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왕의 얼굴' 표절 이전에 예의가 없다

김헌식 문화평론가

입력 2014.08.28 14:54  수정 2014.08.28 14:59

<김헌식의 문화 꼬기>법 따지기 전에 영화 '관상'에 감사부터 해야

아도르노(T.Adorno)가 ‘유사개별화’(pseudo-individualization) 현상이라는 걸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작품과 비슷한 작품이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 작품은 단순한 작품이 아니고 유명한 작품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한 작품과 비슷한 작품이 많이 만들어지지만, 그 작품과는 꼭 같지 않기 때문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말했던 복제의 수준은 아니다. 단지 유사할 뿐, 각자 개체적인 특징을 갖는다.

아도르노는 이를 매우 부정적인 관점으로 유사개별화의 예술 행위를 비판했다. 발터 벤야민 식으로 말하면 기술시대의 복제와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대중예술시대가 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매우 많아졌다. 왜냐하면 상업적인 목적이 더욱 강해졌기 때문이다. 실패를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경영행태가 더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상업적 경영전략 차원에서 보면 유사개별화 현상은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는 면이 있다. 리스크 헷징의 관점이 있기 때문이다. 리스크 헷징이란 위험요인을 최소화하는 것을 말한다. 문화콘텐츠 산업은 불확실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즉 흥행을 하면 크게 수익이 생기지만, 그렇지 않으면 크게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흥행 수익은 수익체증을 하기 때문에 더욱 성공을 위해 리스크 헷징이 중요하다. 잘만하면 수익의 증가폭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하기 때문에 더욱 각고의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특히, 미디어콘텐츠를 만드는 영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리스크헤징 방법이 바로 유사개별화이다. 이미 흥행을 한 작품과 같은 유형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흥행한 원작을 리메이크하는 방식이다.

영화 '관상' 포스터.ⓒ주피터필름

같은 드라마나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방법도 있고, 소설을 영화나 드라마로, 영화를 드라마나 혹은 드라마를 영화로 제작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비슷한 컨셉을 활용하여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방식이다. 즉 흥행한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소재나 설정을 통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유형이 표절 시비의 단골손님이 된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이 문화예술창작에는 존재하는데, 그만큼 아이디어나 컨셉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을 대중적인 흥행작품으로 누가 만들어내는가이다.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흥행작으로 만들어내기 쉽지 않으므로 콘텐츠화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투자를 담당하는 이들이 손해를 최소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돈을 대는 입장에서는 위험기피적일 수밖에 없다. 이때 나올 수 있는 말이 바로 되는 작품, 혹은 검증된 작품만 제작한다는 것이다.

영화 ‘관상’과 KBS ‘왕의 얼굴’이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유사개별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일단 영화 '관상'이 크게 흥행을 했으니 이와 비슷한 ‘왕의 얼굴’이 표절을 한 것으로 여겨질 법하다. 진실은 가려보아야 밝혀질 일이다. 누군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착오와 오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역시 예의가 없다는 판단이 서게 만든다.

과거부터 관상을 소재로 삼아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려고 한 이들은 매우 많다. 요점은 그것을 누가 흥행시켰는가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다들 관상을 소재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었을 때 흥행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저했다. 관상에 관한 불확실성은 여전하고 그것에 따른 리스크 헤징을 어떻게 할 지 사례가 없었다.

당연히 관상을 소재로 한 작품이 흥행을 하게 되면, 투자와 제작을 하는 사람들은 훨씬 관상 소재의 작품에 관심을 보이게 된다. 관상 소재의 콘텐츠가 흥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기획안과 대본보다 압도적으로 설득력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왕의 얼굴’은 ‘관상’에 대한 표절 여부를 떠나 감사의 예의를 차려야 한다. 표절여부에 관계없이 불확실성을 줄여주고, 리스크 헤징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면이 있기 때문이다. 표절이냐 아니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점이라고 생각된다. 솔직히 ‘왕의 얼굴’이라는 드라마가 방영 가능해진 것은 영화 ‘관상’의 흥행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관상’이 아니었다면 스스로 ‘관상’을 오랫동안 준비했다고 해도 편성을 받아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공영방송에서 전근대사회의 비과학적인 관상이라니 했을 법 싶다.

우리나라는 콘텐츠 헤징을 해 준 것에 대한 예의가 없다. 이런 일은 정말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여기에서 '왕의 얼굴'만 뭐라 할 것도 아니다. 물론 영화 ‘관상’도 예외는 아니다. 영화 ‘관상’은 허영만의 관상 만화 ‘꼴’에 감사와 예의를 표해야 한다. 이 만화가 히트를 하면서 관상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고리타분한 관상이 아니라 실체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매체들은 영화 '관상' 때문에 '꼴'이 많이 나간 것으로 보도했다. 하여간 자신만이 잘해서 흥행한 것으로 생각하여 저작권만을 주장하는 것은 법리 이전에 예의가 없는 것이다.

대중문화 콘텐츠는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항상 진력하고 있고, 그 가운데 흥행 콘텐츠가 위험을 줄여주어 한결 의사결정 판단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것은 서로에게 고마운 일이다. 그렇다면, 법리와 이익 이전에 그 위험을 줄여준 것에 대한 감사와 예의는 차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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