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장기·바둑판 낙원상가 1층으로 이전
"예전 탑골공원 시절에 비하면 호텔급"
탑골공원 금주구역 지정 후 인근 상권에 '풍선효과'
"노인이 품격 있게 늙어갈 수 있는 문화 공간 조성 절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 어르신 문화놀이터'에서 노인들이 장기를 두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데일리안 진현우 기자
"탱크(포) 죽어버렸어." "장군이네?" "형님, 졌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1층에 마련된 '탑골 어르신 문화 놀이터(놀이터)'에서 노인들이 장기판 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구경하던 노인들이 훈수를 두고 장기를 두던 노인이 이에 맞장구치며 금세 놀이터 안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기존 '노인들의 성지' 였던 탑골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장기판 근처 막걸리병은 이곳에서 찾아볼 수 없다. 대낮부터 만취해 비틀거리는 노인도 없다. '술냄새 없는' 깔끔한 실내 공간에서 노인들이 자연스럽게 담소를 나누면서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는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다.
◇날씨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실내 여가공간…"탑골공원에 비하면 호텔"
종로구는 기존 탑골공원에 마련됐던 장기·바둑판을 탑골공원 인근 낙원상가 1층으로 옮겨 노인들이 편하게 장기·바둑을 둘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했다. 장기·바둑판도 총 17개가 놓여져 비교적 많은 노인들이 여가 활동을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마련했다.
종로구 측은 이곳을 운영하며 주류는 물론, 음식물 반입을 완전히 금지하는 엄격한 규칙을 세웠다. 특히 이곳에는 커피도 가져올 수 없다. 흔한 믹스커피 한 봉지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노인들은 이곳에 설치된 정수기를 통해 물만 마실 수 있다.
이곳에는 하루 평균 200명에 달하는 노인이 찾는다. 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지만 주로 오후 1시30분에서 오후 4시30분 사이 많은 노인들이 놀이터를 찾는다고 근무자는 설명한다.
이 근무자는 "처음에는 고생 많이 했다. 밖에서 술을 마시고 오고 땅바닥에 침을 뱉는 등 탑골공원에서의 습관이 이어져 온 분들이 많았다"며 "어르신들이 침을 뱉을 때마다 치우면서 '침 뱉지 말아달라'고 하는 등 어느 정도 질서를 잡고 나니 지금은 비교적 깔끔한 운영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에서 온 80대 남성 김모씨는 "예전 탑골공원에 있던 시절과 비교하면 여기(놀이터)는 호텔"이라며 "날씨에 상관없이 올 수 있다는 것도 좋고 복지도 이 정도만 하면 괜찮다"고 '극찬'했다.
동대문구에서 왔다는 또 다른 80대 남성도 "예전에 밖에서 장기 두고 있을 때는 말 그대로 술판"이었다며 "여기는 술 마시는 사람이 없으니깐 그냥 놀러오기에도 좋다"고 말했다.
◇"그래도 술 마시고 싶어"…인근 상권으로 퍼져나가는 '풍선효과'
이처럼 종로구는 탑골공원을 금주구역으로 지정하고 어르신들의 건전한 여가 활동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음주를 원하는 어르신들은 인근 상권으로 이동하고 있어 또 다른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인근에서 문방구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금주 구역으로 지정돼도 막무가내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여전하다"며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고 오히려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특히 익선동 일대는 원래 노인들이 자주 찾는 장소였으나 이른바 '레트로' 문화를 타고 젊은 층이나 외국인들도 많이 찾고 있어 탑골공원 음주 금지에 따른 '풍선 효과'가 세대 간 갈등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연차를 내고 경기 남양주시에서 익선동에 놀러왔다는 김모(31)씨는 "술을 많이 마신 어르신들이 카페에 와서 크게 떠드는데 대화에 집중할 수 없어서 부득이하게 카페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는 우리 사회가 노인의 '품격 있는 삶'을 위한 정치적·행정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흡연하는 사람이 비흡연자들한테 피해를 주지 않게 별도의 공간을 만드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노인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 모두는 결국 노인이 된다"며 "노인들이 품격 있게 늙어갈 수 있는 문화 공간을 확보하는 일은 모든 세대가 이용할 수 있는 자산을 만드는 일과 같다"고 강조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3가역 근처 익선동 초입부에 형성된 상점들 사이로 노인들이 걸어가고 있다. ⓒ데일리안 진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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