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공룡 클럽' 치려면 '한국산' 수집하라
박지성·지동원·김보경 등 한국선수 활약에 빅클럽 혼쭐
“강팀 잡으려면 한국선수 영입하라” 유럽 내 위상 급상승
유럽파 태극전사들의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은 바로 과감하게 유럽 '공룡 클럽'의 명치를 때렸다는 점이다.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시절 아스날을 두들겼다. 통산 5골을 넣어 아스날 벵거 감독을 쉼 없이 울렸다. AC밀란전(에인트호벤 시절 포함)과 첼시전에서도 각각 2골씩 기록하며 '강팀에 강한' 면모를 과시했다. 리버풀전에서 나온 강렬한 다이빙 헤딩 역전골도 팬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후배들 활약도 못지않다. 지동원(선덜랜드)은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전 결승골, 김보경(카디프시티)은 맨유전 동점골을 넣었고 기성용(선덜랜드)은 지난 10일 맨시티전 투혼의 전신 방어와 영리한 조율로 1-0 승리를 이끌었다.
박주영(리옹전 통산2골)도 지난 2010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FA컵 32강전에서 '명문' 올림피크 리옹을 상대로 역전 결승골(2-1)을 터뜨렸다. 당시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 ‘레퀴프’ 등은 박주영을 “골리앗 리옹 잠재운 다윗 킬러 주영박”으로 묘사하며 대서특필했다.
한편, 이청용(볼턴)도 지난 2010-11시즌 아스날을 상대로 눈부신 활약을 펼쳐 2-1 승리를 이끌었다. 당시 아스날은 로빈 반 페르시, 세스크 파브레가스 등 1군이 총출동했지만, 이청용의 개인기에 속수무책 당했다. 잭 윌셔는 이청용 드리블에 바짝 약이 올랐는지 이청용을 향해 살인 태클까지 시도한 바 있다. 이청용은 아스날을 상대로 통산 1도움을 기록 중이다.
손흥민도 지난 2011년 함부르크 시절 당시 ‘19살의 나이’에도 라리가 토탈컵 준결승 바이에른 뮌헨전에 나서 2골을 넣으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밖에도 프리시즌 첼시전 1골, 도르트문트전 통산 4골을 휘몰아쳤다. 유럽 자타공인 최고 명문 클럽들이 번갈아가며 태극전사에게 얻어맞은 것.
이런 경우는 세계적인 축구강국들의 사례를 봐도 흔치 않다.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조차 맨유, 맨시티, 첼시, 리버풀, 뮌헨을 상대로 골 맛을 본 선수는 극소수다. 더군다나 태극전사가 공룡 클럽을 상대로 넣은 골은 역전 결승골이 대부분으로 희소가치가 있다. 지동원의 맨시티전 결승골은 드라마틱한 ‘추가시간’에 터져 더욱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지난 25일 맨유전 추가시간 동점골을 넣은 김보경도 영국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현지에선 “박지성 후계자가 맨유를 지웠다” “김보경이 선제골 넣은 웨인 루니 골 세리머니를 조롱하듯 흉내 내 더 통쾌하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보경 동점골은 역사적 배경이 깔려있어 더욱 가치가 높았다. 소속팀 카디프가 51년 만에 승격해 ‘38년’ 만에 치른 맨유와의 맞대결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975년 맨유를 만나 0-4 굴욕을 당한 카디프는 38년을 인내하며 복수혈전만을 꿈꿔왔다. 그 꿈을 김보경이 이뤄낸 것이다.
당연히 영국 유력 매체 ‘BBC’ ‘데일리메일’ 등은 모예스의 맨유 군단에 악몽을 선사한 김보경을 주목했다. 이들은 머리기사로 영국 전역에 한국에서 온 김보경을 소개했다. 영국뿐만이 아니라 국제축구연맹(FIFA)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 매체도 김보경 활약상을 비중 있게 다뤘다.
태극전사가 유럽 일간지 헤드라인을 장식한 사례는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박지성은 맨유 시절 챔피언스리그 맹활약으로 영국 일간지 1면을 독식했다. ‘맨시티전 결승골’ 지동원은 흥에 취한 영국 남성 축구팬의 ‘키스 테러(?)’로 유럽 전역 스포츠 일간지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만큼 유럽에서도 태극전사들의 가치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맨체스터 형제 명치를 세게 때리고 싶다면 한국 선수를 보유하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린다.
실제로 영국에서 태극전사 이미지는 ‘평가절하→호기심→호감→중증 짝사랑’ 단계로 바뀌었다.
볼턴 구단주가 대표적 예다. 이청용을 양아들로 삼았다. 김보경 또한 카디프시티 연고 ‘웨일즈의 양아들’이 됐다. 지동원도 선덜랜드 서포터 사이에서 “베이비 지”로 불리며 막내아들처럼 귀여워해주고 있다. 비록 최근 선덜랜드 신임 포옛 감독의 전술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선덜랜드 팬들 기억엔 ‘골리앗 맨시티를 때려 부순 베이비 지’가 영원히 각인됐다.
태극전사 맹활약에 같은 아시아 출신 일본 선수들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특히, 맨유에서 활약 중인 가가와 신지는 최근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지성 때문에 내가 맨유에 올 수 있었다. 박지성은 한국의 자랑을 넘어 ‘아시아 보스이자 자존심’”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독일과 영국 무대를 착실하게 닦아 준 선구자 차범근을 시작으로 박지성을 거쳐 김보경에 이르끼까지, 한국축구의 놀라운 위상 변화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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