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납북자, 북 우발적 범죄? "철저한 계획 범죄"
전문가 "북, 행정인프라 구축 위해 다양한 직군의 민간인 계획 납치"
현재 12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납북자들은 한국전쟁 당시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닌 북한의 계획적인 한국 전복 모략에 의해 진행된 것이라고 납북문제 전문가가 지적했다.
이영조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30일 서울글로벌센터에서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KWAFU)가 주최하고 전환기정의연구원·전환기정의워킹그룹이 협력한 ‘2015 KWAFU 전환기정의 국제회의-전시민간인 보호와 6.25전쟁 중 민간인 납북문제 해결’이라는 제하의 토론회에서 “북한점령군은 한국전쟁 당시 남한의 정치가, 사업가, 전문가 등 엘리트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들을 색출해 북한으로 데려갔다”며 “당시 북한의 집단 납치는 사전 계획과 체계적 수행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영조 교수에 따르면 북한은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남한 민간인들을 그들의 의지에 반하여 북한으로 데려갔다. 실제로 현존하는 북한의 6가지 명부에서 총 9만 6013명의 납북자들이 대조검토를 통해 확인됐고, 일부 학자들은 12만명이 넘는 남한 민간인들이 강제 납북됐다고 추정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북한의 집단 납치는 이른바 ‘끌어들이기 작전’을 통해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한 근거로 현재 남아있는 북한군사위원회(NKMC) 자료를 거론했다.
이 교수는 “NKMC는 1950년 7월 1일 네 번째 회의에서 군대를 강화하고 전쟁에서 승리를 위한 싸움에서 남한 국민을 적극적으로 조직화하고 동원함으로써 미국과 이승만 정권을 더욱 고립시키고 약화시킬 수 있도록 남한 청년들을 의용군으로 징집하기로 결정했다”며 해당 자료를 제시·분석했다.
이 교수는 NKMC 1950년 7월 1일자 제18호 결정사항을 제시하며 “서울시민 50만 명을 북한의 농업 및 산업현장으로 이송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며 “또 해당 문서의 1950년 9월 5일자 자료를 보면 ‘서울시민 전출 사업에 관한 협조사에 대하여’라는 부분에서 앞서 말한 18호 결정사항이 실제로 자유의지에 반하여 시행됐음을 알 수 있다”고 근거를 더했다.
이어 그는 “이 모든 문서에는 ‘모든 관계기관이 해방된 서울 거주민들을 공장, 광산, 농장 등에서 일하도록 북한으로 이송하고 있다’고 적혀있다”며 “또한 도주자가 있을 시 체포한다는 내용까지 모두 담겨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 교수는 북한의 남한 엘리트 납치 아이디어는 1946년부터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1946년 7월 31일자 교시 문건인 ‘남조선에서 인테리들을 데려올 데 대하여’에서 김일성이 부족한 인테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한에서 인테리들을 데려오기로 촉구한 내용이 나와 있다”며 “한국전쟁 초기 이 계획은 NKMC 제9호 결정사항인 ‘남한의 정치, 사회, 기업 인사들을 끌어들이고 그들과 통일전선을 강화하는데 대하여’에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현존하는 명부들로 총 9만 6013명의 납북자를 확인한 김명호 강릉대 교수의 연구를 인용해 “북한의 강제납치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초기 3개월 간 집중적으로 발생하면서 납북자의 88.2%가 이 시기 북한으로 끌려갔다”며 “이중 84.6%가 16세 이상 35세 이하, 98.1%가 남성이었는데 이들은 사전 계획된 체계적 범죄의 희생자”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그는 “희생자들의 직업을 보면 농업이 가장 큰 비율(5만 8373)을 차지했고, 그 다음은 무직(5208), 상업(4797), 노동자(3984)순이다. 이 가운데 2919명은 공무원, 1613명은 경찰, 863명은 법조인, 164명은 언론인, 169명은 정치인”이라며 “엘리트와 전문가의 수는 적은 듯 보이지만 당시 개발 정도를 고려하면 꽤 큰 숫자로, 납치된 법조계 인사와 언론인은 동종 그룹의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같은 날 발제자로 함께 참석한 제성호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북한이 계획적인 강제납치를 통해 대한민국의 국가 해체를 기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성호 교수 역시 김명호 교수의 자료를 인용해 북한이 철저한 사전계획 하에 강제납치를 자행했다고 주장하며 그 3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이는 △첫째, 전시 납북자들이 전쟁 직후인 3개월 안에 88.2%가 납치된 것은 전시 납북이 전쟁 목적과 관련이 있고 사전계획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 △둘째, 납북 당시 나이가 16~35세까지의 청·장년층이 84.6%인 것과, 성별에서 남자가 98.1%이고 여자의 경우 간호사와 같이 직업이 있는 것은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건설에 필요한 대상자를 선별한 것 △셋째, 납북이 자택과 근처에서 자행된 경우가 80.3%에 이르는데 이는 전시 납북이 조직적으로 행해졌음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것 등이다.
그러면서 그는 “현존하는 자료들을 통해 북한에 의한 전시 납북은 1,2,3차 산업에 종사하는 생산직 근로자를 망라하고 북한의 행정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공무원을 다수 납치해 간 사실을 알 수 있다”며 “뿐만 아니라 경찰, 군인, 교수 및 교원, 의사·약사, 법조인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지식인 계층(전문직 종사자)을 납치해갔는데, 이는 북한이 일시에 대한민국의 국가 해체를 기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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