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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리영희 백락청이 '이석기'를 키웠다


입력 2013.09.29 10:11 수정 2013.09.29 15:33        데스크 (desk@dailian.co.kr)

<굿소사이어티 칼럼>좌편향에 매몰된 지식사회

20년전 태백산맥을 향한 고발장은 결국 옳았다

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4일 저녁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정원의 구인영장이 집행되어 국정원 직원들에 의해 구인되는 가운데 차량에 탑승하기 전 당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지하 혁명조직(RO•Revolutionary Organization)을 결성했던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선동 혐의 문제를 느긋하게 보는 이들이 없지 않다. “정치적 정신병자 무리에게 너무 과잉대응할 필요는 없다”는 여유 있는 논리다. 어차피 주사파는 시대착오적인 부류이기 때문에 내버려두어도 저절로 사그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그들은 곁들인다. 그들에게 이석기와 통진당의 일부 무리는 단지 정신적 갈라파고스, 즉 퇴행과 소멸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석기 무리가 1960~1970년대 독일과 일본에서 폭력혁명을 시도했던 적군파(赤軍派)처럼 저절로 무너질 것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안이하지 않을까? “한국은 미제의 식민지이고 북한이 이상사회”라고 믿는 그들 정치적 바보들에게 단지 냉소만을 보내는데 그칠 경우 어둠의 세력이 이상 증식할 소지는 언제라도 있지 않을까? 1980년대 뿌리를 내린 저들의 질긴 생명력과 헌신성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저들의 전체 모습과 구조적 탄생배경을 파악하지 못할 경우 제대로 된 대응에 실패할 수도 있다.

1980년대 이후 좌편향에 몰두해온 한국 지식사회

이를테면 이석기를 만든 책임은 노무현 정부의 몇몇 인사에 국한된 게 아니다. 1989년 반제청년동맹 결성을 주도한 이석기는 민혁당 간부로 활동하다 2002년 체포됐는데, 그를 사면 복권시킨 사람들이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강금실 천정배였고, 청와대 민정수석은 문재인이었다. 그들에 일정하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치적 괴물 이석기의 탄생은 1980년대 이후 좌편향에 몰두해온 한국 지식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게 이 글의 요지다.

이런 정치적 프랑켄슈타인이 자라난 정치사회적 맥락을 제대로 짚어보자는 것이다. 그래야 제2, 제3의 이석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이석기를 길러낸 것은 지금까지 지식권력, 문화권력의 고삐를 쥐어온 세 사람으로 지목된다. 무시무시한 수치인 1300만 부를 팔며 젊은이들을 세뇌시킨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등 대하소설 3부작을 쓴 소설가 조정래, 아직도 한국사회 사상의 스승으로 추앙 받고 있는 '전환시대의 논리'의 저자 고(故) 리영희 그리고 1960년대 이후 '창작과 비평'을 발행하며 한국지식사회 지형지물을 바꿔놓은 좌파문화계의 최대 인물 백낙청을 꼽아야 한다.

그래서 조정래 리영희 백낙청은 좌파문화계 삼인방인데, 이들과 이석기와의 정서적 연대의 끈, 이념적 연결고리는 쉽게 확인될 수 있다. 확인을 위해 RO 녹취록에서 이석기가 “대민족사의 결전에서 통일혁명의 선두에 서는 명예”를 거창하게 선동했던 발언을, 소설가 조정래가 자기 작품에서 해방 직후 등장한 사회주의 운동가를 “인간을 위한 혁명에 나섰던 순결한 용사”로 규정한 대목과 맞비교를 해보라. 이석기-조정래가 표현하는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소신은 너무도 닮은꼴이다. 심지어 말하는 톤과 스타일까지 비슷하다는 걸 금세 알아챌 수 있으리라.

“우리가 자주된 사상, 통일된 사상, 미국놈을 몰아내고 새로운 단계의 자주적 사회, 착취와 허위 없는 그야말로 조선민족의 시대의 꿈을 만들 수 있다. 그 꿈을 위해… 전국적인 범위에서 최종결전의 결사를 하자는 거다. 이 또한 얼마나 영예롭지 않은가!” “오는 전쟁을 맞받아치자. 어떻게? 빈손으로? 전쟁을 준비하자. 정치 군사적으로 준비를 해야 한다.” “현 정세는 조선민족으로 표현되는 자주역량이 힘에 의해서 승리로 가는 국면은 분명하다. 고난을 각오하라.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각오해야 한다.”(이석기 녹취록)

“사실 그 어느 시대, 어느 땅에서나 혁명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낭만주의자들이거나, 이상주의자들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 바 아닙니까? 그래서 혁명적 낭만성이라는 말도 있는 것 아닙니까? 붉게 타는 노을을 바라보며 가슴 울렁거리는 감격 속에서 혁명의지를 재충전하는 그들(사회주의 운동가)의 모습을 (저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그려냄으로써 그들이 인간을 위한 혁명에 나섰고, 자기희생마저 감수해나가는 인간들이었다는, 그야말로 그들의 순결과 진정성을 그대로 표현해내려고 애썼던 것입니다.”(1991년 소설가 조정래의 좌담회 발언.)

시대착오적 괴물 이석기는 조정래 소설 속에서 튀어나온 캐릭터?

이석기가 빨치산 용사 놀이를 했다지만, 그 허깨비 놀음의 원조는 1980년대 등장한 이후 젊은이들을 오염시킨 원흉인 '태백산맥'인 셈이다. '태백산맥'의 등장 이후 빨치산은 더 이상 공비(共匪, 공산비적)가 아니라 순결하고 낭만적인 전사로 이미지를 바꿨다. 소설 속에 철두철미한 공산주의자로 그려지는 염상진, 하대치, 김범우 등이 모두 그러했다. 반면 대한민국 건국에 앞장서건, 빨치산에 반대했던 우익은 하나도 예외 없이 천덕꾸러기에 패덕한, 인간 말종으로 그려졌던 것으로 우리는 기억한다.

소름 끼치는 대목은 따로 있다. '태백산맥'에 그려진 각 인물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확신은 무시무시하다. 이를테면 이 소설의 핵심인물 염상진은 여순사건이 터졌을 때 무장 봉기에 나서는데, 그는 “해방과 더불어 혁명의 붉은 깃발을 세운 북조선의 조직화된 공산주의의 힘은 경이적인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가관은 따로 있다. 염상진은 북조선이 “남조선의 오합지졸인 비조직화된 힘을 일거에 쓸어버리고 한반도 전역에 공산혁명의 깃발을 나부끼게 할 것임을 굳게 믿는다.”(제1권 124~125쪽)

소설 속 인물 염상진의 미친 확신이 “전국적인 범위에서 최종결전의 결사를 하자”는 현실 속의 이석기와 뭐가 다른가? 다를 게 전혀 없다. 시대착오적 괴물 이석기는 조정래 소설 속에서 튀어나온 캐릭터에 다름 아니다. 둘 사이의 상관관계를 부정하는 이들이 혹시 있다면, 문화적 문맹이라는 지적을 받아 마땅하다. 조정래의 발언은 단행본 '문학과 역사와 인간'(한길사)에 나오는데, 당시 함께 좌담회를 했던 당시 소설가 이창동(훗날 영화감독)은 이렇게 맞장구를 치는데, 그 말도 기억돼야 한다.

“그동안 흡혈귀로 왜곡된 빨치산에 대한 역사적 정의로움의 개념을 부여한 것은 역사해석의 획기적 성과.” 그게 이창동의 발언이다. 더욱이 그는 '태백산맥'이 “관제 반공주의를 무너뜨리고 역사학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사회과학 분야에도 큰 파문을 일으켰다”고 주장하는데, 그 섬뜩한 예견은 20년이 훌쩍 지난 견고한 좌파 문화권력으로 완성됐다. 이 문화권력에 물들지 않은 이는 거의 없다. 반복하지만 “북핵이 왜 문제인가? 그건 민족의 자랑”이라고 발언하거나, “북한은 모두 애국이고 북한의 모두 반역”이라고 억지를 썼던 이석기는 20년 전 조정래 소설 속의 등장인물의 반복인 셈이다.

2005년 대한민국 검찰은 빨치산 영웅놀음 소설인 '태백산맥'이 이적성이 없다는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이 나라 공권력의 직무유기에 다름 아니었다. 조정래의 소설은 대한민국 헌법의 가치에 정면으로 도전한 문학적 불장난이었고, 때문에 이에 대한 응징이 너무도 당연했다. 이 소설을 무려 11년 간 내사하고 정식 수사한 끝에 내린 무책임하게 무혐의 결정을 내린 이후 미래의 이석기 무리는 버젓하게 대한민국을 휘젓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이미 '태백산맥'은 임권택의 연출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1994년 그 영화를 개봉하던 임권택이란 자도 이렇게 호언을 했다. “해방공간 당시 좌우익 격돌은 애국이란 관점에서 봐야 한다.” 온갖 문화계 인사들이 민중문화운동에 몸을 담근 것인데, 그런 그들에게 위선으로 가득한 문화적, 정치적 논리를 다시 한 번 제공해준 논란 속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리영희이다.

조정래와 함께 리영희야말로 종북의 원조로 치죄(治罪)되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북한은 모두 애국”이라고 했던 이석기 발언을 오래 전 미리 했던 위인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란 책에서 해방 후 신생독립국가 건설의 길에서 친일파 민족반역자가 우(右), 즉 대한민국의 자리에 섰다고 비판했다. 대신 강렬한 정의감, 헌신과 자기 희생의 인간형이 모두 좌(左), 즉 북한에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왼쪽부터 소설가 조정래,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저자 고 리영희, '창작과 비평'을 창간한 백락청.ⓒ데일리안/연합뉴스

“현대사는 실패다”는 발언의 진짜 원조 리영희

“남쪽 사회는 외세의존과, 국가주권의 상당한 양도를 대가로 해서 오늘의 자본주의 경제적 생산적 성공을 이룩했다. 북쪽은 반대의 철학으로 나라 만들기를 서두른 결과 높은 민족적 자존과 사회구성원 상호간의 도덕적 생존양식, 그리고 동포애가 감도는 순박한 인간형 등의 사회를 실현한 것으로 주장한다.”(167쪽)

지금 읽으면 헛웃음만이 나오는데, 그럼에도 이 땅의 젊은이들은 이런 류의 책에 열광했다. 적지 않은 주사파 무리들은 이런 단행본을 읽으며 혁명의 전위에 선 자신들의 신념을 가다듬으며, 미래의 이석기를 꿈꿨었을 것이다. 가장 영향을 받은 사람은 따로 있는데, 그게 전직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것도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그가 “현대사는 실패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는 발언을 했지만, 그것도 리영희의 책을 보고 눈이 뒤집혔던 탓이다.

좌파 문화권력, 지식권력의 총수인 리영희가 대학생은 물론 최고통치자의 인식과 시대에 대한 판단까지를 모두 버려놓은 셈이다. 실제로 1999년 말 '연세대학원신문'은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국내학자로 리영희를 꼽았고, 책으로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꼽았으니, 그때를 전후해 한국사회의 지식체계와 가치는 이미 완전히 거꾸로 된 셈이다. 지금은 50대 후반 나이인 한 대학교수는 리영희가 70~80년대 발표했던 책인 '전환시대의 논리', '8억 인과의 대화' 등을 읽고 “눈 위에 비늘을 벗겨준 지적 충격”을 경험했다고 고백(윤평중 지음 '극단의 시대에 중심잡기' 52쪽, 생각의 나무, 2008년)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리영희의 그 책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가 처음 선보인 게 1994년이다. 리영희가 높은 민족적 자존과 동포애가 감도는 순박한 인간형 등의 사회로 찬양하던 허깨비 북한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속에 체제 파산을 경험해야 했음을 우리는 잘 안다. 실은 국가보안법 철폐와 주한미군 철수를 외친 장본인도 리영희이다. 저들의 핵 무장을 옹호했던 거의 첫 번째 위인도 그가 아니면 누구일까?

그를 두고 “한국현대사의 길잡이”라고 일부 좌파 지식인들이 추앙(강준만 등)을 하고 있지만, 그를 제대로 파악하는 한 우파 논객은 그를 “친북좌파 사상의 대부”라고 규정(김광동 등 지음 '억지와 위선' 15쪽, 북마크) 했는데, 그가 정답이다. 하지만 종북 좌파 트리오 중에서 가장 거물을 꼽으라면 영문학자이자, 1966년 이후 계간 '창작과 비평'을 발행해온 서울대 명예교수 백낙청이다. 그야말로 좌파 지식사회의 거물임이 틀림없다.

좌파 지식사회의 숨어있는 거물급 좌장 백낙청

재야 깊숙한 곳에 있으면서 야권연대의 큰 천막을 쳐주는 그는 지난해 대선 때 주도의 종북-좌파연대의 핵심 모임으로 알려진 ‘희망2013-승리2012 원탁회의’를 이끌었다. 안철수와 문재인 대선후보의 단일화를 이끌어내는 등 현실정치에도 깊숙이 간여했던 것이다. 이른바 자문 그룹의 일원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던 것도 백낙청이었지만, 그의 실제 위상은 그 이상이다.

'창작과 비평'을 창간한 1960년대 이후 문학을 수단으로 좌파적 학술운동의 멍석을 제공해준 역할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호불호, 긍정 부정을 떠나 20세기 가장 지식권력에 근접한 이는 단연 백낙청이다. 리영희가 베트남 문제, 공산 중국 문제 분석을 주로 했다면, 그는 문사철 거의 전 부문, 인문사회과학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민족문학론, 민중문학론을 설파했던 그의 문학은 민중문화운동 전반으로 번졌고, 1980년대 사회과학 시대도 알고 보면 그의 영향 아래 흘러갔다.

가히 문화대통령이라고 불러도 되는 그는 온유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외모와 달리 일관된 반미 운동의 핵심으로 지목된다. “미국의 혜택을 많이 받은 내가 반미주의자이겠느냐?”고 말하지만 그는 1990년 한반도 군축과 평화통일을 위한 선언에 서명했다. 미국이 한반도 분단에 책임을 통감하고, 전작권 이향과 주한미군 철수를 하라는 것이다. 2004년 초에는 시인 고은 등과 함께 ‘국가보안법을 폐지시켜주십시오’라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그 해 9월에도 가톨릭 신부 함세웅, 전 감사원장 한승헌 등과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촉구 원로 공동선언’을 했으니 그의 반미는 일관된 소신인 셈일까? 그런 좌파의 거물 백낙청에 대한 조리 있는 비판은 그 동안 학계 내외에서 거의 금기에 속해왔다. 어쨌거나 이 좌파 트리오가 문화권력을 장악한 것은 한 세대를 훌쩍 넘긴다. 이들이 젊은 층에 끼친 영향력은 너무도 압도적이었고, 너무도 일방적이었다. 보수우파 중에 이들에 대응-대항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이가 아주 없지 않았지만, 대중적 영향력 면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어어 하는 통에 사상 시장 혹은 지적 시장은 모조리 좌파의 손에 장악됐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선동 사건은 이점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계기였다. 지금 문제가 된 역사교과서 문제도 그렇다. 문화권력 3인방에 의해 길러진 뒤 이미 세력화된 좌파의 총공세가 그만큼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졌음을 잘 보여준다. 참고로 영화 '태백산맥'이 나오던 해인 1994년 8개 우파 단체는 검찰에 이 작가와 작품을 고발했는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그 장문의 고발장 마지막 문장이 이렇다. 공산혁명의 당위성을 선동한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등장 이후 한국사회의 앞날을 짚은 것인데, 매우 통찰력 넘치는 고발이 무려 19년 전 있었음을 새삼 보여준다.

“'태백산맥' 전 10권을 읽는 동안 공산혁명의 당위성과 역사적 순리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대한민국에 대해 적개심을 키웠을 독자들에게 마지막 대목(10권의 말미 하대치가 훗날의 혁명을 다짐하는 대목)은 화약고에 성냥불을 붙이는 역할을 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보아 무리가 아니다. '태백산맥'이 공산혁명을 선동하고 있다 함은 이 때문이다. 근자에 이른바 주사파라는 이질적 혁명투쟁 집단이 우리사회에 자리잡고 있는 현실도 따지고 보면, 이 같은 선동적인 소설의 영향이 상당부분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글/조우석 문화평론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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