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이 아니라 대리모와 같은 심정으로 썼어요"
<인터뷰>생환 국군포로 실화를 동화로 엮어낸 정길연 작가
정길연 작가의 첫 동화작품인 ‘설마 군과 진짜 양의 거짓말 같은 참말’을 읽다보면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나는 얼마나 통일을 바라고 있나.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수가 2만7000여명에 달하면서 저마다의 사연이 퇴색해버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0살 안팎의 ‘설마’ 군과 ‘진짜’ 양의 탈북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는 왜 통일을 아직 못 이뤘을까를 재차 묻게 된다.
동화 속의 ‘설마’ 군인 경호는 함경남도 함흥 근처에서 살면서 아빠를 따라 약초나 나무뿌리를 캐는 일을 도우면서 살았다. 중학생인 형은 학교에 가는 날보다 가지 않는 날이 훨씬 더 많았고, 형 친구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학교에는 어차피 가르칠 선생도 배울 학생도 없게 된 것이 학교 선생님들도 마을 사람들처럼 따로 돈 버는 일에 열중했기 때문이다.
"죽을 만큼 배가 고프면 도둑질이라도 하게 돼요. 푸성귀를 훔치다 밭주인에게 들키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어요. 도둑당한 사람도 도둑질한 사람처럼 살림살이가 넉넉한 게 아니니까요. 당이나 군 농장에서 농작물을 훔치다 걸리면 그때는 망신 정도가 아닙니다. 농장 관리를 책임진 분조장에게 죽을 만큼 얻어맞으니까요. 그럴 땐 아무리 매를 때려도 끝까지 훔치지 않았다며 버텨야 해요, 까딱 잘못하면 ‘나라의 물건을 훔친 반동분자’로 몰려 자아비판을 해야 하거든요. 심하면 본보기로 공개처형을 당할 수도 있어요."
어느날 아침, 경호의 형이 사라지고... 또 어느날 밤, 엄마 아빠가 큰소리로 싸우는 소리를 들은 이튿날 새벽 경호는 아빠의 손에 이끌려 하염없이 걸었다. 걷고 또 걸어서 아빠나 경호나 산짐승을 닮아갈 즈음 산속에서 움막을 만났다.
움막집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이곳에서 얼마간 머물면서 아빠는 중국으로 약초를 내파는 일을 했다. 마대자루에 비닐로 꽁꽁 싼 약초를 넣고 두만강으로 던져보내면 저쪽에서 역시 비닐로 꽁꽁싼 돈을 작은 주머니에 담아 강으로 던져보내는 식이었다. 아빠가 먼저 중국으로 떠난 지 2년이 되어 경호는 약초처럼 마대자루에 실려 탈북에 성공한다.
책 제목으로 쓰인 경호의 별명인 ‘설마’와 또 다른 탈북 꼬맹이 송화의 별명 ‘진짜’는 이들이 겪은 거짓말 같은 참말을 전해들은 남한의 주변사람들의 반응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정길연 작가는 이번에 생환 국군포로의 수기를 바탕으로 한 가족동화인 ‘할아버지에게 아빠가 생겼어요’와 물망초학교의 두 탈북자 어린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가족동화 ‘설마 군과 진짜 양의 거짓말 같은 참말’ 두 편의 동화를 펴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정길연 작가는 지난 1984년 ‘가족수첩’으로 등단하고 드라마로도 제작된 소설 ‘변명’ 등을 발표했다.
정 작가의 두 동화작품은 박선영 전 국회의원이 만든 사단법인 물망초가 출판사업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발간한 도서이기도 하다. 화가 채현교 씨와 8세부터 18세의 국내외 초중고 학생들 45명이 동화 원고를 읽고 감동받은 장면을 그려 보내준 삽화를 함께 실었다.
정 작가는 “소재 자체가 가진 힘이 있어서 쉽게 몰입해서 쓸 수가 있었다”면서 “내 글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썼다. 마치 대리모와 같은 심정으로 글을 썼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의 피해자처럼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불행과 마주한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지 않나. 작가로서 북한 주민을 위해 할 수 있는 몫을 찾아서 차근차근 해내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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