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2월 판문점 벙커안에서 벌어진 사건은...

조성완 기자

입력 2013.05.25 10:15  수정 2013.05.25 12:12

평균 2.4일당 한명씩 군 사망사건 발생 이중 60% '자살'로 처리

군 의문사 유가족들 "군입대시킬 땐 조국의 아들이라 하더니..."

#1. 1998년 2월 24일 낮 12시경. 판문점 241GP 3번 벙커 안. 육사 출신의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국방부는 아들이 군 복무 중 자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15년간 아버지가 싸우고 또 싸워서 밝혀낸 진실은 ‘한심할 정도로 상식적’이었다. 조명시설도 없는 매우 깜깜한 상태에서 죽기 직전 아들의 눈물을 봤다는 특별합동 조사단의 주장을 당사자인 김아무개 일병이 부인한 것이다.

이후 국회와 대법원,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국민 권익위원회 등 4곳의 국가 기관도 해당 사건을 조사한 뒤 ‘적어도 아들이 자살했다고 판단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특히 2012년 3월 어느 날, ‘권총 발사 화약흔 실험’을 통해 아들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증거도 제시됐다.

하지만 국방부는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국민 권익위원회는 2012년 8월 26일 “피신청인에게(육군 참모총장에게) 군 수사기관의 초동수사 과실 등으로 인해 사망 원인이 불분명하게 된 신청인의 아들의 순직 여부에 대해 재심의해 순직으로 인정할 것을 시정 권고한다”고 결론지었다.

그 후로 반년이 지난 현재, 아들은 아직까지도 순직처리 되지 못하고 있다.

해당 사건의 주인공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모티브로 알려진 판문점 김훈 중위다.

#2. 초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1998년 6월 23일 늦은 밤, 불현듯 한 통의 전화가 울렸다. “여기 부대인데 B 일병 집이죠?”라는 한마디로 15년간의 악몽이 시작됐다. 부랴부랴 찾아간 군부대에는 아들이 말없이 매트리스에 누워 있었다. 아들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총으로 자살했다”는 군부대 관계자들의 말을 어머니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렵게 찾아간 사고현장에는 피 한방울의 흔적도 없이 깨끗했다. 너무 억울해서 장례도 치르지 못했다. 끝까지 싸워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모진 고생 끝에 찾아낸 진실은 참담했다. 아들은 선임병에 의해 일상적인 구타와 가혹행위는 물론 성추행까지 당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스스로 자신의 몸에 방아쇠를 당겨서라도 고통을 끝내고 싶어 했을 아들의 상처를 떠올리며 통곡했다.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국방부는 ‘자해 사망’이라며 아들의 ‘순직’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싸웠다. 결국 2013년 3월 29일 아들을 국립대전묘지에 안장할 수 있었다. 그 세월이 무려 만 15년이다.

해당 사건의 주인공은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승원 일병이다.

#3. 제 오빠는 이젠 군 복무를 약 10개월 정도 밖에 남기지 않은 상병입니다. 그런데 2003년 1월 12일 밤에 정말 청천 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말을 듣게 됐습니다. 그렇게 착하고 성실하게 생활하던 오빠가 목을 매서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사실이 믿겨지지 않습니다. 죽기 전날 부모님께 전화가 왔을 때 오빠는 평소 때와 같이 집 안부를 물었고 훈련 끝나서 기분이 좋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왔던 연하장에도 ‘올해는 전역의 해’라며 더 열심히 군대 생활을 하고 나와서 부모님께 효도하겠다고 편지까지 왔었는데...

그런데 그런 오빠가 무슨 이유에서 유서도 한 장 남기지 않고, 하다 못해 자신의 죽음에 대한 티끌의 이유도 남기지 않고 자살을 했겠습니까?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빠의 억울한 죽음을 꼭 풀어 주고 싶습니다. 부디 도와주세요.

해당 글은 2003년 수송부 차고에서 목을 매 숨진 강태기 상병의 여동생이 남긴 호소의 글이다.

강 상병의 시신은 군 병원 냉동고에 10년이 넘도록 보관 중이다. 유족들은 “아들이 왜 죽었는지 그 진실이 밝혀지고 명예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결코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입장이다.


2012년을 기준으로 매년 27만여명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에 입대하지만, 그 중 150여명의 군인은 다시 그들의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군 복무 중 의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국회와 국민들을 향해 진실을 밝혀 줄 것을 호소했다. 사진은 강원도 모전선 최전방 GOP 철책선에서 병사들이 야간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모습.(기사안의 특정 사실과 무관)ⓒ연합뉴스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광진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1998년 이후 2012년까지 군 복무중 사망한 이는 모두 2440명이다. 이 숫자를 날짜로 계산하면 평균 2.4일당 한명씩 군에서 군인이 사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죽어가는 군인 중 3분의 2는 자살로 ‘처리’된다. 자살 사유는 대부분 ‘군 복무 염증에 의한 자살’이다.

또한 지난 4월 1일을 기준으로 전국의 군 병원에는 최장 15년이 넘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방치된 군인 시신이 23구에 이르고 있다. 또한 군 헌병대에서 자살로 ‘처리’된 아들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며 화장 후 인수를 거부한 유골함 역시 총 139기가 군 부대 영현실에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군 복무 중 의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국회와 국민들을 향해 진실을 밝혀 줄 것을 호소했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과 국방위원인 민주당 김재윤, 김광진, 진성준 의원이 ‘저는 군대에 아들을 보낸 죄인입니다’라는 대국민 호소의 자리를 마련한 것.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전국의 군 의문사 피해 유족 일동’은 이날 “대한민국에서 남자라면 당연히 군대를 가야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렇게 믿고 맡긴 대한민국 군대에서 사랑하는 우리 가족을 이렇게 허망하게 잃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다”라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유족들은 “군대 보낼 때는 ‘조국의 아들’이라고 하더니 영문도 알 수 없이 죽은 후에는 미안하단 말은 고사하고 ‘못난 네 자식’이라며 외면했습니다”라면서 “우리를 왜 이렇게 비참하게 합니까.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왜, 어떻게 죽었냐고 외쳐도 귀 담아 들어주는데 인색했습니다. 그저 우리를 자식 잃고 악만 쓰는 떼쟁이로 여길 뿐입니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징병제 나라에서 의무 복무 중 죽어가는 군인은 국가가 책임지고 그 명예를 회복시켜 줄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고 관행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힘을 모아주십시오”라며 “억울하게 죽어간 우리의 아들과 그 아들을 잃고 절망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 희망을, 빛을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유족들은 특히 “이것이 결국은 또 다른 내일의 피해자를 돕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 역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라면서 “우리를 위해, 그리고 지금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내일의 ‘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을 위해 온 몸을 던져 싸우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리하여 징병제 나라에서 군대에서 죽는 것이 더 이상 ‘개죽음’이라 불리는 참혹한 현실을 깨고 군인의 인권이 바로 서고 국민의 인권이 바로 서는 진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재차 도움을 호소했다.

이날 행사를 공동주최한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인사말을 통해 “우리 사회에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다가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았으나, 그 죽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많은 의문사 희생자들이 있다”며 “이렇게 세상을 떠나게 된 우리 젊은이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유족들을 지켜보며 가슴 아파하는 것은 모든 국민이 한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은 “나 또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의 생명권이 경시되는 일은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지난 5년간 국방위원으로서 군 의문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국방부와 우리 군의 성의 있는 대응을 촉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2008년에는 국방위 간사로서 당시 이명박 정부가 소극적이던 군 의문사 위원회의 활동 임기연장을 관철시켰고, 그 이후에도 장관과 국방부 측에 군 의문사에 대한 성의 있는 노력을 촉구해왔다”며 “국방위원장으로서 군 의문사 문제해결을 위한 국회 차원을 노력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광진 민주당 의원은 “이제 의무 복무를 위해 군에 갔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은 모든 군인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며 “채 피어보지도 못한 채 스무해 남짓 살다가 죽어간 이 나라 모든 아들들이 조국의 품안에서 눈 감을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이어 “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고자 한다”면서 “국회 역시 군 의문사 유족분들의 외침에 화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조성완 기자 (csw44@naver.com)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