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미술계의 가장 큰 화두는 해외 유수 미술관들의 한국 진출입니다. 여의도에 들어설 퐁피두 센터, 부산의 분관 추진, 그리고 V&A 분관 협약 소식까지. 세계적인 미술관의 이름이 서울과 부산에 자리 잡는다는 사실은 한국이 더 이상 문화의 주변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동시에 이 움직임은 우리가 이제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 단계에 와 있는지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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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인 로열티와 세금의 향방입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퐁피두 센터 서울은 수년간 수백억 원 규모의 로열티를 지불하는 구조입니다. 공공이 주도하는 분관 역시 상당한 예산이 투입됩니다. 계약이 종료된 이후 우리에게 무엇이 남는가, 건물만 남고 기획 역량은 내재화되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에 대한 우려도 자연스럽게 뒤따릅니다.
이 고민은 한국의 문화 인프라 현실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한국은 경제 규모와 생산력에 비해 미술관과 박물관의 절대 수가 부족한 나라입니다. 인구 대비로 보면 주요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그마저도 서울에 과반이 집중돼 있습니다. 제2의 도시인 부산조차 접근성의 한계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 거주자에게 미술관은 일상의 공간이 아니라 큰 마음을 먹고 떠나는 연례행사에 가깝습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해외 분관 유치가 국내 기획 생태계를 키우는 계기가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화적 외주화로 남을 위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고민의 바닥에는 가장 중요한 질문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예술과 문화를 얼마나 향유하고 있는가?” 향유란 누리고 가진다는 뜻입니다. 시간을 들여 즐기고, 반복해서 찾고, 삶의 일부로 스며들게 하는 일이지요.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미술관 풍경은 여전히 향유보다 인증에 가깝습니다. 작품 앞에서는 감상보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먼저 들리고, 사진 촬영이 불가능한 전시는 흥행이 어렵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갑니다. 유명 인사가 다녀가거나 SNS에서 유행해야만 관람의 이유가 생기는 구조 속에서, 관람은 점점 타인의 취향을 빌려오는 행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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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미술 애호가로서, 또 잦은 출장으로 유럽의 미술관들을 드나들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술관이 보유한 컬렉션이나 전시 기획의 완성도뿐 아니라, 전시 공간을 대하는 관람객들의 태도였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생각보다 흔치 않고, 찍더라도 작품 자체나 캡션을 기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무르거나, 스케치를 하거나, 작품을 두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들. 제게는 그 장면을 바라보는 일 자체가 즐거워서 미술관을 더 자주 찾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동시에 한국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이들의 미술을 즐기는 방식에, 부러움과 질투가 함께 일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의 미술 감상 문화를 단순히 가벼움이나 성급함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예술을 즐기고 누리고 감상하는 법을 충분히 배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술관과 공연장은 오랫동안 일상이라기보다 사치에 가까웠고, 아주 특별한 날 큰마음을 먹고 찾아가는 행사에 가까운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귀한 순간을 기록하고 증명하려는 욕망이 앞서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인증샷이 많은 풍경에는, 예술을 향유해 본 경험이 적었던 사회의 기억이 겹쳐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경제적으로 꽤 높은 수준에 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화적 인식과 향유의 수준도 조금 변해도 되지 않을까요. 물론 ‘향유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즐기는 것도 하나의 향유일 수 있고, 조용히 오래 머무는 감상이 더 잘 맞는 이도 있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다양성과 자유로움, 그리고 자기만의 기준과 취향이 생겨나는 일일 것입니다. 남들이 좋다고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찾는 이유가 생기는 것. 그것이 향유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해외 미술관 분관 유치에는 분명 우려되는 지점들이 존재합니다. 동시에 문화적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하고, 지리적 특성상 주변국으로 다양한 문화 탐방을 떠나기 쉽지 않은 한국인에게 해외 유수 미술관의 분관은 하나의 기회인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관건은 우리가 그 공간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퐁피두가 온다고 해서 우리의 취향이 자동으로 수입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왕 큰 비용과 자원이 투입되는 공간이라면, 우리는 그 공간을 충분히 즐기고 제대로 써도 되지 않을까요. 자주 가고, 오래 머물고,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껏 누리면서 말입니다. 취향은 그렇게 뽕을 뽑듯 자주 드나들며 쌓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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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Team8 Partner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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