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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댓글 사건 교훈 "터질 일은 터져야한다"


입력 2013.12.25 09:58 수정 2013.12.25 10:04        데스크 (desk@dailian.co.kr)

<굿소사이어티 서평>보수진영이 새겨야할 세상의 혼돈에 대응하는 제3의 방법

'안티프래질:불확실성과 충격을 성장으로 이끄는 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와이즈베리 펴냄
"나 국회의원 장하나는 '부정 선거 대선결과 불복'을 선언한다. 부정선거 수혜자 박근혜 대통령은 사퇴해야 한다."

2013년 12월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은 쳇바퀴를 도는 수준을 넘어 과거로 회귀하는 느낌마저 든다. ‘설마! 대통령이 탄핵되겠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민주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의 회고에 자주 나오는 구절이다. 탄핵은 과거에 없었던 경험이고, 때문에 역설적으로 일어날 확률이 없어보였기 때문에 진행됐던 사건이었다.

과거 경험상 발생 확률이 거의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을 주는 현상을 ‘블랙 스완’이라고 한다. 블랙 스완은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53)는 ‘월가의 현자’라고 불리며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했다고 화제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안정을 거부하는 것이 안티프래질이다"

국정원 인터넷 댓글 사건이나 통합진보당 사태는 과거의 경험에 없었던 일이었다. 대수롭지 않아 보였던 인터넷 댓글 사건의 여파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발생확률이 없다고 느껴지는 일이 갑자기 엄청난 사건으로 다가 올 수 있다는 탈레브의 주장이 생각나는 2013년이었다. 그렇다면 블랙스완이라는 현상이 발생 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의문이 들 무렵 저자는 5년 만에 새 책을 내 놓았다.

2014년 새해에 소개하게 되는 책이 바로 블랙스완에서 제기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만들어진 듯한 '안티프래질:불확실성과 충격을 성장으로 이끄는 힘'(와이즈베리 펴냄)이다. 안티프래질(Antifragile)은 저자가 만든 신조어이다. ‘깨지기 쉬운’을 의미하는 프래질(fragile)에 ‘반대’라는 의미의 접두어 안티(anti)를 붙여 만들었다. 여기서 프래질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무엇이 프래질한 것인가? 그것은 큰 것, 최적화된 것,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 오랜 세월 동안 검증된 경험법칙이 아니라 이른바 과학적 방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을 의미한다."(514쪽)

과학적 방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을 프래질이라 한다면 과연 안티프래질은 무슨 뜻일까? “세상에는 충격으로부터 혜택을 보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가변성, 무작위성, 무질서, 스트레스에 노출될 때 번창하고 성장하며, 모험과 리스크,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충격을 가하면 부서진다는 의미인 프래질에 정확하게 반대되는 단어는 없다. 이제부터 이런 단어를 ‘안티프래질Antifragile이라고 부르자.” (14쪽)

'안티프래질'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괴물, 즉 여러 개의 목을 갖고 있는데다 그 중 하나가 잘리면 새로 2개가 생기는 히드라에 비유될 수 있다. 히드라는 상대방이 자신의 목을 쳐주길 원한다고 한다. 안티프래질은 회복력과는 좀 다른 개념이다. 회복력이 있는 물체는 충격에 저항하면서 원상태로 돌아온다. 반면, 안티프래질한 대상은 충격을 가하면 더 개선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개인과 기업은 정확할 리 없는 미래의 리스크를 예측하는 대신, 현재의 프래질과 안티프래질을 탐지하여 이에 맞춘 전략을 짜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하는 암시를 준다.

저자는 블랙 스완 현상에 대한 해독제로서 ‘안티프래질’ 개념을 소개하고, 불확실성, 무작위성, 가변성, 무질서를 피하지 말고 적극 활용할 것을 주문한다. 그에 따르면 안티프래질은 안정을 거부한다. 소위 보수적인 사람들은 리스크가 없는 안정을 추구한다.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저자는 안정은 리스크가 축적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실패를 막으면 안정화가 된다는 논리에 명백하게 반대한다. 저자는 소위 빚 탕감 구제금융을 예로 든다.

“구제금융이 그 어느 누구도 실패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마저 몰락시키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개별적인 프래질을 시스템 전체에 전가시켜 공멸하거나 심지어 타인을 희생시키려는 수작”이라고 지적한다. “모두의 몰락은 결국 약자의 몰락이며 지속적인 실패만이 시스템을 보존해줄 수 있다”고 단언한다.

"터질 일은 터져야 한다"는 저자의 목소리

"지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지나친 영리함이다."

터질 일은 적당한 선에서 터져야 하지 얄팍한 지혜로 막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탈레브의 조언이다. 모든 나쁜 일을 막을 지도자나 시스템은 지구상에 북한을 제외하고는 없기 때문이다. 탈레브는 안티프래질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바벨 전략’을 소개한다. 양극단의 조합을 추구하고 중간을 기피하려는 생각을 나타내는 바벨 전략은 중간 지점에서 상황을 그르치지 않는 이원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조합은 중간입장에선 애매한 태도가 아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무책임하고 애매한 태도는 상황을 악화시키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바람은 촛불 하나는 꺼뜨리지만 모닥불은 살린다. 무작위성, 불확실성, 카오스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당신이 이런 것들을 피하지 않고 활용하기를 원한다. 불이 되어 바람을 맞이하라." (13쪽)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의 잘 모르는 특정 사건에 개입하고 싶은 욕망이 문제를 일으킨다. 주7일을 근무하는 현재 청와대 시스템에서는 모르는 일까지 참견을 해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의 쓸데없는 개입이 없었더라면 쉽게 끝날 사건이 개입으로 더 어려워지는 경우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럼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인가? 저자의 의도를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혼란의 원인은 책임감 없이 일을 벌이는 사람들에게 있지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역사상 어떤 순간에도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 사람들, 즉 개인적인 리스크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들이 지금처럼 커다란 권력을 행사한 적은 없다. (18쪽)” 저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부의장을 지낸 현직 프린스턴 대학 교수 앨런 블라인더를 실명으로 거론하면서 그를 사기꾼으로 지목할 정도로 강하게 비판한다. "사회에 피해를 주면서 여론을 주도하는 사람에게 처벌이 가해지고 있지 않다. 이는 아주 나쁜 관행이다."는 것이다. 저자는 더 나아가 은행업자, 대기업 임원, 정치인들 중에서 권리는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이들이 블랙스완을 부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주로 여의도에 있는 정치인들이 저자의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승부의 책임이 없는 예측은 기술자가 근무하지 않는 무인 원자력발전소만큼이나 위험하다. 주장은 있고 책임은 없는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구절이다.

보태는 것보다 빼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넷 댓글 수사는 청와대나 정치인들이 오해를 부를 행동을 하지 않고 놔두면 되었을 일이다. 개입하려면 제대로 끝까지 책임을 지는 개입을 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정치인이나 행정가를 필자는 본적이 없다. 댓글 사건이 대통령까지 퇴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일 뿐이지만 쓸데없는 정치인들이나 행정가들의 개입은 블랙스완을 부를 수도 있다. 이런 판단을 통진당 사태에 대입할 경우 어떻게 될까? 혹시 정당해산 없이도 선거로 자연스럽게 심판 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중간결론이 가능하다.

야당 지지층도 통진당에 대부분 부정적이다. 그러나 필요 이상의 정치인들의 개입은 통진당에 대한 동정으로 이어지고 그 관심은 정치적 영향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안티프레질'에서 얻은 지혜인데, 그걸 지금 여당 쪽의 판단과는 다르다. 다만 댓글수사의 개입이나 통진당 정당해산 같이 쓸데없는 일을 만들면 결과는 지금처럼 더 나빠질 뿐이라는 점에는 서로 동의할 수 있으리라. 저자의 주장처럼 공포와 혼돈을 제거하려 하지 말고 어설프고 인위적인 개입을 줄이는 것이 상책이다.

"합리주의가 더욱 세련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지 못하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이다."

무엇을 하는 것보다는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기술적 지식에 대한 숭배와 개입과 통제에 대한 지나친 믿음이 문제를 부른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주장이다. 결론은 자연에 본래 있었던 "안티프래질" 즉 실패와 공존하는 법을 알고 조화롭게 살면 된다는 것이다. 지나친 의욕과잉이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한국사회에 적절한 암시를 주는 책이다.

한국사회의 보수주의 정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이 책의 발상법에 반드시 동조하기는 힘들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의 논리와 발상을 우리사회의 정치공학에 바로 적용하긴 힘들다. 하지만 조금은 더 유연함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아래 구절은 이 책의 모든 것을 정리해주는 한 문장 이라고 생각한다.

"삶은 무작위성을 띠는 자극으로 이루어지며 좋든 싫든 간에 과업으로 여겨야 할 대상은 아무것도 없다."

글/고진석 독서컨설턴트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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