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독한 강자가 어느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악의 무리에 맞서 싸운다. 2014년 MBC드라마 '개과천선'에서 국내 최고의 로펌에서 승승장구하던 김석주(김명민)는 교통 사고를 당하게 되고, 그만 기억상실 상태에 이르게 된다. 자신의 기억을 잃어버리게 되면서 자신이 과거에 했던 로펌 활동을 마주 보게 된다.
그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결은 피도 눈물도 없이 악독한 일을 서슴지 않고 자행했기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2005년 '변호사들'에게 알렉스 윤(김성수)이 자신의 고용주를 위해서는 자신의 연인에게 위해를 주는 캐릭터를 더 초월한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자신이 일했던 로펌을 상대로 전쟁아닌 전쟁을 벌이게 된다. 약자를 위해 겨누었던 법률의 칼은 이제 강자에게 겨눠지는 상황이었다. 물론 혼자 고군분투하는 일이었고,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김석주가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다.
SBS 드라마 '펀치'에서 검사 박정환(김래원)은 악행을 위해 너무 열심히 노력한 탓인지 뇌종양에 걸리고 만다. 뇌종양에 걸린 박정환은 뒤늦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자신이 충성했던 상관(조재현)의 본심을 알게 되면서, 그동안 자행했던 일들을 모두 바로잡으려 한다. 그렇지만 거대권력괘 벌이는 싸움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간 저지른 자신의 잘못 때문에 스스로 발목이 잡히면서 쉽지 않은 싸움을 벌여야 하고, 예정된 시간은 야속하게 빨리 다가오기만 한다. 결국 박정환은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던 권력의 화신을 끌어내리고 스스로 죽음의 운명안으로 들어가고 만다. 개과천선의 끝은 죽음이었지만 진실을 드러내고, 그동안 소홀하게 대했던 아내의 목숨도 구하게 된다. 악행의 대가는 결국 최종 죽음이었던 셈이고, 선행은 그것을 되돌릴 수 없었다.
이렇게 드라마 속 변호사들 가운데 악인들은 스스로 개과천선을 하고 있다. 왜 이들은 스스로 개과천선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현실에서 변호사는 선한 사람이기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성공을 위해서 강자의 편이기를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대중적 정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악행의 행보를 기억상실로 성찰하게 되거나 치명적인 뇌종양 같은 질병을 통해 잘못을 깨닫고, 정의를 실현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은 더 많은 부와 명예를 지니고 오히려 건강하게 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금력이나 권력의 속성상 로펌 혹은 검찰 조직에서 권력 쟁투는 필연적이다. 이태준(조재현)과 같은 권력의 화신은 한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특징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개인을 솎아내도 언제든지 그런 인물은 등장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박정환과 같은 개인의 사적 복수는 통쾌함을 주거나 극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지만, 권력적인 부패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못하고 만다.
검찰이나 로펌뿐만 아니라 대개의 조직에서는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현실에서 극적인 복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적인 복수를 통해 대리충족을 하는 것이겠다. 그 대가는 죽음이라는 면에서 볼 때, 한편으로는 그 현실적인 어려움을 상징하고 있는지 모른다. 결국 박정환은 죽었고, 그런면에서 또다른 무력감을 주는 것이다. 개과천선의 끝에 해피엔딩이라면 더 그 고군분투하려는 이들에게 더 긍정적인 기운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