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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박지성의 24년…그리고 위대한 발자취


입력 2014.05.14 14:45 수정 2014.05.16 09:41        데일리안 스포츠 = 박시인 객원기자

24년간의 선수 생활 마감, 향후 행보 미정

맨유에서의 활약은 한국 넘어 아시아의 자부심

박지성이 24년간의 선수생활을 마감한다. ⓒ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한국 축구의 레전드 박지성(33)이 축구 인생을 마감한다.

박지성은 14일 경기도 수원 박지성 축구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올 시즌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감한다"며 현역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박지성은 “지난 2월부터 은퇴에 대해 생각했다.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더이상 지속적으로 축구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은퇴 배경을 밝혔다.

박지성의 축구인생 24년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수원 영본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해 세월초등학교로 전학한 6학년, 전국대회 준우승으로 차범근 축구대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박지성은 중, 고등학교 시절 왜소한 체격으로 인해 지도자들로부터 혹평을 들어야 했고, 대학팀과 K리그 팀들에게마저 외면 받으며 시련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수원공고 이학종 감독의 도움으로 김희태 감독이 사령탑으로 있던 명지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박지성의 운명을 바꿔 놓은 것은 명지대와 올림픽 대표팀의 연습 경기였다. 당시 허정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은 박지성의 영리한 플레이에 감명 받아 과감하게 발탁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박지성은 만 19세의 어린 나이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박지성은 명지대를 휴학하고 J리그 교토 퍼틀상가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인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박지성을 신임하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지도력에 모두가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의 선택은 옳았다. 박지성은 오른쪽 윙포워드로 활약하며 4강 신화의 주역이 됐다. 특히 조별리그 포르투갈전에서 그림 같은 왼발 발리슛은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로 팬들의 뇌리에 각인되고 있다.

히딩크 감독과의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히딩크 감독은 자신이 몸담게 될 PSV 에인트호번에 박지성을 함께 데려갔다. 박지성은 입단 초기 위축된 플레이로 홈팬들로부터 야유에 시달렸으나 위기를 실력으로 극복해냈다.

박지성이 유렵 전력으로 이름을 날린 것은 2004-05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였다. 당시 에인트호번의 4강 돌풍을 주도한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레이더에 포착되면서 2005년 여름 맨유 입단 제의를 받는다. 히딩크 감독은 에인트호번 잔류를 설득했지만 박지성은 고심 끝에 도전을 선택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사상 최초로 한국 선수가 입성하는 순간이었다.

박지성은 프리미어리그 개막전부터 선발로 나섰다. 루드 반 니스텔루이, 웨인 루니,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쟁쟁한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많은 경기에 출전했고, 팀에 필요한 주축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박지성은 국민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안겼다. ⓒ 연합뉴스

박지성에게 다시 시련이 찾아온 것은 2007년 3월이었다. 무릎 연골 부상으로 약 9개월가량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했다. 선수 생활 최대 위기였다. 하지만 박지성은 딛고 일어섰다. 빠른 스피드와 저돌적인 돌파력은 다소 줄었지만 더욱 성실한 플레이와 수비에 치중하면서 중요한 경기마다 퍼거슨 감독의 선택을 받게 된다. 박지성은 유럽 축구 전문가들로부터 수비형 윙어라고 호평 받는다.

2007-08시즌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명단 제외는 박지성에게 큰 아픔이었다. 그럼에도 박지성은 1년 뒤 바르셀로나와의 결승전에 선발 출전하며 능력을 입증해보였고, 2년 뒤 다시 한 번 결승 무대를 밟았다.

한국대표팀에서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발휘하며 16강 진출을 이끌었으며, 2011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다.

맨유에서 200경기를 소화한 박지성은 2012년 여름 7년간의 맨유 생활을 청산하고, 퀸즈파크레인저스로 이적해 1시즌을 활약한다.

그리고 박지성은 지난해 8년 만에 네덜란드 무대로 복귀했다. 마지막 행선지는 친정팀 에인트호번이었다. 에인트호번에서 함께 선수 생활을 했던 필립 코쿠 감독의 제의를 받고, 1년 임대 계약을 맺었다. 박지성은 리그 4위로 유로파 리그 출전권을 획득하는데 일조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마무리했다.

박지성은 차범근 이후 최고의 한국 축구 레전드였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자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원정 첫 16강에 기여했으며, 세 차례 월드컵에서 모두 골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였다. 박지성의 성공으로 차범근 이후 명맥이 끊겼던 한국 선수들의 유럽 빅리그 진출이 다시 호황을 이뤘다.

박지성은 마지막으로 "좋은 선수생활을 하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축구선수 박지성의 인생은 끝이지만 많은 분들에게 받은 사랑을 어떻게 돌려드리고 보답할지에 대해 더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제 박지성의 새로운 인생 2막이 시작된다.

박시인 기자 (asd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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