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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논란, 무모한 도전과 맹신이 낳은 오점


입력 2014.06.29 18:14 수정 2014.06.29 18:16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원칙 깬 홍명보 고집, 박주영 무모한 도전

한국축구 월드컵 도전사에 가장 큰 오점

홍명보 감독의 의리사커 논란은 박주영 발탁으로부터 시작됐다. ⓒ 연합뉴스

발탁부터 논란의 중심이 됐던 박주영(29)의 월드컵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2014 브라질월드컵’ 2경기 선발출전, 112분간 무득점-슈팅 1개. 박주영이 남긴 공식 기록이다. 벨기에와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아예 교체 멤버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극도의 부진에도 박주영에 변함없는 신뢰를 지켜왔던 홍명보 감독도 계속된 부진과 여론의 거센 압박 속에 결국 박주영을 향한 '의리'를 접었다.

한국은 1무2패로 1998 프랑스월드컵 이후 16년 만에 조별리그에서 무승으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박주영의 대체자로 출전했던 김신욱이나 이근호가 월드컵 내내 훨씬 더 좋은 활약을 보이며 박주영의 빈자리를 무색케 했다. 박주영을 향한 홍명보의 무리한 집착이 결국 패착이었음이 드러난 대목이다.

박주영은 의리사커의 중심이었다. 2011년 아스날 입단 이후 3년간 영국과 스페인(임대)을 오가며 한 번도 주전으로 꾸준하게 활약한 적이 없다. 특히, 월드컵을 앞두고 지난 시즌에는 소속팀 아스날에서 컵대회에 단 11분 소화에 그쳤다. 1월 2부리그 왓포드 임대 이후에도 좀처럼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박주영을 대체할만한 공격수가 없다"고 주장하며 소속팀에서 꾸준히 활약해온 선수들을 제치고 박주영을 최종 엔트리에 불러들였다. 박주영은 심지어 최종 엔트리가 정식 발표되기 전부터 봉와직염 부상을 이유로 소속팀 일정을 포기하고 국내에 조기 귀국해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전담 관리를 받는 등 이른바 황제훈련 논란의 중심에 섰다.

누가 봐도 비상식적으로 진행된 박주영의 월드컵 발탁 과정이 일사천리로 가능했던 것은 2년 전 남긴 잘못된 전례에서 비롯됐다. 박주영은 2012 런던올림픽 때도 지금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으나 홍명보 감독의 굳건한 신임 속에 '와일드카드'로 올림픽대표팀에 승선한 바 있다.

홍명보 감독은 당시 병역논란으로 어려움을 겪던 박주영의 기자회견까지 동석하며 박주영을 감싸 안았다. 당시 박주영은 일본과의 3·4위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한국의 동메달 획득에 힘을 보탰다. 올림픽 직후 홍명보 감독은 "박주영을 뽑지 않았다면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며 자신의 선택에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시의 기억을 바탕으로 홍명보 감독은 박주영이 이번에도 중요할 때 제몫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홍명보 감독은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간과했다. 첫째는 올림픽과 월드컵의 수준 차이였고, 둘째는 박주영의 몸 상태와 동기부여였다.

연령제한이 있는 올림픽은 와일드카드 3장을 제외하면 23세 이하 어린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는 무대다. 박주영은 당시 6경기에서 2골을 넣었지만 대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자신보다 훨씬 어린 선수들을 상대로도 좀처럼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세계 최정상의 선수들이 모이는 월드컵은 올림픽과는 다른 차원의 무대였던 반면, 박주영의 컨디션은 2년 전보다 더욱 떨어져 있었다.

더구나 올림픽과 달리, 월드컵에는 '병역혜택'과 같은 당근이 없었다. 2012년 당시 박주영은 모나코 영주권 취득을 통한 편법적인 병역연기 논란으로 여론의 사면초가에 놓여 있었다.

박주영은 당시 가지회견을 통한 입장표명을 권유한 축구협회와 최강희 감독의 제의도 뿌리치고 결국 국가대표팀에 등을 올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팀에는 승선해 이중적인 태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박주영은 2006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병역혜택이 관련된 대회에는 빠짐없이 참석했다.

브라질월드컵에는 그러한 동기부여가 없었다. 부상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날리던 박주영의 투지는 이번 월드컵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오랜 실전 공백으로 경기 감각이 저하된 탓도 있었지만 박주영은 공격수로서 적극적인 몸싸움으로 수비수와의 경쟁을 이겨내겠다는 근성도, 스스로 공격찬스를 만들어내겠다는 집요함도 묻어나지 않았다.

월드컵 기간 중 아스날로부터 공식적으로 방출 통보를 받은 박주영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번 월드컵을 통해 가치를 다시 증명해야할 필요가 있었으나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

박주영이 진정으로 대표팀과 한국축구를 위해 순수하게 헌신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면 먼저 소속팀에서 경기력으로 증명했어야 했다. 박주영은 2011년 아스날 입단 이후 소속팀에서 제대로 된 모습은 보여준 적이 없다.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뛰어야 가치가 있다. 소속팀에서 전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일찌감치 임대나 이적을 통해 더 적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 결국 박주영은 월드컵을 코앞에 둔 시점까지 아스날에서 벤치만을 지키며 시간을 허비했다.

홍명보 감독과 대표팀이 그의 복귀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요지부동이었다. 위건의 긴급 임대를 거절했고 왓포드 임대도 1월 이적시장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야 겨우 이루어졌다. 그 사이에 경기력은 급격히 떨어졌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홍명보 감독은 3월 그리스와의 평가전에서야 결국 발탁했다. 박주영은 당시 결승골을 넣으며 건재를 입증하는 듯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장면이 마지막 불꽃이 됐다. 최종 엔트리 발탁 이후에도 결국 경기력을 회복하지 못한 박주영은 명예회복에 실패하며 홍명보호의 월드컵을 망친 주범으로 낙인 찍혔다. 그의 유럽에서의 축구 인생도 불투명해졌다.

이처럼 박주영의 월드컵 '의리' 출전은 개인은 물론이고 월드컵 대표팀과 한국 축구사에도 나쁜 전례를 남겼다. '박주영을 대체할 공격수에 없다'던 홍명보 감독의 변명도, 이번 월드컵에 손흥민, 이근호, 김신욱 등의 맹활약을 통해 선입견으로 밝혀졌다.

'특정선수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원팀 철학과 '소속팀에서 활약하는 선수를 중용한다'던 홍명보 감독의 원칙마저 무너뜨린 박주영의 발탁은 결국 홍명보호에 '의리사커'라는 부정적인 딱지만을 안기며 결과와 내용, 모든 면에서 실패한 월드컵으로 전락시켰다.

박주영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책임은 홍명보 감독에게 있지만, 특혜 발탁과 황제훈련 논란 등을 거치며 박주영을 둘러싼 일련의 잘못된 과정에도 '제 식구 감싸기'에만 치중하며 정당한 비판과 문제제기에 침묵한 축구협회와 축구계 전체도 공통의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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