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어린이들 내쫓는 동대문구청, 이유가...
"서울시 재정비 사업때문에" 구청, 구립어린이집 폐쇄
서울시는 "구가 계획한것" 학부모들 "일방적 통보" 분노
“구립 어린이집에 아이 보내려고 2~3년씩 대기해 겨우 들어왔는데 나가라니요”
“뾰족한 대책도 없이 무작정 아이들을 내보내라는 게 말이나 되는 건가요”
지난 28일 오후 4시.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위치한 구립 ‘동대문 어린이집’ 앞에는 아이의 하원을 기다리는 학부모들이 하나둘 모여 있었다. 평소 같으면 아이들 먹일 간식을 고민했을 이들 학부모는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들은 얼마 전 동대문구청으로부터 총 94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연말까지 다른 어린이집으로 보내야 한다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들었다. 서울시에서 현재 계획 중인 답십리 16구역 재정비 촉진 사업으로 내년 초부터 동대문 어린이집이 위치한 자리에 도로를 깔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불과 2주 전인 10월 16일 아침 여느 때처럼 아이를 등원시키던 학부모들은 처음으로 “12월 20일경에 구립 어린이집이 갑작스럽게 폐쇄된다”는 말을 듣게 됐다. 하루아침에 당장 두 달 뒤부터 아이들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걱정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
대책도 없이 아이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구청의 행태에 답답함을 느낀 학부모들은 민원 신청을 넣기 시작했다. 결국 구청 측에서는 21일 어린이집에서 학부모 설명회를 열고 당초 12월 말 휴원 예정 계획을 2015년 2월로 연장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설명회라고 해서 기대해서 갔지만 협상과 설득의 과정은 없었고 어쨌든 아이들을 기한까지 내보내라는 일방적인 통보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몇몇 학부모들은 화를 참지 못하고 ‘재원아동 보육방안 안내’라고 적힌 A4 한 장짜리 구청 유인물을 그 자리에서 찢어 버리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이후 24일에는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새정치민주연합 소속)과 몇몇 학부모 간 면담이 성사됐지만, 이 자리에서도 구청 측과 학부모들 사이의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날 유 구청장은 “엄마들이 동의하지 않고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강제 철거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대문 구청 뒤늦게 어린이집 신축계획 밝혔지만 '불신'
학부모들의 반발이 점차 심해지자 구청에서는 뒤늦게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봐주겠다며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동대문 어린이집 인근에 위치한 국공립·민간·가정·법인단체 어린이집의 연령별 결원 현황 목록을 뽑아 학부모들에게 전달한 것.
그러나 구청 측이 제시한 구립 어린이집 중 결원이 많은 한 곳은 만1~2세 영아반을 전문으로 하고 있어 만 3~4세의 유아를 돌보는 전문 보육교사도 미비한 상황이다.
게다가 일부 민간 어린이집은 이 곳 답십리동과는 멀리 떨어진 회기동과 경희대 부근에 위치해 아이의 등·하원에 불편함을 유발하는 것은 물론 시간절약이 필수인 맞벌이 부부에게 큰 부담이 돼 이마저도 탐탁치 않다.
또한 구청은 2015년 12월 완공 예정으로 현 어린이집에서 약 50m 떨어진 부지에 구립어린이집을 신축할 계획이며, 완공 후에는 흩어진 아이들을 다시 불러 모아 원래대로 다닐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이 같은 구청 측의 제안에도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7세 아이를 보내고 있는 이모 씨(여, 28)는 “동대문 신문고 기사를 보면 더더욱 폐원으로 갈 방향으로 잡은 것 같다”며 “나는 이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게 싫다. 아이들이 힘없이 쫓겨나고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구청에서는 그냥 보내면 된다 생각하는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5세 남아의 어머니 서모 씨(39)는 “이 곳 아이들 모두 2~3년씩 대기하다 들어왔고 우리 아이도 겨우 올해 3월에 들어왔다. 이제 겨우 적응해가고 있다는데 또 다른 어린이집에 가서 스트레스 받을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쌍둥이 자녀 중 한 아이만을 보내고 있는 이모 씨(여, 39) 역시 불만을 표했다. 그는 “어린이집 정원 문제로 부득이하게 쌍둥이 중 한 아이만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두 아이를 떨어뜨리면서까지 보내는 것은 그만큼 구립 어린이집의 시스템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씨는 “구청이 우리 아이들을 단순히 숫자로 보는 것에 너무 화가 난다”며 인근 어린이집 결원에 맞춰 아이를 편입학시키라는 구청의 대책도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라고 비판했다.
이밖에 두 자녀를 모두 이곳 동대문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이모 씨(여, 37)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말했던 공약이 무엇인가”라고 반문하며 “국공립 어린이집을 더 많이 세워주겠다더니 지금 우리 아이들 100명 모두 다 밖으로 내몰고 있지 않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시장은 6·4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시절 ‘1000개 국공립 어린이집 추가 공급’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실제 선거운동 당시 국공립 어린이집을 직접 방문해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한 수요가 많은 서울시의 현실을 언급하며 “사회나 정부가 아이를 마음 편히 키울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장애통합 어린이집'이었던 구립어린이집, 장애어린이들 대책은 '전무'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동대문 어린이집은 동대문구에서 몇 안 되는 ‘장애통합 어린이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에 의한 언어 및 발달 지양 진단을 받은 6세 남아의 어머니 나모 씨(35)는 누구보다도 걱정하고 있다.
그는 “동대문구에는 6개의 장애통합교육 어린이집이 있는데 2곳은 인증이 확실치 않고 1곳은 올해 시행도 하지 않고 있어 남은 3곳 중에 한 곳을 선택해야하는 실정이다. 특수교사 1명당 3명의 장애아를 돌보기 때문에 장애아가 어린이집에 가는 것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나 씨는 “지금 여기만 해도 17명의 장애아들이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며 “장애아교육을 받기도 힘든 상황인데 구청에서는 어린이집까지 옮기라고 하니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현재 이들 학부모는 구립 어린이집 신축 기간을 고려해 도로 확장을 계획을 10개월간 미뤄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새 건물이 완공되기 전까지 현 어린이집의 부지와 위치를 유지해달라는 것이다.
이밖에 이들은 10개월간 임시 시설을 마련해 현 어린이집 아이들을 모두 수용한 뒤 새 시설이 완공된 후에 온전히 이전시키는 대안도 구청 측에 제시한 상태다.
동대문구청 "서울시의 도로확장계획이 결정돼" 해명
이와 관련해 동대문구청의 한 관계자는 “지난 8월에 서울시에서 도로확장계획이 결정돼 나름대로 수순을 빨리 잡아 이를 학부모님들에게 전달했지만 이런 상황에 놓이게 돼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책 마련도 없이 뒤늦게 아이들을 내보내라는 통보를 했다’는 학부모들의 불만 사항에 대해 “우리는 시간적으로 4개월이면 (전원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구청 측이 제시한 대책과 관련해서는 “답십리 1동 인근 어린이집 23곳 결원 상태를 모두 파악해 명단을 주고 학부모들이 참고해 선택하라고 안내했고, 장애아의 경우는 인근 용두동에 장애아를 책임지는 구립 어린이집으로 옮길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어린이집 신축 공사는 설계공모와 입찰공모 등 여러 절차가 남아있어 학부모들 요구대로 지금 당장 진행하기 어렵고, 임대를 얻는 것 역시 임대 기간이 짧을 뿐 아니라 10개월 후 어린이집 건물이 완공되면 임대 건물과 완공 건물에 각각 2개의 어린이집을 유지해야 한다는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청 관계자는 재차 “나도 학부모님들의 답답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참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내년 2월까지라고 이야기를 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 전까지 학부모들과 어떤 방법으로든 원만하게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서울시는 예산 확보해주는 것뿐…떠넘길 문제 아니야"
그러나 서울시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도로 재정비 계획을 수립하고 입안하는 것은 해당 구청장 소관 사항”이라며 “서울시 차원에서 하는 일은 그러한 구의 계획에 대해 심의하고 결정고시를 해주고 예산을 확보해주는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동대문구청 측에서 답십리1동 주민센터 건물(어린이집 건물) 부지가 도로 쪽으로 튀어나와 있어 안전상 정리가 필요하다며 서울시에 예산을 집행해달라 공모했고, 서울시는 그에 따라 도로 재정비 예산을 반영해 놓은 상태다.
그러면서 시 관계자는 “구가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어린이집 관련 민원이 제기됐다면 해당 부서에서 충분히 구민들과 소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서울시의 계획이라며 떠넘길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현재 학부모들은 구청 측이 동대문 어린이집 휴원과 철거 방침을 계획대로 밀어붙인다면 서울 시청 앞 ‘1인 시위’를 하거나 불가피할 경우에는 철거 공사장 앞에서 ‘천막 농성’까지 불사할 뜻을 표명하고 있어 갈등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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