임은 열심히 하다가 내 캐릭터가 지더라도 재미있다고 여긴다. 게임을 하는 과정 자체가 충분히 즐겁고, 실패해도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기에 강박적이고 불안한 심정을 느끼지 않게 해준다.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는 빡빡한 교육 현실에 짓눌린 아이들에게 스마트폰과 게임은 도피처와 같이 매력적인 곳이다. 교실에서는 존재감이 없지만, 사이버 공간에서는 다른 이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을 수도 있다. 현실의 ‘나’가 보잘것없을수록 사이버 공간의 ‘나’는 더욱 귀해진다. 다만, 그런 과정이 반복될수록 현실의 자신은 더욱 비참해진다는 사실은 잊으면 안 된다.


그렇다. 자신이 비록 흙수저라고 하더라도 ‘이건희 손자’에게도 절대 뒤지지 않겠다는 의지와 도전정신을 가진 청소년이라면, 스마트폰과 게임의 유혹을 이겨내면서 뜻을 이뤄낼 것이다. 꼰대 같은 충고일까. 물론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들을 만한 사람은 들으면 된다.

글/ 최홍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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