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블랙
가부장제의 폭력에 희생된 두 여성이 저승 법정에서 만났다. 뮤지컬 ‘홍련’은 고전 설화를 해체하고, 록 음악과 전통 씻김굿을 결합해 억압받은 이들의 목소리를 복원한다. 올해 두 번째 시즌을 맞은 이 작품에서 두 여성은 피해자와 심판자라는 경계를 허물고, 서로의 상처를 직시하며 연대의 서사를 구축한다.
ⓒ마틴 엔터테인먼트
작품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동생을 해친 혐의로 저승 천도정에 끌려온 홍련의 사후 재판 과정을 다룬다. 재판장 바리는 천도정의 규칙에 따라 홍련의 죄를 추궁하고, 홍련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저지른 행동의 정당성을 항변한다. 극이 진행됨에 따라 두 인물이 겪은 가정 폭력과 유교적 억압의 역사가 수면 위로 드러난다.
강혜인은 학대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가해자가 되어야 했던 홍련의 심리를 묘사한다. 생존을 위해 선택한 공격적인 태도 이면에 자리한 두려움과 슬픔을 표정과 음색의 변화로 보여준다. 재판 초반의 방어적인 모습에서 점차 억눌린 분노를 노출하는 감정선이 뚜렷하다.
김경민은 법을 집행하는 원칙적인 신의 모습으로 극을 이끈다. 그러나 자신 역시 버림받았던 상처를 지닌 존재로서, 홍련의 과거를 마주하며 겪는 내적 동요를 그려낸다. 두 배우의 대립과 이해의 과정은 극의 중심축으로 작용한다.
음악은 서양의 록 사운드와 동양의 전통 음악을 혼합해 극 분위기를 주도한다. 강렬한 기타 리프와 드럼 비트는 인물들의 분노와 세상에 대한 저항 의지를 청각적으로 구현한다. 동시에 극의 저변에 깔린 씻김굿 선율은 인물의 고통을 위로하며 극 후반부의 전개를 돕는다. 두 배우의 보컬은 록 음악의 타격감과 맞물려 넘버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듀엣곡에서는 두 인물의 팽팽한 대립을, 솔로곡에서는 내면의 고통을 토해내며 서사의 완급을 조절한다.
ⓒ마틴 엔터테인먼트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의 무대 구성은 상징성과 효율성에 집중한다. 원형에 가까운 극장 구조를 활용해 저승의 재판장이라는 폐쇄적이고 숙명적인 공간 특성을 살린다. 물리적으로 큰 무대 장치를 배제하는 대신, 조명의 명암과 색채 대비를 통해 이승과 저승,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교차시킨다. 빛과 그림자의 활용은 인물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하는 도구로도 기능한다.
무대 위에서 저승차사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활용도 돋보인다. 이들은 재판을 진행하는 차사 역할 뿐만 아니라, 홍련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인물들로 변신하는 멀티롤을 소화한다. 때로는 폭력적인 아버지로, 때로는 방관하는 이웃으로 분하여 재판의 증거를 제시한다. 이들의 유기적인 움직임은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법정극의 구조에 역동성을 부여하고,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뮤지컬 ‘홍련’은 익숙한 고전을 빌려 현대 사회의 폭력과 방관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상처 입은 이들이 자신의 과거를 직면하고 서로의 고통을 인정하며 위로하는 결말은 씻김굿의 본질적인 제의적 기능과 맞닿아 있다. 한 판의 굿처럼 극이 끝나면 인물들의 한이 풀리고, 관객에게 묵직한 여운과 해방감을 동시에 안긴다. 공연은 오는 5월 17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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