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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버핏은 되고 한국의 삼성은 안된다?


입력 2013.07.01 15:25 수정 2013.07.02 09:33        이의춘 편집국장

공정위 금융사의 비금융계열사 의결권 5%로 제한 법안

벅크셔 해서웨이 구글 페이스북은 차등의결권 주 보유

이의춘 편집국장
세계 최고의 투자 귀재로 평가받는 미국의 워런 버핏. 오마하의 현인으로 추앙받는 버핏은 엄청난 차등의결권주식을 갖고 버크셔 해서웨이를 지배하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버크셔 헤서웨이 주식은 일반 투자자들이 가진 주식보다 200배의 의결권을 갖고 있다.

미국을 넘어 세계 인터넷검색시장을 지배하는 구글. 구글도 기업공개를 할 때 10배의 차등의결권주식을 발행했다.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은 보통 투자자들이 가진 주식보다 의결권이 10배나 많다. 브린과 래리 페이지 등 창업자들은 10%미만의 지분으로 전체 의결권의 3분의 2를 장악하며 적대적 인수합병을 방어하고 있다. 지난 6월 중순 방한했던 페이스북의 저커버그도 일반 투자자보다 10배의 의결권을 가진 주식을 소유중이다.

미국 주요기업들의 경우 대부분 차등의결권제도와 포이즌 필 등의 조항을 통해 창업자나 최고경영자들이 소액투자자들에 비해 엄청난 의결권을 갖고 있다. 지분율에 비해 보통 10배 이상의 의결권을 갖고 안정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 지분율과 의결권간의 차이를 의결권 괴리라고 한다. 한국 같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참여연대나 경제개혁연대, 경제민주화 광풍에 휩싸여있는 여야정치의원들은 오너나 총수들이 쥐꼬리 지분으로 황제경영을 한다며 강도 높은 규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차등의결권이 허용되지 않는다. 워낙 경제민주화, 분배, 평등사상이 높다보니, 대주주나 소액주주나 똑같은 의결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 등이 보편화돼 있는 것과 천양지차다. 우리나라의 경우 차등의결권을 허용할 경우 오너가 가공의결권으로 부당한 사익을 추구할 수 있다고 선험적으로 단죄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반재벌, 반기업 운동을 벌여온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등과 좌파 진보인사들의 주장이 먹혀들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과 공정위도 이젠 참여연대의 오랜 꿈, 즉 재벌해체 공작에 휘말려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대기업집단 금융계열사의 비금융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제한도 문제가 많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기는커녕 현재 보유중인 지분에 대해서도 제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 정무위에 계류중인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대표적이다.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 등 17명이 발의한 이 법안은 대기업 집단 금융보험사의 비금융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특수관계인과 합하여 5% 이내로 대폭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공정위는 더 나아가 전체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을 아예 5%이내에서 차단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만약 이들 법안이 통과되면 우리 보험사 등 금융회사들은 외국자본과의 역차별로 경영권 방어능력이 심각하게 약화될 것이다. 외국 투기자본등에 적대적인 인수합병을 당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예컨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삼성계열 금융사들은 삼성전자 등 그룹의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다. 모두 합치면 5%가 넘는다. 공정위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계열 금융사들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등에 대한 지분에 대한 의결권은 5%로 묶인다. 이건희회장 등 대주주의 지분이 얼마되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외국계 자본의 공격이 이뤄지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5% 이상 의결권 제한 지분을 다른 계열사들이 사들여야 하는 데, 삼성전자 주가가 워낙 비싸다보니 주식 인수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룹계열사별로 본연의 투자를 해야 하는데,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금을 전용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시가총액 상위 대기업의 대부분은 현재 외국인 지분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외국인지분율은 49.2%, 현대차는 43.8%, 포스코 51.5%, 현대모비스 49.7%, 기아차 33.7% 등으로 매우 높다. 국내 최대 보험사인 삼성생명도 외국인 지분율이 10.6%나 된다. 이들 우량기업은 언제든지 먹잇감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외국인 투자자 중에는 단기차익을 노리는 헤지펀드 등 투기적 자본이 국내 최대주주보다 지분이 많다는 점이다. 외국 투기자본의 자금력이 워낙 막강한 것을 감안하면 우량 대기업들이 줄줄이 외국계 자본에 희생될 수 있는 셈이다.

외국자본은 의결권에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는 반면, 우리나라 우량 금융계열사들은 의결권을 제한받게 되면 그 피해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전경련 자료에 따르면 국내기업의 3분의 1은 적대적 인수합병에 노출된 상태다. 전체기업의 25%가 경영권 공격을 받을 경우에 이를 방어할 능력이 취약한 상태라고 답변했다.

유럽계 소버린이 2003년 SK(주)를 공격했던 것을 반추하면 적대적 인수합병이 기업경영을 얼마나 위협하는 지를 실감할 것이다. 당시 소버린은 1,786억원에 SK에너지 주식 14.99%를 매입해 단숨에 대주주로 부상했다. 경영진에 이것저것 요구하며 압박했다. 그룹에선 투자 등 본연의 일보다는 경영권 방어에 급급했다. 소버린은 2005년 투자목적을 단순투자 목적으로 전환한 후에 보유주식을 매각했다. 총 9,459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한국을 유유히 떠났다.
SK를 뒤흔들어 주가를 올려놓은 후에 엄청난 차익을 남기고 철수한 것이다. 소버린 사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외국계 투기자본의 실체를 생생하게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계 론스타도 2003년 1조3,832억원에 외환은행 지분 51%를 인수한 데 이어 2006년에 7,716억원을 추가 투자해 지분을 64.2%로 높였다. 총 2조1,000억원을 투자했다. 론스타는 이후에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배당금으로만 1조2,130억원을 회수했다. 평균 배당률은 45.35%로 시중은행의 평균 배당률 18%의 2.5배에 달했다. 배당금뿐만 아니라 하나금융지주에 지분을 매각한 금액까지 합하면 4조원이상의 차익을 남기고 철수했다. 금융기법의 선진화나 국내 기업과의 동반성장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배당금은 대부분 당해연도에 빼먹기 바빴다. 먹튀자본의 행태 그 자체였다.

이와함께 위니아만도는 외환위기 당시인 99년 UBS컨소시엄에 매각됐다가 대규모 유상감자와 배당금 지급, 대규모 구조조정 등에 시달리며 흑자기업에서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바 있다.
KT&G는 2006년 적대적 인수합병 전문가인 칼 아이칸등에 의해 공격을 받으면서 경영권을 위협받았다.

세계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왼쪽)과 삼성 이건희 회장. ⓒ 연합뉴스

정치권은 국내기업들이 이같은 비싼 수업료를 치른 것을 보고도 애써 무시하고 있다. 세계 각국을 보면 한국은 차등의결권주식, 포이진 필, 초다수의결권제 등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반면 미국 일본 프랑스 등은 이들 3개조치를 모두 허용하고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기도에 대한 방어조치를 구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 각국이 경영권 방어장치를 촘촘히 두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계열사의 비금융계열사에 대한 의결권을 막으면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장치마저 허무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정무위가 관련법안을 통과시키면 대기업들은 엄청난 경영비용을 치러야 한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이 제출한 입법안, 즉 금융계열사의 비금융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제한에 특수관계인까지 포함할 경우 다른 계열사가 금융회사 전체 지분을 인수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무려 20조3,000억원이나 된다. 공정위가 내놓은 입법대로라면 금융계열사 지분합의 5% 초과하는 것에 대한 인수비용은 8조9,000억원에 달한다. 대기업들이 경영권 확보를 위해서 최소 9조원에서 20조원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대기업 집단 중 금융회사가 지분을 갖고 있는 그룹은 총 15개그룹이다. 이중 계열사 지분을 소유중인 금융회사는 총 25개사나 된다.

삼성그룹이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등을, 현대차가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HMC증권 등을, 롯데가 롯데카드, 롯데손보 등을, 한화가 대한생명 한화증권 등을, 동부가 동부화재, 동부증권, 동부저축은행, 현대가 현대증권등을 각각 소유중이다. 미래에셋그룹과 동양, 교보생명, 한국투자, 이랜드, 유진등도 금융계열사를 갖고 있다.

의결권 제한 규정이 처리된다면 이들 대기업집단은 주력사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투자 및 일자리창출에 써야할 돈들을 전용해야 한다. 당장 경영권 방어가 발등에 불이기 때문이다. 투자와 일자리 연구개발 마케팅에 사용해야 할 자금이 경영권 안정에 사용된다면 기업의 경쟁력 약화는 물론 성장에도 악역향을 줄 것이다.

금융사의 비금융계열사 지분을 전량 처분할 경우 처분비용은 20조3,000억원에 달하는 반면, 이를 고용창출에 쓸 경우 16만만명의 신규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다. 5% 초과분을 처분할 경우에도 8조9,000억원이 소요되지만, 이를 일자리에 쓴다면 7만명의 새로운 잡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들 주식을 계열사에 매각하지 않고 시장에 내놓을 경우도 시장에 커다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일시적으로 대규모 주식이 쏟아지면 주가하락 등으로 대주주는 물론 기관투자자와 개미들이 심각한 재산상 손실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잉규제, 이중규제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현행 법상으로도 산업자본 대주주의 사금화 방지방안은 즐비하기 때문이다. 금융산업구조개선법 제24조에 따르면 금융회사가 그룹계열 회사 발행주식 총수의 5%이상을 소유할 경우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지배주주의 지배력 남용 문제도 자본시장법, 보험업법 등에서 다각도로 규제받고 있다. 금융회사의 주식보유 승인, 대주주와의 거래제한, 보험회사의 자산운용 방법 제한 등 강력한 방화벽이 설치돼 있다. 현행 금산분리 규제에서도 산업자본과 금융회사간에 리스크가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는 장치가 마련돼 있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과잉금지의 원칙과 평등원칙, 사기업 경영권 불간섭 원칙 등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문제도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 기업경영권의 핵심은 경영과 관련한 정관 변경권과 경영진 인사권을 확보하는 데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한 의결권 행사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의결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다. 헌법은 기본권을 제한하는데 있어 수단이 적정하고, 가징 피해가 적은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피해의 최소성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헌법원칙을 감안하면 공정위와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의 법안은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

금융회사의 비금융계열사 의결권을 5%로 규제하려는 법안은 이같은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감안해서 심사숙고해야 한다. 삼성이 세계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한데는 삼성생명이 안정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큰 밑바탕이 됐다. 삼성생명이 계열사의 주요 대주주로 있기에 이건희회장이 경영권에 대한 불안감이 없이 반도체 LCD 스마트폰 TV 등 가전 2차전지 등에 대한 공격경영을 해왔다. 삼성전자 등 그룹계열사의 시가총액이 급증하면서 삼성생명의 의결권 행사 방어장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혹시나 있을 외국계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 기도를 차단할 수 있는 든든한 방파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위기는 심화하고 있다. 올들어 지난 4월 설비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1.6%나 감소했다. 지금처럼 투자가 위축되면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이 꺼질 위험이 있다. 이래서는 올해 현오석 경제팀이 예상한 성장률의 상향조정(2.3%에서 2.7%로 올림)은 물건너간다. 일자리 등 전후방 산업연관효과가 큰 대기업들이 지금처럼 경제민주화 덫에 갇혀 있다면 모든 게 도루묵으로 그칠 수 있다.

투자를 급감시킬 경제민주화 입법은 신중해야 한다. 서둘러 입법절차를 밟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동반성장과 상생, 비정규직 문제등은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업을 때리고 기업인을 범죄인처럼 험하게 다루면서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확대하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포퓰리즘의 장막을 걷어내야 한다. 여야나 공정위 모두 냉정히 현재의 경제여건을 살펴봐야 한다.

법안들이 이중규제나 과잉규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은지 점검해봐야 한다. 기업의 기를 살리는 데 방해가 되거나, 투자 촉진에 저해요인이 되는 법안을 만드는 것은 중단해야 한다. 여야와 공정위가 강조하는 경제민주화 3종세트 입법화는 신중해야 한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보험 증권 카드 등 2금융권 전반으로 확대하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제정안,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한도를 9%에서 4%로 낮추려는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대기업 금융사의 비금융계열사 의결권을 15%에서 5%로 차단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바로 경제를 위축시키는 경제민주화 악법 3종세트다.

이의춘 기자 (junglee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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