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응급환자 이송체계 개편·지역의사제 추진
의료계 “구조개혁 없는 처방…실효성 의문”
현장선 인력 이탈 조짐…“근본 대책 필요”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 구급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필수의료 정상화’라는 과제 해결을 위해 응급환자 이송체계 개편과 지역의사제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의료계에서는 “근본 처방이 빠진 정책”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서는 수용 여건이 부족한 상황에서 응급환자를 강제로 밀어넣는다는 불만이 확산되며 인력 이탈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응급실 뺑뺑이’ 해소를 위해 이달부터 광주·전남·전북을 대상으로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사업에 따르면 119구급대는 중증환자(pre-KTAS 1~2등급) 정보를 광역상황실과 119구급상황관리센터에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심정지나 중증 외상 등 최중증 환자는 사전에 지정된 병원으로 즉시 이송하고, 그 외 중증 환자는 광역상황실이 병원의 수용 가능 여부를 확인한 뒤 이송 병원을 결정한다.
이송이 지연될 경우에는 광역상황실이 중환자실·수술실 등 의료 자원 상황을 고려해 우선 수용 병원을 지정한다. 치료 이후 전원이 필요한 환자 역시 119구급대가 이송을 담당하도록 했다.
의료계에서는 이 같은 방식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응급실 과밀과 필수의료 인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송 절차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실제 현장 인식도 부정적이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가 지난 5일 회원 52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8%는 “시범사업이 응급실 수용 곤란 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사업이 강행될 경우 대응’에 대해서는 41%가 “사직 또는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하겠다”고 응답했다.
시범사업 시행 이후 의료진 이탈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시범사업 후 광주·전남 지역에서 최소 7명의 응급의학과 의료진이 이탈했다”며 “합의되지 않은 사업 시행으로 현장 의료진의 부담만 가중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이처럼 응급의료 현장의 반발이 커지는 가운데, 필수의료 인력 확충을 목표로 한 ‘지역의사제’를 둘러싼 실효성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 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정부의 ‘인력 확대 중심 정책’ 전반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지난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국립의전원법)을 의결했다. 법안은 국가가 공공의료 분야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국립의전원을 설립하고, 의사면허를 취득한 졸업생에게 15년간 공공의료 분야 의무복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2030년 국립의전원을 개교해 매년 100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앞서 추진된 지역의사제 역시 서울을 제외한 32개 의과대학을 지역의사 선발전형 운영 대학으로 지정하고 10년간 지역 근무를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두 제도 모두 ‘인력 확대’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러나 의료계는 근무환경과 보상체계 개선 없이 인력만 늘리는 접근은 한계가 뚜렷하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교수는 “필수의료의 핵심 문제는 인력 부족이 아니라 구조의 열악함”이라며 “소아과 등은 이미 붕괴된 상황인데, 지금 정책으로는 실제 현장에 투입되기까지 최소 10년이 걸린다. 그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에 대한 답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장은 최근 열린 의료정책포럼에서 “지역 정착에 이르는 전 과정의 체계적인 설계와 전폭적인 지원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제도는 현장에서 안착할 수 없다”며 “환자들이 지금처럼 수도권 상급 병원으로 몰려오지 않고 지역의사를 찾아가게 하는 구조부터 정립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지역 의료 붕괴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그에 맞는 처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최안나 강릉의료원장도 “지역의사제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거대한 실패’가 될 수 있다”며 “정책을 추진한 이들이 시간이 지나 책임지지 않는 구조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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