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30시간의 법칙' 욕설 파문에도 재현될까
19대 국회 입성 전부터 대표 취임 후에도 철수, 또 철수
전문가 "반격 카드 없어...이미 공천룰 전쟁에선 패한 것"
'김무성의 30시간 법칙'은 다시금 재현될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자신이 내뱉은 주장을 청와대와 친박계의 압박에 30시간을 채 버텨내지 못하고 항복 선언을 한다는 뜻의 비아냥이 회자되고 있다. 친박계 현역 의원 살생부 논란이 김무성 대표 공천배제 기획 파문으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김 대표가 또다시 적당한 선에서 발을 뺄까 하는 시나리오에 귀추가 주목된다.
시간을 거슬러 가면 김 대표의 '철수'는 19대 총선에서부터 나타났다. 당시 새누리당 공천에 탈락한 김 대표는 이에 불복해 탈당할 것으로 관측됐으나 백의종군을 전격 선언해 같이 힘을 모으기로 기대했던 친이계와 '제3보수신당' 결성 밑그림을 그리고 있던 국민생각의 스텝을 완전히 꼬이게 만들었다. 이러한 행보는 YS 시절 상도동계 가신 그룹과 당시 박근혜 캠프 좌장과 이후 결별, MB 정부의 집권당 원내대표 등 그의 화려한 정치적 경력 및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19대 총선 때 전통 야도(野都)였던 부산이 1990년 3당 합당 이후 보수진영의 텃밭으로 굳어졌다가 다시 야권 성향이 되살아났던 점을 감안했을 때, 친박계의 보복 공천을 주장하던 친이계 공천 탈락 의원들로서는 김 대표와의 연대가 매력적인 카드였다. 그러나 야권연대 합의가 그의 발목을 잡았고 결국 "나라의 명운이 걸린 우파 재집권"을 선택했다.
보수분열로 정권을 야당에 내주는 '원흉'이 될 바에야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다시 손잡는 것이 정치적 득실상 훨씬 낫다는 계산 하에 김 대표는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하지만 당 대표로 취임한 이후에도 김 대표의 물러나기는 계속됐다.
'상하이발 개헌론'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4년 10월 16일 김 대표는 중국 출장에서 '개헌론'을 꺼내 청와대와 혈투를 치렀다. 이에 당시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실수가 아닌 것 같다"며 경고했고 이 말을 전해들은 김 대표는 "청와대 누가 그런 말을 했느냐"고 되물으며 확전됐다. 그러나 이후 김 대표는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가 많이 시작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투였다"라며 자신의 '개헌론' 발언을 철회했다. 박 대통령에게는 사과까지 했다. 그는 불을 질러놓고 상황이 번지자 입장을 번복하며 '빠지기' 전략을 채택했다.
2015년 6월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 파동 당시에도 초반에는 유 전 원내대표의 손을 잡는 듯한 자세로 청와대와 맞섰지만 이후 "새누리당의 미래와 박근혜 정권의 성공을 위해"서라는 말을 남기며 '원내대표 사퇴 권고 결의안 채택'을 위한 의원총회를 소집해 유 전 원내대표의 손을 놓았다. 김 대표는 '순망치한', '혈맹'이라고 까지 불리던 유 전 원내대표와 결국 돌아섰다는 평가를 받으면서까지 청와대와의 갈등을 피하려 했다.
2015년 8월에는 '김영란법'과 관련해 발언을 번복했다. 앞서 김 대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영란법 때문에 여러분들 농사지어가지고 추석이나 설 명절에 선물로 많이 팔리는데..."라며 농축수산물을 주고받는 것은 제외돼야 한다는 취지로 10일 말했지만 발언 하루 만에 "내가 농축산물을 제외하자는 말을 한 일이 없다"고 해명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인기영합적 발언을 한 뒤 번복하는 게 고도의 정략적 계산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2015년 10월에는 공천 방식을 둘러싸고 청와대와의 갈등을 겪었다. 김 대표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대해 청와대와 미리 상의했다고 했지만 현기환 정무수석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분명히 전달했다고 반박하며 충돌했다. 이에 여권 내부에서도 갈등이 지속됐고 결국 김 대표는 현 수석과 전화통화를 통해 "더 이상 확전을 자제하자"는 의견을 주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12월에는 친박계의 반발로 그동안 주장해오던 오픈프라이머리를 포기한 뒤 복안으로 국민 참여비율을 당헌 당규에 적시된 50%보다 최대한 많이 반영하자고 했으나 친박계의 공세에 밀려 기본 경선 룰은 당헌 당규대로 하되, 일부 지역에 대해서만 국민 참여비율을 높이기로 양보했다. 당시 김 대표는 '대표가 많이 양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당 대표가 양보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은 일 아닌가"라고 답했다.
2016년 2월 이한구 공관위원장 선임 당시 김 대표는 다시 물러섰다. 당시 비박계가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를 지내 계파색이 엷고 호남 출신이라는 강점을 가진 김황식 전 총리를 공관위원장으로 추대한다는 설이 돌았지만 친박계의 '이한구 공세'에 밀려 이내 잠잠해지고 말았다. 이에 '현역 물갈이'와 '전략공천'을 주장해온 친박계 이한구 의원을 위원장으로 수용했다는 것은 이미 계파 갈등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김 대표가 더 이상 설 곳이 없어지는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리고 7일 김 대표는 친박계와의 공천권 대결에서 사실상 후퇴 결정을 내렸다. 최고위는 이날 당 공천관리위원회가 발표한 1차 경선지역과 단수 추천지역 등 모두 32곳의 공천 결과를 추인했다. 논란이 된 곳은 현역인 3선의 김태환 의원을 탈락시키고 장석춘 전 한국노총 위원장을 단수추천한 경북 구미을 지역이다. 지지율이 가장 높은 현역의원을 사실상 컷오프한 것을 놓고 '100% 상향식 공천'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대표는 이의를 제기했지만 결국 수용하면서 '전략공천'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김 대표는 청와대 또는 친박계와 첨예한 갈등 사안이 있을 때마다 초반에는 상대적으로 거세게 나갔지만 끝에는 처음과 비교할 때 슬그머니 입장을 바꾸는 전략을 선택해왔다.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이번 사건도 오래 시간을 끌지 않고 협상해 공천 절차를 그대로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30시간 등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김무성 대표는 이미 공천룰과 관련한 전쟁에서는 이미 패해버렸다"며 "여론이 워낙 안 좋으니 친박계에서 윤상현 의원에게 책임지고 물러나라고 해도 그것 자체는 반격의 카드가 아니다. 반격할 수 있는 카드가 단 한 가지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의 음모론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에 김 대표 쪽에서 반격할 수 있는 기회로서는 굉장히 좋은 기회다"면서도 "이미 상당 부분 리더십을 상실한 상태에서 반격한다는 것은 오히려 모양새가 안 좋을 수도 있다. 이미 이한구 위원장의 손으로 넘어간 '공천 로드맵'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 대표이기 때문에 저항도 부분적으로는 나오겠지만 별 영양가 없는 액션일 뿐 자신이 원래 지키고 있던 가치인 상향식 공천제를 유지할 수 있는 명분은 아무 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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