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첼시는 올 초 캐피털 원 컵(리그컵)을 들어 올렸고, 지난 35라운드에서는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특히 첼시는 지난해 8월 선두 자리에 오른 뒤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는 기염을 토했다. 274일간이나 바뀌지 않은 선두 자리는 지난 1993-94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262일을 넘는 신기록이기도 하다.
첼시는 지난 2003년 러시아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구단을 인수하며 EPL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소위 ‘로만 제국 시대’를 맞이하게 된 첼시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곧바로 천문학적인 자금을 이적시장에 뿌렸다. 올 시즌까지 첼시가 선수 영입에 투자한 돈은 약 12억 2700만 유로(약 1조 5208억원).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다.
이를 경계한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은 “돈으로 우승을 살 수 없다”고 비꼬았지만 첼시는 보란 듯이 무수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첼시는 로만 제국 2년 차에 무리뉴 감독을 맞아들였고, 곧바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1954-55시즌 이후 50년만의 감격이었다. 첼시의 거침없는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리그 2연패에 성공한 첼시는 FA컵, 리그컵 등에서도 꾸준한 성적을 거뒀고, 마침내 2011-12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의 빅이어를 들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 체제 이후 첼시는 12년간 13개 대회에서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이는 같은 기간 잉글랜드 내 다른 팀들을 압도하는 수치다. 맨유는 첼시가 13회 우승을 차지할 동안 10회 우승(리그 5회, FA컵 1회, 리그컵 3회, 챔스 1회)에 그쳤고, 맨체스터 시티(4회), 아스날, 리버풀(이상 3회)도 미치지 못했다.
2003-04시즌 이후 EPL 클럽 우승 횟수. ⓒ 데일리안 스포츠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첼시의 성적이 가장 눈에 띈다. 첼시는 2003-04시즌 이후 올 시즌 36라운드까지 294승 96무 64패(승점 978)를 기록 중이다. 지난 12년만을 놓고 봤을 때 EPL 최다 승점이다.
같은 기간 첼시보다 리그 우승컵을 한 번 더 들어 올렸던 맨유는 승점 976(298승 82무 74패)으로 지난 35라운드에서 승점이 역전됐다. 여기에 한때 ‘빅4’를 형성했던 아스날(승점 898), 리버풀(승점 810)은 첼시에 한참 처지며, 오일머니의 맨시티(승점 747)도 괄목할 성장세를 이뤘지만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2003-04시즌 이후 EPL 성적.(14-15시즌 36라운드 현재) ⓒ 데일리안 스포츠
언제나 우승만을 갈구했던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였지만, 그토록 바라던 유럽 제패(챔피언스리그)를 이룬 뒤 첼시의 행보는 급격하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먼저 첼시는 이적시장에서의 자금을 허투루 쓰지 않고 있다. 이는 직, 간접적인 배경이 따른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2000년대말 글로벌 경제 위기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제한적이었고, 마침 UEFA가 재정적페어플레이(FFP) 규정을 내밀어 긴축 재정이 불가피했다.
선수 영입에는 뚜렷한 방침이 정해졌다. 거액의 이적자금이 투입되는 영입 선수는 전성기를 맞이하는 23세에서 27세 선수들로 국한됐고, 눈여겨본 선수는 서면이나 전화가 아닌 이사급 이상의 고위직원이 직접 해당 구단으로 찾아가 정성을 보이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에덴 아자르, 디에고 코스타, 세스크 파브레가스 등이 팀에 합류했다.
방출에 있어서도 언론 플레이 등의 전략으로 선수 몸값을 크게 불렸다. 다비드 루이스를 역대 수비수 최고액에 PSG로 넘긴 것은 물론 지난 1월에는 독일 언론을 이용해 안드레 쉬얼레를 원하는 볼프스부르크 구단을 애태웠다. 그렇게 첼시는 올 시즌 이적 시장에서 흑자를 기록하게 됐다.
타 구단에 비해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글로벌 마케팅도 명문 구단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전략으로 평가된다.
첼시는 아무래도 오랜 전통을 지닌 맨유, 아스날, 리버풀에 비해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 특히 중동권에서 절대적 지지를 얻는 맨시티와 달리 확실한 지지 기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브랜드와의 긴밀한 스폰서십을 통해 자선 사업과 캠페인에 앞장서는가 하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9개국에 ‘첼시 축구학교’를 열어 어린 축구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느리지만 확실한 명문 구단의 품격을 갖춰나가겠다는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의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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