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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이 '일베'를 나무란다고? 소가 웃는다


입력 2013.09.20 11:06 수정 2013.09.20 11:11        김지영 기자

<기자수첩>자신들 주장 정당화하다가 스스로 논리에 고립

일만 터지면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다. 원래 존재하던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일베 이용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을 쓰면 ‘일베충’ 취급을 받는다. 크레용팝, 시크릿의 전효성, 김진표 등 일베 용어를 멋모르고 사용했다 ‘훅’ 간 연예인들도 다수 있다. 신종 매카시즘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대중의 잣대는 엄격하다.

그럴 만도 하다. 흔히 알려진 일베 용어에는 반인류적 의미를 내포한 단어가 다수 있다. ‘운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회화화한 단어고, ‘홍어’는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호남지역 주민, 정치적 진보세력을 비하하는 용도로 쓰인다. ‘로린이’, ‘김치녀’ 등 반사회적 단어도 대표적 일베 용어다.

하지만 일베가 처음부터 반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은 아니었다. 일베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파생된 커뮤니티로, 초기 모습은 보통의 유머사이트와 흡사했다. 정치적 성향을 띠긴 했지만 이들이 게재하는 게시물 등은 보수, 혹은 극우로 분류되는 세력의 논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베가 지금의 일베로 변모한 시점은 팟캐스트 ‘나는꼼수다’가 부상하던 시기를 전후한다. 나꼼수의 청취자, 일베 용어로 ‘나꼼충’들은 진보계 인사들에 대해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였고, 이는 일베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보수로 출발한 일베는 반진보로 돌아섰고, ‘진보를 까야 보수’라는 식의 논리를 만들어낸다.

대표적 사례가 ‘김정일 개xx’다. 일베는 진보세력과 그 지지자들에게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한 비판을 요구했고, 진보세력이 미적거리는 사이 이들에게 종북 딱지를 붙였다. 또 진보를 비판하는 자신들을 안보관이 투철한 보수로 포장했다. 사실 보수진영에도 김정일을 ‘개xx’로 표현한 정치인은 없었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했던 민주계 인사들의 전력도 일베의 시각에선 국가전복 행위였다. 통합진보당이 주장했던 주한미군 철수, 제주해군기지 백지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지 등은 말할 것도 없다. 일베의 입장에서 진보진영은 종북, 반국가 세력이었고, 안보를 방패로 이들에게 내뱉는 비판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지난해 총선과 대선, 두 차례의 선거를 거치면서 일베는 변질되기 시작했다. 안보와 보수는 없고 진영논리만 남았다. 각 진영의 주장과 상관없이 보수는 곧 안보였고, 진보는 곧 종북이었다. 진보진영과 관련한 모든 것을 부정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5.18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폭동으로 매도했다.

'내란음모' 혐의로 현역의원 사상 12번째 체포동의안이 처리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지난 4일 저녁 구인영장 집행에 나선 국정원 직원들에 의해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특히 일베는 자신들의 일부 주장이 동조를 얻자 허위사실까지 근거로 제시하며 비판의 강도를 높여갔다. 이는 자신들에 대한 외부의 비판으로 이어졌고, 일베는 비판에 반박하기 위해 더 많은 허위사실을 양산했다. 끝에 가선 사회적 상식이나 통념에 반하는 반인륜적, 반사회적 언행을 표출하며 영향력을 과시하려 하기도 했다.

추천수가 높은 게시물을 메인에 노출하는 커뮤니티의 시스템도 일베의 변질에 한몫 했다. 일베(메인) 게시판에 대한 이용자들의 집착은 일베를 획일화하기에 이른다. 특정 표현, 논리가 이용자들의 공감을 얻으면 이용자 모두가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게시물을 일베 게시판으로 보내기 위해서다.

결국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다 자신들의 논리에 고립돼 일탈의 정도가 점점 심각해지는 모습이다. 적어도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며 일베를 간간이 ‘눈팅’하는 외부의 시각에선 그렇다. 여기선 일베를 예로 들었지만 ‘오유(오늘의유머)’, ‘아고라’, ‘네이트판’ 등 다른 정치적 성향의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정당은 다른가

그렇다고 네티즌들과 온라인 내 정치세력만 욕할 문제도 아니다. 십수 년의 역사를 가진 원내 정당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대표적으로 통합진보당을 들 수 있다.

이석기 사태로 들여다본 통합진보당은 진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친북, 반미, 반정부적 성향을 띠고 있다. 통진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의 주축은 1980년대 운동권 세력이었다. 이 가운데 NL(민족해방)계열, 특히 80년대 중반 세력을 떨쳤던 주사파가 현재까지 통진당의 당권을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NL은 우리 사회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뿌리를 해방 직후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로 인한 민족분열로 보고 있다. 90년대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대표적인 NL계열 세력이다.

하지만 NL 역시 8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변모하기 시작한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과 행동지침으로 내세운 주사파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를 비롯한 학생단체들을 주도해 운동권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고, 1989년에는 평양 한민족 축전에 전대협 대표를 파견하는 등 위세를 떨쳤다.

특히 자주와 민주주의도 주사파의 등장과 함께 종북과 반미, 반정부 운동으로 방향을 튼다. 미국은 신탁통치의 잔재이면서 통일을 방해하는 주체이고, 우리 정부는 미 제국주의 아래 식민지로 전락해 자력으론 통일을 이끌 수 없다는 게 이들의 논리였다. 이들은 또 군부독제를 반봉건 체제로 규정했다.

그나마 1987년까지는 학생 운동권과 진보세력 일각에서 이 같은 논리가 먹혀들었다. 당시 대통령 선거는 간접선거였고,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을 총포로 진압한 전두환 대통령이었다. 학생운동과 언론에 대한 정권의 탄압도 극심했다. 종북과 반미까진 많은 공감을 얻지 못하더라도 민주주의는 절실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NL을 뿌리로 두고 있는 통진당이 아직까지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직선제로 개헌된 지 2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통진당은 유신독재 시대에서 민주주의를 외치고, 미국과 관계가 동등한 수준까지 개선됐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를 미국의 속국으로 본다. 반미를 자주로 착각하는 듯하다.

특히 새 정부 들어선 북측과 당국협상까지 진행하며 관계를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통진당은 아직까지 자신들이 나서야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되려 올해 초 북한의 핵실험에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을 비판하는 등 우리 정부보다 북한 정권을 더 신뢰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시대착오적 망상이 이석기 사태를 만들었다는 것이 한때 운동권에 몸담았던 인사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우리 주도의 통일은 미국과 이해관계에 따른 강압적 통일이라는 망상이 북한 정권에 대한 의존으로 이어지고, 북한 주도의 통일이 진정한 통일이라는 착각으로 변질된 것이다.

특히 통진당 측은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국정원과 검찰의 조사를 ‘프락치’로 표현하며, 국가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 같은 점들을 고려할 때 최소한 통진당만큼은 일베를 나무랄 자격이 없어 보인다. 이 역시 하루 수차례 통진당의 브리핑을 눈팅하는 외부의 시각이다.

6개 원내 의석을 가진 정당이 이 모양인데, 일개 온라인 커뮤니티만 물고 늘어지는 것도 우습지 않을까 싶다.

김지영 기자 (j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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