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문재인 양측 신경전 이어 안철수-박원순 미묘한 설전
손학규 복귀 움직임 '꿈틀' 심상정 안측과의 연대 '설왕설래'
오는 10월 재보궐선거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한 야권 대표주자들 간 ‘주도권 싸움’이 이미 시작된 모습이다. 현재 10월 재보선은 수도권 3곳, 호남 1곳, 경북 2곳, 경남 1곳, 충남 1곳 등 8곳이 예정돼있으며, 규모는 다소 작은 선거지만 오는 6월 선거와 더불어 각 주자들이 ‘세 불리기’를 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단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민주당 소속 문재인 의원과 손학규 상임고문, 박원순 서울시장과 심상정 진보정의당 원내대표, 안철수 무소속 의원은 이 전투의 대표선수들이다. 특히 지난 18대 대통령선거 당시 ‘야권단일화’를 두고 한 차례 신경전을 벌였던 문·안 의원은 그 선봉에 서있다. 주로 문 의원은 ‘민주당’이라는 틀을 지키는데 주력하고, 안 의원은 이 틀을 뚫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최근 두 인사가 경쟁한 분야는 ‘지역행보’와 ‘인재영입’이다. 일단 안 의원이 지난 5일 대전, 6일 창원을 1박2일로 돌아본데 이어 문 의원은 9일, 부산시당 상무위원회에 참석했다.
안 의원은 대전에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수정안을 비롯해 국가정보원(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창원에서는 진주의료원 폐원 문제 등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쏟아냈다. 특히 안 의원은 대전에서 “대안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며 “주변에 좋은 분들이 계시면 내가 함께 하자고 말씀드렸다고 전해달라”며 창당 의지를 비쳤다.
10일에는 안 의원의 ‘인재영입 작업’의 윤곽이 드러나기도 했다. 앞서 진보 진영 대표 후보로 교육감에 당선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에게 안 의원 측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안철수당(黨)’이라는 어깨띠를 메길 권유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 아울러 10월 재보선 지역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는 전주 완산을에 강준만 전북대 교수, 장세환 전 의원 등을 후보 대상자로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 의원도 이에 지지 않겠다는 태세다. 그는 의원이 된 뒤 처음으로 부산 지역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 등으로 구성된 부산시당 상무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내년 지방선거를 지금부터 잘 준비해 부산정치를 바꿔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부산시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기로 해 민주당의 인재영입 과정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당 인재영입위원장인 김영환 의원은 재보선·지방선거 후보군으로 10여명을 찾았다고 전해졌다.
이렇게 ‘지역행보’와 ‘인재영입’으로 맞부딪치기 전부터 두 인사 간에는 세를 넓히기 위한 ‘기싸움’을 벌이는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시작은 ‘소주회동 사건’이었다. 지난달 14일 6.15선언 13주년 기념식에서 만난 두 의원 간 ‘소주회동’을 약속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이후 안 의원이 “그렇지 않다”고 이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두 인사 간 애매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후 문·안 의원은 안 의원의 정치적 입장이 ‘진보적 자유주의’라고 알려진 때 한 번 더 부딪쳤다. 문 의원이 이에 대해 공감의 뜻을 내비치면서도 “과거에 이미 많은 분들이 써왔던 표현으로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라며 “(안 의원이)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말을 독점할 수는 없다”고 하자 안 의원은 “‘혼자만의 것’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맞받은 것.
뒤이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NLL(북방한계선) 포기 발언 논란을 두고 새누리당에 반격하는 대응 기조가 같아 두 인사 간 거리가 좁혀질까 싶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NLL논란’으로 불거진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와 관련, 이 요구안이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데 있어 문 의원은 ‘찬성’, 안 의원은 ‘반대’를 던지며 의견이 갈렸다. 안 의원은 이후 반대 의사를 꾸준히 표명하고 있다.
박원순·손학규·심상정까지 '기싸움 대열' 합류?
사실 이 모든 ‘기싸움’의 원인은 ‘2017 대통령선거’와 연관돼있다.
차기 대선에서 최종적으로 새누리당 후보와 맞서기 위해선 야권에 포진하고 있는 ‘쟁쟁한 후보군’을 딛고 올라서야 하기 때문에 현재 치러지는 작은 선거에서부터 차례대로 자신의 입지를 다져야 한다. 이 때문에 문·안 의원 간 기싸움이 점차 치열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박원순 서울시장·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심상정 진보정의당 원내대표까지 ‘기싸움 대열’에 합류한 양상을 띤다.
특히 박 시장·손 고문·심 원내대표까진 현재 비슷한 전력을 가졌기 때문에 자신들 간 기싸움을 벌이기보단 ‘골리앗’인 문·안 의원과 각을 세우며 보폭을 넓히는 모습을 보인다.
먼저 박 시장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재선’을 노리고 있다. 박 시장이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정치권에선 박 시장이 이를 발판으로 대선까지 바라보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박 시장은 재선을 위해 그간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당내 표심 잡기’에 나서는 것은 물론,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재선 의사를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박 시장의 부상(浮上)에 문·안 의원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야권 유권자들에게 야권 대선후보에 대한 보기가 하나 더 늘어나면서 지난 대선보다 야권 내 경쟁이 더 치열할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문 의원은 당내 ‘문·박 경쟁’부터 감당해야할 상황이 올 수 있다.
안 의원과 박 시장의 신경전은 이미 시작된 모양새다.
사실상 안 의원의 도움으로 서울시장직에 올랐던 박 시장은 과거 ‘안철수 신당 합류설’이 터지자 “나는 민주당 당원으로 이미 입당한 상태로 당연히 민주당의 이름으로 (지방선거에 출마)해야 한다”고 안 의원과 선을 그었다. 지난 8일에는 박 시장이 안 의원에게 인재영입난(難)을 겪는다고 들었다며 “SNS를 통한 인재영입을 하라”고 훈수를 두자 안 의원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얘기한 적 없다”고 일축했다.
몸은 독일에 있지만, 정치권에 꾸준히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손 고문에 대해선 10월 재보선 출마설이 돌고 있다. 지역은 신장용 민주당 의원의 경기 수원을이다. 의석을 수성하기 위해 민주당 측에선 명성과 전략을 겸비한 손 고문의 출마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손 고문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내 이름이 거론될 일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손 고문이 물밑에서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있다는 얘기가 꾸준히 나온다. 일명 ‘손학규계’가 당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것. 대표적으로 ‘손학규계’인 양승조 의원이 이번에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것을 봐도 “손 고문이 죽지 않았다”는 반증이라는 말이 나온다. 결론적으로는 앞으로도 손 고문이 민주당 안팎에서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가질 것이란 얘기다.
손 고문은 문 의원과는 지난 대선 당시 당 경선 때 ‘모바일 투표’를 두고 날을 세우며 감정이 상한 상태고, 안 의원과는 ‘연대설’이 여러 번 나오고 있지만 부정하고 있다.
특히 안 의원의 ‘진보적 자유주의’를 먼저 주장했던 손 고문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 시대에 이념을 따지는 것은 유치한 일”이라며 ‘제3정당’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도 “독일 자유민주당 등 유럽 내 제3정당들이 잘되는 것 같지만 아니더라. 결국 이들이 메이저는 되지 못한다”고 강하게 안 의원을 밀어냈다. 이는 당에 대한 의리 차원도 있겠지만, 야권의 유력 경쟁자를 견제하는 부분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심 의원은 군소정당으로서 가질 수 있는 ‘특권’인 ‘연대카드’를 쥐고 흔들고 있다. 심 의원은 최근 출입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정책과 비전을 중심으로 한 연대는 세력과 개인을 불문하고 적극적으로 모색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10월 재보선에 대해서도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같은 전략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제3정당인 통합진보당이 ‘종북 논란’이 일어 연대가 어렵고, 안 의원과도 경쟁관계에 놓인 만큼 민주당의 아군으로는 정의당밖에 없다. 하지만 지난 대선까지만 해도 정의당 측은 민주당과 근거리를 유지했으나 현재는 특별한 접점이 없는 상태다. 인물로 대입시켜본다면, 문 의원에게는 심 의원과의 관계 극복 과제가 눈앞에 놓인 셈이다.
오히려 심 의원은 근래 안 의원과 가까운 모습이 포착되면서 ‘심·안 연대설’이 돌기도 했다. 4.24재보선에서 노회찬 정의당 공동대표의 지역구에 안 의원이 출마하며 다소 감정이 상했었지만, 서로 의원실이 가깝고, 같은 비교섭단체라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심 의원은 당분간은 ‘마이웨이’를 걷는다는 방침이다.
심 의원은 “안 의원은 이제 한 발자국씩 시작하는 단계로 (그 걸음의) 방향성을 보고 (연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 의원은 이어 안 의원을 향해 “제도화된 권력은 미미하지만, 국민이 정치적 권력을 (안 의원에게) 충분히 주셨다”며 “권력은 국민이 정치개혁에 온몸을 던지라고 주신 것이다. 그 점을 명심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는 문·안 의원 모두에게 일정하게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셈이 됐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