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 방지 시범사업' 왜 호남에서?…"뭘 검증하려는지 의문"

김효경 기자 (hyogg33@dailian.co.kr)

입력 2026.02.24 10:36  수정 2026.02.24 10:59

정부, 25일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 발표

3개월간 광주·전남·전북 지역에서 우선 시행

의료계 “시범사업 목표 불분명…구체적 대안 없어”

응급실로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응급환자 이송체계 개편을 두고 의료계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응급실 과밀과 필수의료 인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이송 절차 개선만으로는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검증을 위한 시범사업을 정작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호남권에서 진행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오는 25일 브리핑을 열고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의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발표한다. 시범사업은 이달 말부터 5월까지 3개월간 광주·전남·전북 지역에서 우선 시행되며, 정부는 운영 결과를 토대로 전국 확대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시범사업은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체계(KTAS) 5개 등급 가운데 1·2등급에 해당하는 중증 환자를 우선 대상으로 한다. 심정지나 뇌출혈 등 고위험 환자의 경우, 국립중앙의료원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이 직접 수용 병원을 지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골든타임을 초과할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는 상황실이 ‘환자 우선 수용 병원’을 지정할 수 있으며, 해당 병원은 환자 수용과 응급처치, 이후 타 병원 전원까지 책임져야 한다. 반면 비교적 경증으로 분류된 환자는 119구급대가 개별 확인 절차 없이, 병원이 사전에 공개한 진료 가능 분야를 기준으로 이송한다.


다만 의료계에서는 이송 체계 개편만으로는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동안 의료계가 지적해온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적·행정적 의무만 강화될 경우 현장의 부담만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시범사업 지역 선정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진다. 정부는 광주·전남·전북 등 호남권을 시범지역으로 정했지만, 해당 지역이 그간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심각했던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현재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된 지역은 지금까지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두드러졌던 지역이 아니다”라며 “현장 의료진과의 충분한 논의 없이 진행되는, 의미 없는 시범사업이 아닌 제대로 된 시범사업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실제 현장 사례를 들어 구조적 한계를 설명했다. 그는 “설 연휴 당시 응급 내시경이 필요한 환자가 있었다. 흉부외과 협진이 필요해 서울·경기까지 포함해 40여 곳의 병원에 연락을 했지만 치료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했다”며 “환자는 응급실에서 7시간 넘게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이 최종 진료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응급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다”며 “이는 119가 병원을 몰라서 이송하지 못한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치료가 가능한 병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서 비롯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이번 시범사업의 방향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그는 “정부가 시범사업을 통해 무엇을 검증하려는지 목표가 불분명하다”며 “응급실 뺑뺑이를 시간 기준으로 볼지, 연락 횟수로 정의할지조차 정리돼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병원에 데려다놓기만 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인식으로는 응급의료 문제를 풀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시범사업 대상 지역 의료계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광주·전남·전북 의사회는 지난 5일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보건복지부와 소방청이 추진하는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 추진 계획은 탁상공론의 결정체”라며 “실제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응급의료 담당 의사들은 숙의 과정에 참여하지도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타지역에 비해 격오지, 취약지가 많아 중증 환자가 적시에 발견되지 못하는 호남에서의 시범사업은 지역 응급의료 체계의 붕괴를 가속할 것”이라며 “응급의료시설부터 권역응급의료센터까지 모든 단계에 걸쳐 의료진 이탈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김효경 기자 (hyogg33@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