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서평이 칭찬 일색에 단순한 책 소개인데 비해 국사학자 계승범의 신간 '중종(中宗)의 시대'(역사비평사 펴냄)에 대한 서평은 꼭 그렇지가 않다. 비판이 훨씬 많은데, 그건 필자의 눈에 너무도 뚜렷한 이 신간의 한계 때문이다. 즉 이 책의 한계는 저자의 역량을 넘어 반(反)대한민국 성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사학계의 구조적 폐단을 전형적으로 반영한다.
2000년대 초반 국사학계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해주는 텍스트라는 점에서도 관심거리인 '중종의 시대'는 학술서의 성격 절반, 대중역사서의 성격 절반이다. 부제가 '조선의 유교화와 사림운동'이라서 좀 딱딱해 보이지만, 책 아래에 큼지막한 글자로 쓰여진 것처럼 '조선은 어떻게 유교국가가 되었는가?'를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던가?
요즘 국사학계에서 조선시대 띄우기에 한창인 이유
사실 요즘 국사학계에서는 조선시대 띄우기가 한창이다. 벌써 20여 년이 다 됐다. 예전 일제 식민사학이 조선시대를 '실패했던 봉건시대'로 몰아세워온 것에 대한 반작용이 그만큼 강했다. 망국적 정치행태였던 당쟁을 붕당(朋黨)정치라며 긍정적으로 서술한 시각이 꽤 그럴싸하게 등장했고, 겸재 정선 등의 그림 등 조선후기의 문화를 진경(眞景)시대라며 애써 문화적 르네상스로 포장하는 미술사학자들이 두로 등장한 것도 1990년대 이후의 상황이었다.
충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건 해괴한 '지적(知的)사기'에 다름 아니었다. 참담한 '역사 실패' 속에 식민지로 전락했던 조선조 사회를 놓고 이 무슨 어처구니 없는 미화(美化) 작업이자, 학문적 담합행위란 말인가? 그 중의 압권이 조선후기에 내재적 발전을 이룩했었다는, 자못 애국주의적 해석임을 우리는 안다.
일제라는 사악한 제국주의 세력만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조선조가 근대사회로 바뀌는 건 만사가 오케이였다는 식의 논리인데, 이게 요즘 국사학계에서 압도적인 분위기이다. 이런 시각이 왜 있을 수 있는 담론 내지 관념의 사치 차원을 넘어 한국사회에 민감한 사회정치적 문제로 발전하는 것일까? 그런 인식은 곧 일제시절 이뤄진 근대화를 애써 외면 내지 왜곡하면서 지금까지 소모적인 친일파 논쟁에나 몰두하는 요인이다. 좌편향이 대세인 한국사회 구조 속에서 이런 게 얼치기 민족주의 신앙을 낳으며, 통일지상주의의 우리민족끼리의 정서와 반 대한민국 사관을 낳는다.
이런 상황에서 '중종의 시대'가 제기한 조선시대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는 물론 잘만 다루면 소모적 논쟁을 종식시킬 수도 있다. 결론을 미리 밝히자면, 유감스럽게도 이 책은 아쉽다. 절반의 성공에도 못 미친다. 조선사회 500년을 보는 참신한 시각이 일부 없지 않지만, 결정적 대목에서는 일국사(一國史)에 갇힌 국사학계의 자폐성에서 벗지 못한다는 뜻인데, 책 내용을 훑어보자.
'중종의 시대'는 1392년 새 왕조 조선의 건국이 '무늬만 유교국가'의 출범일 뿐이라고 규정한다. 당시 새 왕조가 건국되었지만, 건국과 동시에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사회혁명에 준하는 변화가 나타났던 건 아니었다. 외려 유교의 충효 사상을 정치 이념으로 천명했음에도 권좌를 노린 정변 등 반 유교적 정치사회적 사건이 꼬리를 물고 발생했다.
국보 제249호인 동궐도(東闕圖)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조선조의 가치에 따라 길러진 선비 엘리트 계층, 사림(士林)
제1, 2차 왕자의 난을 비롯하여 계유정난 등이 일어나면서 정상적 왕위 승습에 따른 왕권 승계는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 '주자가례' 보급에 힘을 쏟았지만 전통적 가족제도와 의례 제도는 여전히 건재했다. 사대정책을 표방했음에도 명(明)을 이웃의 대국(大國) 정도로 보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몽골을 몰아내고 중원을 제패한 명나라가 언제 다시 망할지 모른다는 식으로, 다소 심리적 거리를 두고 살았다.
이런 상황이 크게 변화하면서 조선이 조선답게 되는 게 게 이 책이 다루는 중종의 시대, 즉 16세기다. 이에 대한 다각도의 점검은 흥미로운 게 사실이다. 조선 전기에 새로운 엘리트 계층이 성장했고, 그게 유교국가 건국에 결정적이었다는 기존 국사학계 학설들은 '마음이 앞선' 소리로 이 책에서 대거 평가절하된다. 조선다운 변화의 중심에는 조선 초 이후 성장한 사림(士林, 선비집단)이 있었다.
단, 그들은 훈구(勳舊)세력과 확연히 다른 사회경제적 계층은 아니었다. 저자 계승범 서강대 교수는 성종~중종 연간에 일어난 숱한 정치적 충돌 사건을 지켜보면서 일종의 정치쇄신운동 내지 정풍(整風)운동이 진행됐다고 본다. 즉 개국한 조선조의 가치에 따라 길러진 선비 엘리트 계층, 즉 '조선조의 아이들'이 큰 목소리를 내는 새 국면이다.
처음에는 소수의 지식인과 유생들만 주도하던 정풍운동, 곧 사림운동이 16세기 전반에 이르러 전체 양반 사회로 확대되어갔다. 그게 중종의 시대였다. 새 왕조(하드웨어)에 장착된 새 소프트웨어(유교, 성리학)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충분한 시간과 적응 과정이 필요했는데, 중종 대는 그러한 적응을 거쳐 실질적인 유교사회로 접어든 시기다.
이런 내용이 '중종의 시대' 몸통을 이루는데, 거기까지는 나쁘지 않다. 조선조 사회에 대한 구조적 인식의 교양으로 썩 훌륭한 수준이다. 문제는 난데없는 현대사 비판이 이 책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중세사 연구서에 돌연히 끼어든 현대사 언급 자체가 좀 어리둥절한데, 내용도 문제다. 즉 산업화의 가치를 사정없이 내리 깎아 내리면서, 민주주의를 무조건적으로 치켜세우는 인식의 착란(錯亂)이 심히 거슬린다. 마치 1980년대 운동권의 현대사 비판과 닮은꼴의, 생경하고 조야(粗野)한 인식이데, 그걸 담은 이 책의 서문부터가 문제다.
서문은 '한국의 민주화와 조선의 유교화'란 제목을 달고 있는데, 왜 중세와 현대를 맞비교하려 드는 것일까? 너른 시야에서 두 시대 사이의 유비(類比관계)를 유추 못할 게 아니지만, 일대일의 비교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저자는 이 작업을 감행하는데, 턱없는 비약이 납득되지 않지만, 내용 자체도 천박하다. 역사학자로서 최소한의 균형감각조차 찾기 어려운데, 서문 앞부분을 거의 그대로 발췌하겠다.
최소한의 균형감각조차 찾기 어려운 한국현대사 비판
"1945년 해방 후 미국이 남한을 3년째 통치하던 1948년 여름, 신생 독립국 대한민국이 반공과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출범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 가치는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무늬만 민주공화국이었지 처음부터 민주주의에 역행하며 독재정치가 기승을 부렸다. 얼마 뒤에는 군인들까지 총을 거꾸로 겨눈 채 서울로 탱크를 몰고 들어와 국권을 농단하고 군사독재를 자행했다.…냉전질서 하에 대한민국이 의존한 강대국은 언제나 미국이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용어 선택 하나 하나, 서술의 흐름 그리고 행간에 담긴 공격적 태도는 정상(正常)이 아니다. 아까 언급했던 대로 대학운동권 대자보 수준이다. 그리고 이런 현대사 언급은 조선조 사회를 다룬 '중종의 시대'와 매우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다. 결과적으로 제법 괜찮은 역사서의 앞과 뒤를 엉터리 포장지로 감싸 안은 꼴이 되어버렸다. 왜 이런 괴이쩍은 서문을 저자는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덜렁 올려놓았을까?
저자의 적절한 지적대로 고대 이후 한반도 역사에서 문명차원의 총체적 변화가 일어난 것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불교화, 조선시대 유교화 그리고 20세기 현대한국의 산업화-민주화 등 세 가지다. 거기까지는 동의할 수 있다. 불교화에 몇 백 년이 걸렸고, 유교화 역시 1세기 이상의 우여곡절을 거쳐 중종의 시대로 연결됐다.
그럼 현대한국은 어떻게 볼 것인가? 그게 관건이다. 대한민국의 산업화-민주화 성공은 채 반세기도 안돼 이룩한 역사의 성취가 분명하다. 북한의 참담한 역사 실패에 비춰 더욱 극적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승리인데, 저자에게 이런 명백한 사실은 통째로 무시된다. 대신 다짜고짜 대한민국 때리기에 몰두한다. "무늬만 민주공화국이었지 처음부터 민주주의에 역행했다"며 이승만-박정희의 건국과 부국을 싸잡아 비판하는 게 대표적이다.
허위의식에 가득한 속류(俗流)학자들로 가득한 국내 학계
1950년대야말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도입기였고, 1960~70년대는 돌진적 경제성장기라는 게 현대사의 기본이 아니던가? 저자는 서문에서 이런 말을 늘어놓는다. "민주사회로의 진화는 아직도 진행 중이니, 세계 선진국 수준의 민주사회를 이룩하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할지 알 수 없다." 이런 지적이 역사적 사실과 전혀 들어맞지 않는 푸념 내지 저주에 다름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 맹목적 민주주의교(敎) 신봉자인 저자는 역사를 총체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능력 자체가 소거(消去)된 셈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세계 7위의 수출국이고, 13위의 삶의 질을 기록한 나라이며, 미국과 일본을 앞지른 세계 20위의 민주주의 성숙도를 기록한 국가(이코노미스트 2013년 조사)라는 점에 대한 고려는 저자에게 철저히 무시된다. 결국 신간 '중종의 시대'는 엄연히 조선시대 연구자인 한 국사학자가 성급한 현대사 발언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린 책이다. 꽤 멀쩡한 중세사 연구자까지도 오염된 현대사 인식을 품고 있고, 그걸 연구서에 끌어드리는 일을 무리수를 두는 게 지금 학계의 분위기인 셈이다.
우리 인문사회과학계는 허위의식에 가득한 속류(俗流)학자들로, 좌파적 패러다임에 갇힌 채 사회적 발언에 나서는 이들로 가득하다는 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그들이 지금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지식정보의 오염현상을 부채질하는 집단이자, 젊은이들을 오도하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그 중에서도 그 중 옛 운동권 마인드와 닮은꼴인 이른바 NL정서로 가득한 동네가 국사학계인데, '중종의 시대'는 그런 풍토에서 생산된 문제 많은 저술인 셈이다.
기회가 나면, 그가 쓴 또 한 권의 저술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역사의아침 펴냄)를 마저 분석하고 싶다. 그의 조선시대 인식이 좀 혼란스럽다는 점을 재확인할 계기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역량이 아주 없지 않고, 글 역시 나쁘지 않은 이 386세대 학자의 머리 속과 학문적 소신을 다시 한 번 스캔해 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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