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북, 이산가족 상봉 무산 가능성 높아"
북한이 박근혜 대통령의 제70회 유엔총회 기조연설 내용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하며 또 다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운운하고 나섰다. 북한이 연일 여러 사안과 연계해 이산가족 문제를 협상 카드로 내세우고 있는 가운데 현재 전문가들은 북한이 상봉을 무산시킬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8·25 합의 당시 우리 측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상봉의 구체적 시기를 못 박지 않아 결국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를 우리를 향한 협박용 카드로 이용하도록 하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북한은 공개 북송을 요구한 한 탈북자와 관련한 사안은 물론, 대북전단 살포·북한인권법 등과 관련 사안에 대해서도 연일 이산가족 문제를 연계하면서 우리 측을 압박해왔다. 그리고 지난 29일에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박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문 일부 내용을 직접 거론해 비난하며 이산가족 상봉 무산 가능성을 시사했다.
실제 북한은 조평통 담화에서 “남조선집권자가 밖에 나가 동족을 물고 뜯는 온갖 험담을 해대는 못된 악습을 버리지 못하고 유엔무대에서 또다시 동족대결망발을 늘어놓아 내외의 경악을 자아내고 있다”며 “평화통일의 미명하에 외세를 등에 업고 흡수통일을 실현해보려는 야망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것은 우리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도발이며 어렵게 마련된 북남관계 개선분위기를 망쳐놓는 극악한 대결망동”이라며 “남조선당국의 무분별한 대결소동으로 하여 북남관계는 물론 모처럼 추진되고 있는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도 살얼음장같은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있다”고 경고했다.
남북은 지난 8월 25일 남북 고위급 접촉을 계기로 이뤄진 남북적십자간 실무 접촉을 통해 오는 10월 20~26일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열기로 상호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은 지속적으로 남북관계 악화의 원인과 책임을 남측에 돌리면서 상봉 행사를 무산시킬 수 있다고 협박하는 상황이다.
일부 전문가는 이번 북한의 담화 내용이 이전에 비해 다소 수위가 높은 비난이라는 점을 근거로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북한이 지난 2013년 9월 상봉 행사를 나흘 앞두고 무산시킨 전례가 있고, 오는 10월 10일 노동당창건 70주년을 전후한 장거리로켓 발사와 관련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에 반발해 또 다시 합의를 깨뜨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 실장은 30일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이번 북한의 발언을 보면 10월 10일 당창건 기념일 로켓 발사에 대한 서방국의 대북제제를 결정적인 적대행위로 간주해 상봉을 무산시킬 가능성이 높다"면서 "북한은 위기의식을 느낄수록 무력시위를 지속할 것이고 우리 쪽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압박하려는 모양새를 보이면 이산가족 카드로 자꾸 흔들고 위협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지난달 25일 고위급 접촉 당시 북한 노동당 창건일 이전으로 상봉 시기를 정하지 못해 이산가족 문제에서 우리 측이 계속 끌려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전부터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가능성이 제기됐음에도 당시 합의에 상봉의 구체적 시기를 담지 않고 마무리해 이산가족 상봉행사 무산 가능성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실제 남북 고위급 접촉 이후 발표된 공동 보도문에 따르면 합의문에는 ‘남과 북은 올해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고 앞으로 계속해 나가기로 하였으며 이를 위한 적십자 실무 접촉을 9월 초에 가지기로 하였다’라는 내용이 포함됐을 뿐, 시기·장소 등 상봉과 관련한 구체적 사항은 담기지 않았다.
정 실장은 “8·25 합의 자체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며 “그 당시에는 북한이 아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을 끌더라도 구체적으로 합의를 도출했어야 했다. 이는 우리 협상력의 부재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밖에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본보에 “무산 가능성은 처음부터 예견됐던 일”이라며 “북한 입장에서는 한국이 좋아하는 것(이산가족)을 제시하면서 한국의 여러 가지 행동을 제약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아마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이산가족 상봉을 연계해) 협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는 현재로서는 상봉의 무산 가능성을 평가하기 어렵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움직임을 보면 당 창건기념일 행사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또 이번 박 대통령의 연설도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지적보다는 오히려 북한과의 협력 가능성이나 대화 유지에 방점을 뒀다고 보면 상황 자체가 절대 불리한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깨겠다거나 도발하기에는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유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당 창건일에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따라서 주변국 특히 유엔에서의 대응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깨겠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무산 가능성은 향후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편, 정부는 30일 북한 조평통 담화 내용과 관련해 북한이 일방적인 주장과 비난, 위협을 즉각 중단하고 8·25 협의를 성실하게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대통령의 유엔연설 등을 일방적으로 왜곡·비난하고 특히 남북 고위급 접촉의 합의 사안이자 인도적 사안인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대해서도 위태롭다고 위협하는 것에 대해서 심히 유감스럽다고 생각한다”며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인도적 문제를 정치·군사적 이유로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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