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결된 '어린이집 CCTV법' 총체적 부실 공사였다
10개 개정안 올해 제출돼 심사시간 고작 23일 불과
문제투성이 네트워크 카메라 논란 불구 여론 떠밀려
지난 3일 어린이집 CCTV(폐쇄회로 텔레비전) 법안으로 불리던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문제를 놓고 국민적 공분이 거셉니다.
2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될 것 같던 법안이었기에 부결에 대한 실망감이 더욱 클 수밖에 없을 텐데요. 정치권 내에서는 이번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부결될 수밖에 없는 법안이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우선 CCTV법으로 불리는 법안은 무려 16개 개정안의 내용이 합쳐진 대안이지만, 10개 개정안이 올해에 제출돼 실질적인 심사기간은 23일에 불과했습니다. 여기에 법안 내용도 문제입니다. 법안 검토 및 심사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점이 제기됐지만, 이 문제점들은 대안 작성 과정에서 거의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론 국회의원들이 여론에 떠밀려 너무 급하게 심사를 진행한 탓에, 통과돼선 안 되는 부실법안이 탄생해버린 것입니다.
문제 투성이 '네트워크 카메라' 논란에도 시간에 떠밀려 강행, 결국 법사위가 수정
먼저 대안이 본회의에 상정되기까지 절차를 보면, 대안에 반영된 대부분의 개정안은 보건복지부 전체회의와 법안심사소위원회를 거쳐 지난달 24일 다시 법안소위와 전체회의에 상정됐습니다. 이 4차례의 회의에서 검토보고와 심사를 거쳐 위원회 이름의 대안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는 국민적 요구가 거세지자 여야는 2월 임시국회 내 법안 처리라는 무리수를 던졌습니다. 국회 스스로 처리시한을 3월 3일로 못 박아 졸속심사를 불가피하게 만들어버린 것이죠.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일례로 지난달 24일 법안소위 전체회의에서 남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6% 정도가 CCTV가 아닌 다른 형태의 네트워크형, 내지는 이런 걸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까지 의무화할 경우에는 상당히 개인정보 보호와 배치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연호 전문위원도 검토보고에서 “CCTV와 네트워크 카메라를 구분하지 아니하는 개정안에 따르면, 대통령령으로 기기의 범위가 결정될 것이나 설치기기를 네트워크 카메라까지 포함할 경우 인터넷 프로토콜(IP)을 이용하면 어린이집에서 촬영한 영상에 대한 해킹 및 유출의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네트워크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이 해킹을 통해 외부로 유출될 경우, 보육교사뿐 아니라 아이들의 얼굴과 신상정보도 노출돼 유괴 등 범죄의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네트워크화 된 CCTV의 정보유출이 문제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피해가 확대·재생산될 개연성이 있어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제16조 아동의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위반의 소지가 있다”며 “헌법 제31조 4항에서 보장하고 있는 교육의 자주성을 침해받을 소지도 있다”고 결정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네트워크 카메라 설치 조항은 끝내 대안에 포함돼 법사위원회로 넘어갔습니다. 오죽했으면 법안의 체계와 자구를 심사하는 법사위에서 이 조항을 삭제해버렸습니다. 그만큼 문제가 많은 조항이었지만, 복지위에서 심사를 너무 급하게 진행한 탓에 미처 법안을 다듬지 못 한 것이죠.
내용도 미흡…보육교사 권리 보호는 '노력해야 한다' 달랑 한 줄
법안의 다른 내용들도 문제입니다. 대안의 주요 내용은 보육교사 양성 및 근로여건 개선, 보육교사 상담전문요원 배치, 어린이집 내 CCTV 설치 및 관리 등 크게 13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고, 국민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였던 부분이 CCTV 설치 및 관리였을 텐데요. CCTV 설치와 관련해서는 법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전부터 많은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CCTV를 통한 아동학대 예방효과도 불분명하고, 오히려 보육교사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전문위원은 “개정안에 따라 어린이집에 CCTV가 설치될 경우 건물 외부 공간이 아닌 실내에서, 일반 공중이 아닌 특정인을 대상으로 영상을 수집하는 CCTV의 설치를 법률로 의무화하는 사실상 최초의 사례가 된다는 점에 그 필요성 및 타당성에 대해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또 헌법상 비례의 원칙을 고려해 CCTV 설치가 최소 침해를 가져오는지, CCTV 설치 의무화로 얻는 공익이 이로 인해 침해되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직업 선택의 자유보다 큰지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전문위원은 보육교사의 권리 침해가 최소화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는데요. CCTV 영상이 아동학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고, 아동 인권 보호에 대한 학부모들의 요구가 높았던 만큼, 어린이집 CCTV 설치를 법제화하되 이로 부작용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견들이 법안에는 얼마나 반영됐을까요?
본회의에 최종 상정된 대안에는 학부모가 CCTV를 열람할 수 있는 상황 중 하나로 ‘영상정보를 보호자가 자녀, 또는 보호아동의 안전을 확인할 목적으로 요청하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는데요. 사실상 이는 학부모라면 언제든지, 또 아동학대 여부와 관계없이 어린이집의 CCTV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일각의 우려처럼 “왜 다른 아이만 더 챙겨주느냐”, “우리 아이가 울고 있는데 보육교사라는 사람이 도대체 뭘 했느냐”는 식의 보육교사에 대한 과도한 인권·교육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죠.
반면, 보육교사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은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설치·관리하는 자는 영유아 및 보육교직원 등 정보주체의 권리가 침해되지 아니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이 전부입니다. 권리 침해에 대한 아무런 강제적 조치도 없이 모든 책임을 어린이집 원장들에게 ‘노력’이란 말로 떠넘겨버린 것이죠.
더욱이 CCTV 부분은 전체 개정안 대안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개정안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더 많은 문제가 발견되죠. 대부분 ‘부실공사’의 결과물입니다.
한편, 여야는 이번 개정안 부결 사태와 관련해 아동인권 보호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여기에 대해서도 벌써부터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대책도 이번처럼 여론에 떠밀려 급하게 추진되면 또 다시 부결 사태를 겪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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