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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은 대동독 방송으로 통일했는데 정부는 나몰라라


입력 2015.08.30 09:48 수정 2015.08.30 10:29        목용재 기자

대동독방송 미치지 않은 지역은 '무지의 계곡'으로 불려

"자유 모르는 동독 주민에게 자유와 진리를 전해준 방송"

북한의 포격도발로 남북이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내포한 채 대치정국을 이어가는 가운데 사흘째 남북 고위급 회담이 지속되는 24일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자유로 일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일대가 고요한 적막감에 휩싸여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상적인 국가라면 정부가 나서서 대북방송을 해야 한다. 서독 정부의 경우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이후인 1961년 9월 대동독 프로그램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방송했다. 대동독 방송이 독일 통일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화 제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북한이 대북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기 위해 먼저 대화를 제의하는 등 대북방송의 위력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대동독 방송을 적극적으로 운영해 통일의 교두보를 마련한 서독의 사례를 우리 정부가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였던 서독에서 사회주의 체제인 동독에 방송을 시작한 것은 1946년 2월 미군의 라디오 채널 리아스(RIAS)였다. 미국 CIA의 재정지원을 받아 운영되던 리아스는 동독의 반민주적 행태와 범죄 행위를 조목조목 고발하는 라디오를 시작했다.

이후 1961년 9월부터는 서독 정부가 대동독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송을 송출하기 시작, 대동독 방송은 통일이 될 때까지 송출됐다. 서독의 대동독 방송 전파가 미치지 않았던 후미진 지역인 작센 지역과 북동지역에는 ‘탈 데어 아노스로젠(Tal der Ahnungslosen, 무지의 계곡)’이라는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외부 정보에 대한 동독 주민들의 갈증은 심했다.

박상봉 전 통일교육원장(독일통일정보연구소 대표)은 ‘데일리안’과 인터뷰에서 “라디오 등 미디어 매체가 독일 통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면서 “동독주민들이 가장 즐겨봤던 프로그램은 서독 공영방송의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이었다는 점이 그 근거”라고 강조했다.

박 전 원장은 “동독정권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방관했지만 경찰, 군대, 소방대 등 국가 주요기관에는 방송수신을 금지시켰다”면서 “서독방송 채널로 못 돌리도록 땜질을 하기도 하고 서독 방송을 접하는 경우 엄벌을 내렸지만 그 효과는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핵심적인 것은 정보를 항상 사회주의 식으로 해석, 왜곡된 것을 주민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라면서 “독일에 갔을 때, 호기심으로 서독 방송을 보긴 했지만 자꾸 보고싶은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북한의 경우 정보 통제가 서독과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정보에 대한 갈증은 서독 주민들보다 심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동독방송에 적극적이었던 서독…동독, 저항 하려 안간힘"

박상봉 전 통일교육원장.ⓒ데일리안
박 전 원장에 따르면 서독정부는 적극적으로 대동독방송에 나섰다. 특히 1958년부터 1960년사이 서독정부가 송출했던 프로그램인 ‘디 로테옵틱(Die Rote Optik, 붉은 광학)’은 동독 방송 장면을 캡처해 사실에 입각한 해설을 덧붙이는 방식의 프로그램이였다. 동독 정부가 동독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한 셈이다.

또한 동독주민들의 정보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주기도 했다. 이후 서독은 대동독방송을 따로 제작하지 않고 서독의 미디어 프로그램 그대로를 동독으로 송출했다.

이 같은 대동독방송에 위협을 느낀 동독은 1961년 ‘디 로테옵틱’ 방송 포맷을 동독식으로 바꾼 ‘블랙채널’을 만들어 서독으로 송출하는 등 대항하기 시작했다.

블랙채널의 주요 테마는 서독에서 발생한 다양한 정치·사회적 현안들로 대부분 동독의 목적에 따라 정보가 편집·왜곡됐다.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대남선전사이트 ‘우리민족끼리’ 같은 대남선전매체와 다름없었다.

블랙채널은 매주 월요일 저녁 서독 시청자들을 겨냥해 송출됐으며 서독 내의 좌파를 단합시키고 사회 불만세력을 조장하는데 역점을 뒀다. 동독 몰락 직전인 1989년 10월 30일에 종결될 때까지 총 1519편이 서독으로 송출됐다.

박 전 원장은 “당시 동독이 ‘디 로테옵틱’ 프로그램이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라면서 “서독의 대동독방송에 대항하려고 만든 방송인데, 서독에서도 이걸 찾아보는 팬층이 있었다. 우리나라 상황으로 보면 ‘종북’이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원장은 “서독의 경우 처음에는 체제비난 등 동독에 송출할 프로그램을 따로 제작해 쐈지만 후에는 서독 방송프로그램을 여과 없이 그대로 동독에 보내도 큰 영향을 끼쳤다”면서 “동서독이 방송교류를 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서로의 체제 수호를 위해) 교류가 아닌 방송경쟁을 벌였다고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 대남선전 국가차원서 나서는데, 손 놓고 있는 남한정부

아울러 박 전 원장은 국가차원에서 대남 선전전에 적극 나서고 있는 북한에 비해 대북선전전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는 우리 정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현재 북한은 대남선전을 위해 통일전선부 산하에 사이버전담부서를 두고 ‘구국전선’, ‘우리민족끼리’ 등 외국에 서버를 둔 140여개의 사이트를 통해 대남 사이버심리전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통해 대남선전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박 전 원장은 “정상적인 국가라면 정부가 나서서 대북방송을 해야 하는데, 현재 정부가 안하니까 민간이 도맡고 있는 것”이라면서 “정부가 못하면 민간에 힘들 실어줄 수 있도록 주파수 허용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전 원장은 “자유를 모르는 동독 주민들에게 서독의 방송은 자유와 진리를 전해준 방송이었다”면서 “서독사회의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경제적 풍요로움을 대동독방송이 전달해줬고 이 때문에 동독은 무너졌다. 우리 대북방송도 북한 주민들의 정보에 대한 욕구를 해소해주기 위한 것이다. 정부의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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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용재 기자 (morkk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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