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불안한 '2인자' 중도 사퇴한 역대 총리는?
내각 수장이자 권력 2인자, 정국 흔들릴때마다 '풍전등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무상’이 회자되는 것은 그만큼 권한과 책임의 무게가 비례한다는 반증이다. 내각의 수장이자 정권의 ‘2인자’이지만, 동시에 대통령의 칼끝에 명운이 달린 국무총리의 경우, 그 나락이 더욱 까마득한 이유다.
지난 27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다.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것.
앞서 정부는 지난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 구조 및 수습 과정에서 컨트롤타워조차 없는 모습을 보이면서 “무능한 민낯이 드러났다”는 악평을 받았다. 여론의 질책과 분노는 곧바로 청와대를 향해 쏟아졌고, 이어 ‘내각총사퇴설’도 제기됐다.
야당과 시민사회도 “국정운영의 최고 책임자가 사과해야한다”며 대통령 책임론을 들고 나왔고,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연일 하락세를 보이며 56.6%까지 떨어졌다.
결국 정 총리는 “더 이상 국정운영에 부담을 줄 수 없다”면서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실종자와 실종자 가족이 아닌 대통령 입장만을 위한 결정’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아울러 박근혜정부가 약속했던 ‘책임총리제’ 역시 대통령의 입만 기다리다가 대통령의 입장이 난처해지자 면피용으로 저물어 버렸다는 지적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처럼 국정운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총리는 역대 정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우선 과거 김영삼정부는 총 세 명의 총리가 중도 사퇴 명단에 올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당시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돼 왔던 지역감정을 극복하겠다며 전북 무주 출신의 황인성 전 총리를 발탁했다. 하지만 1993년 12월 우루과이라운드 쌀 시장 개방 파동이 일면서 정 전 총리는 10개월 만에 총리직에서 내려왔다.
김대중정부도 ‘첫 권력 분점형 총리’를 잃었다. 일명 ‘DJP 연합’의 산물로 총리직에 앉은 김종필 전 자민련총재는 IMF 외환위기 수습에 나선 대통령을 도와 국정 운영의 실세로서 내각을 이끌었다. 하지만 정권과의 이견이 커지면서 동력을 상실, 결국 취임 1년 9개월 만에 사퇴했다.
대통령이 직접 “실패한 인사”라고 인정한 총리도 있다. 참여정부(노무현정부) 당시 보수와 진보 세력이 팽팽히 맞서면서 정국의 긴장 상태가 이어졌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꽁꽁 언 정국을 풀어줄 인물로 고건 총리를 발탁했지만, 해당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1년 3개월 만에 물러났다.
이어 후임으로 발탁된 이해찬 총리 역시 ‘3.1절 골프 파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1년 8개월을 끝으로 사퇴했다.
정치 경험이 없던 정운찬 전 총리는 재임 기간 내내 특히 고역을 치른 총리로 꼽힌다. 정 전 총리는 2010년 10월 이명박 정부 당시 정국의 최대 쟁점이었던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면서 10개월 만에 직을 내려놨다.
풍전등화와 같은 총리의 명운에 대해 전문가들은 “총리가 소신 있게 부처를 이끌어갈 수 있는 국정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30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지금처럼 총리가 힘이 없으면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방패막이가 되거나 희생양이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총리가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과거의 총리들도 대부분 그야말로 간판, 얼굴마담에 그쳤다”면서 “그러다보니 대통령에게 모든 부담이 쏠리고 부처 역시 총리가 아닌 대통령만 바라보는 현상이 되풀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도 “박근혜 대통령 뿐 아니라 역대 대통령들 역시 권한을 주지 않으면서 총리의 책임을 운운하면 안된다. 총리에게 실질적 권한이 없지 않느냐”라며 “총리에게 자율권을 부여해서 능동적으로 부처를 관리하고 장악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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