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콤비 백승호(왼쪽)와 이승우는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천재다. ⓒ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주인공은 단연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29·러시아명 빅토르 안)였다.
한국에서 쓰린 눈물을 삼켰던 ‘세기의 천재’가 러시아 국민의 애정과 지원 속에 환희의 눈물을 쏟았다. 영국 ‘로이터 통신’은 러시아에 금메달 3개를 안긴 안현수에게 ‘2014 올해의 재기 선수상’을 안겼다.
안현수가 조국을 등지고 러시아로 귀화한 건 순수하게 운동을 계속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귀화 소식이 전해진 후 안현수는 “소속팀이 해체하면서 훈련할 곳을 잃어버렸다. 마침 러시아 시청이 입단을 제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무후무한 세계선수권 5연패(2003~2007), 월드컵 메달 51개(개인 최다), 토리노 올림픽 3관왕 등 ‘태극마크’를 달고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정작 조국은 안현수를 제대로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결국 안현수 사례는 한국 스포츠계의 비극으로 남고 말았다.
피겨 불모지에서 태어난 김연아(24·은퇴)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연아는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자비를 털어 이역만리 캐나다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차라리 러시아,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올림픽 3연패’도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최적의 환경’에서 만성 고관절 부상 없이 피겨에만 전념했다면 2018 평창 올림픽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했다.
‘두 개의 심장’ 박지성(33·은퇴)도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천재다.
지금은 ‘캡틴 박’으로 불리지만, 12년 전 박지성은 2002 한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 제외 1순위였다. 박지성 가족은 아직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원통함에 눈시울 붉힌다.
박지성은 K리그 입단테스트에서도 떨어졌다. 왜소한 체격 등의 이유로 선택받지 못했다. 박지성의 잠재력을 눈여겨본 팀은 한국이 아닌,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였다.
박지성은 맨땅에서 헤딩한 ‘학원 세대’이기도 하다. 죽기 살기로 뛰는 그의 열정이 맨땅 한국에선 독이 됐다. 더 일찍 유럽에 진출했다면 무릎 연골은 닮지 않았을 것이고 ‘이른 은퇴’도 없었을 것이다.
학원 축구는 결과가 중요해 박지성의 창의력마저 억눌렀다. 그러나 거스 히딩크 감독이 박지성의 잠재력을 깨웠다. 강철 심장을 바탕으로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은 멀티 플레이와 퍼거슨도 인정한 공간 지각력으로 세계를 호령했다.
이제 또 다른 천재가 나타났다. ‘스페인 축구협회’가 탐내는 이승우(17)와 백승호(18·이상 바르셀로나 후베닐A)가 그 주인공이다.
이승우와 백승호는 스페인에서 각각 리오넬 메시, 이니에스타의 후계자로 주목받고 있다. 스페인뿐만 아니라 유럽 유수의 클럽이 두 유망주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다. 특히 후베닐A로 월반한 이승우는 그동안 국제 대회마다 득점왕과 최우수선수상(MVP)을 휩쓸었다.
하지만 이승우와 백승호가 국내에 머물렀다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을까.
천재도 가꿔야 산다. 원석이 보석이 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해외에서 성장 중인 이승와우 백승호를 위해 한국대표팀도 지원사격을 해줘야 한다.
이승우와 백승호는 올 시즌 바르셀로나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바르셀로나에 유소년 규정 위반 징계를 내렸다. 이 때문에 이승우는 18세가 되는 내년 1월까지 리그전에 나설 수 없다.
다행스러운 건 박지성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점이다. JS파운데이션(이사장:박지성)이 주최한 ‘제1회 수원JS컵’이 열린 것.
안익수 감독이 이끄는 한국 U-18 대표팀은 우루과이(1-0승), 벨기에(0-0무), 프랑스(0-1패)와 리그전을 치렀다. 이승우와 백승호는 3경기 모두 출전하며 ‘실전 감각’을 끌어 올렸다.
물론 출전시간에 대한 아쉬운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둘 모두 3경기서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했다.
이승우는 우루과이전 후반 17분 교체 아웃됐다. 벤치로 들어올 때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축구팬들은 “오랜만의 실전 경기였고 더 뛰고 싶은 욕구가 간절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이승우는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어느새 주위의 과중한 기대에 책임감을 느끼는 듯하다. ‘독보적인 재능’이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질 필요는 없다.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가야 한다. 자칫 무리하면 부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승우의 진짜 성장은 지금부터다. 어려운 환경을 뚫고 한국축구 간판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마이크 타이슨을 슈퍼스타로 길러 낸 커스 다마토(1908~85)는 생전에 “한 소년이 불씨 같은 재능을 가지고 왔다. 내가 불을 지피자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키울수록 불은 거세게 타올라 열정의 활화산이 됐다”고 말했다.
지금 이승우에게 필요한 건 커스 다마토의 역할이다. 해외 선진 시스템과는 별도로 한국에서도 같은 역할을 해줄 인물이 많이 나와야 한다. 가장 영향을 크게 미칠 수 있는 인물은 역시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60)이다.
브라질 천재 공격수 호나우두(38)도 '18살 때' 국가대표에 승선했다. 페레이라 전 감독(72)은 1994 미국 월드컵 최종명단에 호나우두를 포함시켰다. 당시 페레이라 감독은 “5년 후 이 소년은 세계 최고가 된다”며 호나우두의 폭발적인 잠재력에 투자한 이유를 밝혔다.
이를 한국축구에 대입한다면 이승우와 백승호의 성인대표팀 발탁도 무리한 요구는 아니다.
한국대표팀은 내달 16일 미얀마와 2018 러시아 월드컵 2차 예선을 치른다. 객관적인 전략상 한국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된다. 그렇다면 이승우와 백승호를 차출해 ‘월드컵 현장’을 체험하는 것은 어떨까. 시차 적응, 더운 기후 등 열악한 환경에서 선배들이 어떻게 경기를 풀어내는 지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게다가 이승우는 오는 10월 ‘칠레 청소년 월드컵’도 앞두고 있다. 성인대표팀을 경험한다면 시야 확장에도 도움을 준다.
호나우두도 미국 월드컵에서 호마리우가 어떻게 체력 안배를 하는지, 압박 수비는 어떻게 벗기는지 직접 보고 배웠다. 이승우와 백승호도 손흥민, 기성용의 경기를 현장에서 볼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 천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경험 축적이다.
한국 스포츠계는 그동안 천재를 키울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상당수 재능을 타고난 유망주들이 타국서 자비를 털어 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제2의 김연아, 박지성이 더 많이 나오기 위해선 장밋빛 미래를 위한 투자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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