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노트’ 산들, 성공한 덕후가 마주한 까다로운 L의 세계 [D:인터뷰]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6.03.03 08:45  수정 2026.03.03 08:46

B1A4 컴백 준비와 병행...“신우 형에게 혼나며 ‘성대 튜닝’하고 있어”

아이돌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꾸준한 행보다. 벌써 데뷔 14주년, 뮤지컬 무대도 어느덧 13년 차를 넘어섰다. 그런 산들이 이번에는 세기의 대결, ‘데스노트’의 엘(L)로 변신했다. 특유의 밝은 에너지를 지우고, 웅크린 채 날 선 추리를 이어가는 모습은 실제 산들과 더 닮아 있었다.


ⓒ오디컴퍼니

산들은 본인을 ‘성공한 덕후’라고 칭할 정도로 원작 ‘데스노트’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진짜 대박 사건이죠! 초등학생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정말 좋아했어요. 엘이라는 캐릭터는 제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거든요. 그런 제가 엘을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죠. 사실 엘은 엉뚱하고 4차원이지만 천재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 천재성 이면에 있는 ‘고립감’에 집중했어요. ‘얘가 얼마나 외로웠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짠해지기도 하더라고요. 사실 지금도 낭만을 지키려고 애니메이션 원작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있어요. 제 해석이 흔들릴까 봐요. 공연이 다 끝나고 나서 다시 봤을 때, 제가 연기한 엘과 어떤 차이가 있을지 확인하는 게 제 마지막 계획이에요”


엘은 만화적 설정이 강한 캐릭터다. 특유의 자세나 말투가 ‘오글거린다’는 반응을 얻기 쉽지만 산들은 소화해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주변에서 ‘그 자세나 말투 안 오글거리냐’고 많이 물어보시는데 저는 엘을 너무 잘 이해하니까 ‘얘가 그럴 수도 있지’ 싶더라고요. 원래 익숙해서 그랬나 봐요. 엘은 세상과 단절된 채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친구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모습 자체가 하나의 ‘연기’라고 생각하며 접근했어요. 오글거린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엘다울까’를 고민하는 게 즐거웠죠. 그 웅크린 자세가 처음엔 골반도 아프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그 자세가 아니면 엘의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몸에 익어버렸어요”


캐릭터를 두고 본인만의 해석 역시 확고했다. “엘은 시니컬한 모습을 유지하지만 인간적인 두려움은 분명 저변에 깔려 있다고 봐요. 하지만 저는 단순히 ‘여한이 없다’는 식의 마무리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엘의 입장에서 이 승부는 결코 스스로의 실력이나 논리에서 밀린 게 아니거든요. 예상치 못한 거대한 변수 때문에 멈추게 된 것이지, 두뇌 싸움에서 패배한 게 아니라는 자존심을 끝까지 가져가고 싶었어요. 상대에게 ‘나는 결코 너에게 지지 않았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려 노력했어요. 그 오기가 제가 해석한 엘의 모습이에요”


가창력이 좋은 가수들에게도 악명 높은 프랭크 와일드혼의 넘버를 부르는 만큼 고민도 많았다고 한다. “세상 까다롭고 껄끄러운 노래예요. 진짜로요. 음정들이 사람의 가장 끄트머리, 가장 예민하고 껄끄러운 부분만 골라서 건드리는 느낌이에요. 가볍게 부르면 그 특유의 맛이 안 살고, 그렇다고 너무 힘을 주면 금방 지치거든요. 처음엔 ‘이걸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싶을 정도로 막막했죠. 그런데 지금은 제 몸의 모든 포지션이 ‘데스노트’에 딱 맞춰져 있는 상태예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이 껄끄러움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요”


그래서인지 연습 과정을 들어보면 흡사 무협지 속 수련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연습실 중앙에 방음벽 기둥이 있는데 그게 소리를 다 흡수해버리는 기둥이었어요. 벽을 보고 노래를 부르는데 제 목소리가 저한테 안 돌아오는 거예요. 그때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래, 너랑 나랑 누가 이기나 보자’ 하고 2~3개월을 그 기둥이랑 싸웠어요. 소리를 기둥 너머로 뚫고 보내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내질렀죠. 결국 기둥이 이기긴 했지만(웃음) 덕분에 제 성량이 정말 짱짱해졌다는 소리를 듣게 됐어요. 폭포 아래서 수련한 느낌이에요. 아직도 꿈에 나올 것 같아요. 그 기둥이 저를 키운 셈이죠”


함께 엘 역을 맡은 김성규와의 유대감은 남달랐다. “성규 형과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봐도 통해요. 아무래도 비슷한 시기에 아이돌 활동을 시작했고, 무대 위에서의 고충을 서로 너무 잘 알잖아요. ‘우리가 언제 안 힘든 적 있었냐’면서 서로 다독여주죠. 형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엘의 에너지에서 저도 많은 자극을 받습니다. 서로의 엘이 달라서 더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오디컴퍼니

비원에이포(B1A4) 컴백 준비도 병행 중이다. “그게 지금 제일 큰 고충이에요. 뮤지컬 넘버에 익숙해진 소리를 다시 대중가요 톤으로 바꾸는 과정을 저는 ‘성대 튜닝’이라고 불러요. 녹음실 가면 신우 형한테 ‘너 노래 왜 이렇게 못하냐’고 엄청 혼나요. (웃음) 뮤지컬 소리가 자꾸 섞여 나오니까 형 입장에서는 답답한 거죠. 하루 이틀은 완전히 쉬어야 소리가 돌아오더라고요. 그래도 이런 고민을 하는 과정 자체가 질리지가 않아요. 누가 이기나 죽을 때까지 한번 보자는 마음으로 부딪히고 있습니다. 비원에이포컴퍼니 설립 후 첫 활동인 만큼, 완벽한 소리를 찾아야죠. 그리고 올해는 오프라인에서 팬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많아서 너무 기대돼요. 3월 21일에는 제 생일 공연도 앞두고 있답니다”


컴백 후 마주할 ‘챌린지’ 문화에 대해서는 겁이 좀 난다며 웃음지었다. “아... 챌린지 한 4~5개씩 해야 한다는데 벌써 피곤해지네요(웃음). 저는 쉬운 버전 나타나면 슬쩍 끼어서 하고, 아니면 소파 뒤에 숨어 있으려고요. 춤 잘 추는 신우랑 공찬이가 다 이해해 주겠죠. 그래도 팬들이 원하신다면 숨어 있다가도 나와서 열심히 하긴 할 겁니다. 사실 그런 소통이 즐거우면서도 몸이 안 따라줄까 봐 걱정인 거죠”


산들에게 ‘데스노트’는 어떤 의미로 남을까. “나중에 ‘나 데스노트 엘이었어!’라고 아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화려한 추억이 될 것 같아요. 제 안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어요. 이 인터뷰에 제 진심이 팬들에게 잘 전달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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