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귀의 ad Greece 43>아테네가 동맹국들 속국 대하듯 제국주의로 변질
고대 그리스 문명은 유럽 문명의 시원이자 인류 문명의 원천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창조해낸 독창적인 문화와 문명의 자취는 숱한 고전과 유물, 유적으로 고스란히 우리에게 남겨졌습니다. 여기엔 그리스의 12신과 영웅은 물론 현인과 보통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의 열광과 환희, 고통과 좌절로 점철된 뜨거운 삶의 궤적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역사문화 탐방은 그리스 고대 문명과 영욕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기행이자 미학기행입니다. 오늘날 혼돈에 빠진 우리의 삶을 반추하고 새로운 지혜를 탐색하는 ‘나를 찾는 여행’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발견하느냐는 각자 자신의 몫입니다. 열린 눈, 열린 마음으로 함께 떠나보시지요. ad Greece!!< 편집자 주 >
그리스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신은 아폴론이다. 그는 지혜와 예언의 신이자, 이성과 학문의 신, 그리고 음악의 신이기도 하다. 아폴론이 태어난 곳은 에게 해의 중심인 델로스 섬이다. 델로스 섬은 환형(環形)을 이루며 점점이 산재한 키클라데스(Cyclades) 제도(諸島)의 한 가운데에 있다. 키클라데스는 ‘원(cycle)을 이루는 섬들’이란 뜻이다. 델로스 섬은 에게 해의 보석 같은 섬 220여개가 동그랗게 분포되어 있는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델로스는 에게 해의 심장인 셈이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주도권을 쥔 아테네가 그리스 도시국가들 간에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을 맺고 동맹 본부를 델로스 섬에 두고 국제중심도시로 육성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는 현재 무인도인 델로스 섬을 방문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미코노스 섬을 두 번째 방문했다. 2014년 2월에 동절기 배편이 맞지 않아 미코노스 섬까지 왔다가 아쉽게 발길을 돌린 적이 있다. 일반 관광객이라면 대개 아름다운 섬 미코노스 관광으로도 만족할 수 있지만, 그리스의 역사와 신화, 문화에 관심을 둔 사람이라면 델로스 섬을 빼놓을 수가 없다.
필자는 델로스 섬을 방문하기 위해 작년 8월에 다시 미코노스를 찾았다. 성하(盛夏)의 미코노스의 한낮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활기를 띄고 있었다. 야외 카페에는 관광객이 넘쳐 났고, 부둣가에는 과일, 채소, 해산물을 파는 노점상도 많이 나와 있었다.
델로스 섬을 다녀와서 공항으로 이동하기 전 여유 시간에 배낭을 메고 미코노스의 관광 명물이 된 풍차 언덕에 다시 올랐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뜨거운 태양 빛을 반사하는 미코노스의 새하얀 집과 에메랄드 빛 에게 해의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꿈에 그리던 델로스 섬을 둘러보고 난 후 정신적 포만감이 그득해서인지 미코노스 풍광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지난번과 달리 한결 여유로웠다.
델로스 섬은 미코노스 섬의 서편에 배로 30분 정도면 닿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여름에는 많은 관광객들을 운송하게 위해 배편이 오전 9시부터 3번 왕복 운행한다. 첫 배로 들어갔다가 오후 3시 배로 나오면 델로스 섬을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짧은 뱃길이지만 에게 해의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다운 잉크 빛 바닷물을 가르는 여객선의 항해는 일상의 시름을 날려 보낼 만큼 매력적이다. 가뜩이나 짧은 뱃길은 황홀한 바다의 물결에 매혹되어 더욱 짧게 느껴진다.
불과 5km의 길이와 너비 1.3km의 작은 이 섬이 그리스 세계의 여러 도시국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478년부터이다. 2400여 년 전 델로스 선착장은 그리스, 아시아, 이집트 등에서 몰려든 참배객과 외교관을 실은 유람선과 교역물을 가득 실은 무역선으로 성황을 이루었을 것이다.
델로스 섬은 에게 해의 섬 가운데 가장 신성한 곳이었다. 최고의 신으로 숭상되던 태양의 신 아폴론과 사냥의 신 누이 아르테미스 쌍둥이 남매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왜 풍광 좋은 그리스의 본토를 놔두고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라지 않는 황무지인 이 작은 델로스 섬에서 태어나게 되었을까? 제우스의 아내 레토가 이런 궁벽한 섬에서 도둑 출산을 하게 된 사연은 기구하다.
레토는 제우스가 중심이 된 올림포스 신족과 세상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전쟁을 치른 티탄족에 속했다. 하지만 레토는 이 두 신족의 전쟁에 끼어들지 않아 올림포스 신족의 승리 이후에도 해를 입지 않았다. 오히려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잉태하게 된다. 제우스와 레토의 사랑은 우주의 지배자가 된 올림포스 신족과 적이었던 티탄족 사이의 화해의 산물로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제우스의 정실부인 헤라에게 레토는 눈꼴사나운 시앗에 불과했을 것이다. 헤라는 제우스의 외도를 어찌할 수 없었지만, 레토의 출산만은 막고 싶었다. 그녀는 레토가 해산(解産)하지 못하도록 쫓아다니며 방해했다. 레토는 온 대지를 쫓겨 다니다 델로스 섬까지 도망 와서 아르테미스를 낳고 이어서 아르테미스의 도움을 받아 아폴론을 낳게 된다. 일설에는 아르테미스는 델로스 인근의 섬인 레네이아에서 낳았고 아폴론은 델로스에서 낳았다고도 한다.
그리스인들은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태어난 이 섬을 매우 신성하게 여겼다. 더군다나 키클라데스 제도의 중앙에 위치하여 여러 섬을 왕래할 때 거쳐 가기에 용이한 곳이다. 또 그리스 식민도시들이 산재한 소아시아 지역과 그리스 본토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여 이 지역 사이를 왕래하는 항로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런 지정학적 요건을 갖춘 델로스 섬은 아테네의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아테네는 기원전 479년에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 여세를 몰아 페르시아 잔당을 그리스와 에게 해 전역에서 몰아내고, 페르시아의 재침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군사적 결속을 위한 델로스 동맹을 맺게 된다. 아폴론 신은 조화와 균형의 신이기도 했으니 그의 탄생지에 동맹 본부를 두는 것은 각별한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이후 동맹국들은 동맹의 군사적 활동을 뒷받침할 공동기금을 갹출하여 델로스 섬의 금고에 보관하게 된다. 처음에 책정된 공물은 460탈란톤이었다고 한다. 동맹국의 회의는 동맹국 신전인 델리안(Delian) 신전에서 개최되었다. 델로스 섬에 엄청난 재정이 쌓이고 동맹국들의 외교의 무대가 되자 사람들이 몰려들고 도시가 흥성하게 된다. 아테네에서는 ‘헬라스의 공공기금 재무관’이라는 관직까지 만들어졌다. 델로스 동맹 기금 관리를 위한 국제기구에 근무하는 공직자였던 셈이다.
델로스 섬은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탄생지로 신성시되었기 때문에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 바위섬의 작은 산인 킨토스(Kynthos) 산 정상에는 기원전 2500년 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던 흔적이 있다고 한다. 110미터가 조금 넘은 낮은 산이지만, 주변이 낮은 언덕과 해안이어서 산 정상에서 외부의 적의 침입을 관찰하기 용이했기 때문에 거주지로 택했을 것이다. 이후 기원전 15세기에 미케네인들이 이주해 살기 시작했고, 기원전 12세기에 소아시아 지역의 이오니아인들이 대거 거주하게 되면서 발전하게 된다. 이후 다양한 신전과 성지 건축이 이어졌고, 최소한 기원전 9세기경에는 아폴론을 섬기는 신전이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델로스 동맹의 중심지가 되면서 도시는 급격하게 번성하여 기원전 1세기에는 거주 시민이 3만여 명 가까이 이르렀다고 한다. 또 항구를 통해 연간 75만 톤의 교역이 이루어질 정도로 국제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델로스는 역사상 최초의 국제도시였던 셈이다. 바위투성이인 작은 섬 델로스는 신전과 공동 건물, 호화로운 주택을 보유한 매우 큰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델로스는 아테네가 기원전 425년에 이 섬을 정화하기 위해 모든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조치를 하기도 했지만, 마케도니아가 주도한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에 이르러서도 번영을 지속했다. 그런데 로마와의 우호적인 관계가 역설적으로 델로스의 몰락을 가져왔다. 로마와 패권을 다투던 세력의 두 번에 걸친 침략과 약탈이 델로스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혔던 것이다. 기원전 88년에 흑해 연안의 폰투스(Pontus)의 왕 미트리다테스(Mithridates)가 침략했고, 그와 동맹을 맺은 아테노도로스(Athenodorus)가 기원전 69년에 재차 침공하여 약탈함으로써 델로스는 급속하게 몰락하게 된다.
이후 1900여 년 동안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로 남은 델로스는 1872년에 유적지가 발굴되면서부터 세상의 주목을 다시 받게 되었다. 델로스 섬은 성역과 주거지 등 도시가 매우 밀집된 형태로 번성하였기 때문에 그 유적지가 넓게 산포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은 폐허가 된 델로스 유적지를 구석구석 돌아보려면 5시간 정도 소요된다.
도시가 구릉지와 평지에 넓게 산재하여 도시 전체의 전경을 추정해 보기 위해선 킨토스 산에 올라야만 가능하다. 유적지를 돌아보는 코스는 세 개 정도가 있다. 먼저 선착장에서 내려 해안의 우측을 끼고 돌며 구릉지에 산재한 유적을 보는 코스가 있다. 여기서는 클레오파트라의 집과 인접한 디오니소스의 집, 로마 극장 유적과 돌핀의 집, 마스크의 집, 이집트인 신전, 시리아인 신전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선착장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며 해안가에 산재한 델로스 성역의 중심지 유적지와 델로스 고고학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는 코스가 있다. 여기에는 레토의 신전, 동맹국의 신전인 델리언 신전과 아테네인 신전, 신성한 호수 등이 산재해 있다. 마지막으로 남서쪽 멀리에 있는 스타디움과 체육관 유적지 등을 둘러볼 수 있는 코스가 있다.
구릉지에서 돌계단으로 이어진 킨토스 산을 30여분 정도 오르면 산꼭대기에 건립되었던 제우스와 아테나 신전의 유적을 만날 수 있다. 선착장에서 출발하면 산정까지 1시간 이상 걸어 올라갈 계산을 해야 한다. 특히 8월의 에게 해의 불볕더위를 뚫고 나무 한 그루 없는 바위산을 오르는 일은 숨이 턱턱 막히는 고역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구릉지를 한 바퀴 돌아 내려가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짐을 맡길 곳이 따로 없는 배낭 여행객은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을 올라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델로스를 찾기 위해 두 번씩이나 미코노스를 경유한 필자로서는 꼭 킨토스 산을 올라 델로스 전경을 한 눈에 조망하고 싶었다. 기어코 배낭을 메고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산을 올랐다. 산정에는 강한 바람이 불었다. 더운 땀을 한 순간에 식힐 수 있다. 역시 산정에 오르길 잘했다. 작은 섬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고, 델로스 성역의 시가지 폐허 또한 그 주요 윤곽이 손에 잡힐 듯하니 2400년 전의 델로스의 번성한 모습을 상상해 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킨토스 산정에서 바라 뵈는 델로스 섬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우선 변변한 나무그루 하나 없다. 건기인 하절기여서 그런지 산을 뒤덮은 가시 돋친 작은 관목들마저 누렇게 변해 있다. 델로스 섬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늘 이렇듯 풀이 말라버리는 뜨거운 여름엔 더욱 황량하고, 우기인 겨울에나 잠시 관목과 풀들이 푸르러졌을 것이다.
킨토스 산정에 제우스와 아테나 신전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그 흔적을 가늠하기 어렵다. 기둥은 물론 기단마저 거의 다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델로스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꼭 참배하는 곳 중의 한 곳이었을 것이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낳아준 신들의 제왕 제우스신전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폴론의 은총이 서린 델로스 섬 전체를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도시 델로스를 수호하는 군사기지 역할과 화려한 델로스 시가지 전경을 조망하는 최고의 전망대 역할까지 했을 것이다. 델로스 섬은 동맹국들의 국제회의가 열리는 도시임과 동시에 상업적 교류의 중심지로서 국제항구 기능도 했을 것이다. 특히 키클라데스 제도의 여러 섬에 분포한 이오네스족의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는 에게 해 여러 섬의 주민들이 델로스 축제를 찾아 육상 경기와 경마, 그리고 음악 경연을 펼치던 정황을 묘사하고 있다. 호메로스의 아폴론 찬가의 한 구절은 델로스 섬이 아테네가 중심이 된 이오네스족들의 문화적 동질감을 나누는 중요한 기능을 했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포이부스(아폴론)이시여, 델로스에서 그대는 마음이 가장 흐뭇하시니,
그곳에서는 긴 옷을 입는 이오네스족이 함께 모여
처자를 거느리고 그대의 신성한 거리를 거니나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권투와 춤과 노래로 그대를 즐겁게 해드리며,
경연을 개최할 때마다 언제나 그대를 기억하나이다.“
킨토스 정상에서 델로스 시가지를 바라보며 2400여 년 전에 흥성했던 델로스 시가지를 상상해 보는 일은 즐겁다. 그렇지만 델로스는 아테네의 흥성과 몰락의 상징이기도 하다. 델로스 동맹은 페르시아 전쟁에서 크게 기여한 아테네가 그리스 세계에서 패권을 굳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국들을 차츰 동맹국이 아닌 속국에게 대하듯 오만한 태도를 보이게 되자 동맹국들의 원성을 사고 동맹은 균열된다. 급기야 동맹을 이탈하는 국가가 늘어나고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맞서다 양 동맹의 진영국 간에 맞붙는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BC 404)년이 벌어진다. 이 전쟁의 와중에 델로스는 아테네로부터 전 주민이 인근 레네이아 섬으로 이주되고 섬 전체가 정화 조치를 당하기도 한다.
델로스는 태양의 신을 배출한 영광의 섬이자 신성한 성역으로 그리스인들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종교적, 문화적 성지 역할을 했지만, 점차 제국주의로 흐른 아테네와 그리스 국가들의 내전 속에 아픔을 겪고, 이후 로마에 맞선 폰토스 왕국의 세력에 두 차례 약탈당하는 수난의 섬이기도 하다. 우리가 델로스를 찾아야 할 이유는 바로 이런 다양한 신화와 역사가 풍성하게 서린 곳이기 때문이다. (다음 회에서는 델로스 성역의 주요 유적과 문화유산을 소개합니다.)
글/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kipe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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