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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후신드롬' 아무나 제복이 멋지진 않지 말입니다


입력 2016.04.03 08:06 수정 2016.04.04 11:38        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의 문화 꼬기>갖추고 싶지만 갖출 수 없는 정체성

KBS2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화면캡처.

최근 화제의 드라마들에서는 특전사와 해군의 제복(드라마 '굿바이 미스터 블랙')이 화제가 되었다. 과거 영화 '사관과 신사(An Officer and a Gentleman, 1982) '어 퓨 굿 맨(A Few Good Men, 1992)'에서는 하얀 해군 제복이 인상적이었다. 특전사 제복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등장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 군 제복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우리 텔레비전 드라마는 잘 볼 수가 없었다. 주로 제3공화국이나 제5공화국 같은 과거형 시대극에서나 가능했다.

드라마 '태양의 제후'에서 등장한 특전사의 제복은 기존의 우리가 알고 있던 제복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만약 기존의 제복이었다면,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했을지 모른다. 이렇게 제복이 눈길을 끄는 것은 그것이 갖고 있는 정체성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정체성 나아가 소속에 대한 문제는 희소성의 가치와 맞물려 대중문화 속에서 소비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영화 ‘검은 사제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 '검은 사제들'은 많은 전문가와 기성세대들의 기대를 저버린 영화였다. 기대를 저버린 영화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영화 자체에 별다른 것이 없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기 때문에 실패를 기대했는데 빗나갔다는 점이다. 영화 '검은 사제들'은 대중적으로 성공했다. 이런 영화가 대중적인 선호를 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로 보였다. 강동원의 스타 파워라는 분석도 있을만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놓친 점이 있었다. 이 영화가 애초에 별다를 게 없다거나 아니면 기존 영화의 짝퉁이라는 분석이 나온 이유는 구마사를 다룬 엑소시스트 유형의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기존의 인식에서는 영화 '검은사제'들이 이전에 나온 영화와 많이 닮아서 새롭지 않았다. 그렇지만 엑소시스트는 1973년 작품이었다. 비슷한 유형의 작품이 있었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수십년이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온 점이 있었다.

이런 엑소시즘 영화의 흥행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등장했다. 이 드라마는 애초에 다른 방송사에서 거절당했다. 재난 상황에서 일어나는 특전사 장교와 의사의 사랑이라는 컨셉은 올드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군인 제복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없었다. ‘진짜 사나이’가 많은 비판에도 시청률이 유지되는 것은 그간의 희소성 때문이었다. 여성 시청자들이 가볼 수 없는, 희소의 영역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군복은 확실한 정체성을 의미한다. 제복은 한편으로 희소성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더구나 뭔가 뿌듯함을 안겨주는 집단의식이 있으니 다른 드라마와 달리 차별성은 있어 보였다.

최근에 젊은 층 사이에서 항공 점퍼 스타일이 유행이다. 미 항공기 승무원이 입었던 옷인데 그것이 패션 트렌드로 유행을 하고 있다. 이는 클론템이라고 불린다. 클론은 복제, 템은 아이템을 말한다. 즉 복제하듯이 집단적으로 같이 입는 옷을 말한다. 그렇게 본다면 집단주의가 한국에 강하기 때문에 너도나도 이렇게 따라서 입는다고 할 수 있을 듯싶다. 항공 점퍼는 군복에서 펑키 스타일로 1970년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그 옷은 앞서가는 옷을 의미하기도 했으며 어떤 집단에 소속되는 정체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영화 '탑건'의 톰 크루즈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멋진 어떤 존재가 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옷을 입는 사람들은 주로 10대에서 20대 남학생들이다. 왜 이 옷을 입는 것일까. 이들은 옷을 입긴 입어야 하는데, 마땅한 것을 고를 수가 없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는 옷을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자신에게 맞는 옷을 계획적으로 선택해서 착용하는 행태가 없었다. 이는 단지 남이 입으니까 따라한다는 맥락과는 달랐다. 요즘 젊은 트렌디 패션에 참여하려는 소속과 정체감의 연장선상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대학의 과잠이라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새학기에 신입생들은 이러한 과잠을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소속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 소속된 곳이 더 자신감과 뿌듯함을 준다면 더욱 착용할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다 입을 수 있다면, 애써 과잠을 입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희소성이 있고 그것이 자부심으로 연결될 때 그것은 적극적인 착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때문인지 과잠에 대학 이름만이 아니라 고등학교 이름을 새겨 차별화를 기하는 일이 벌어지고는 한다. 서열화와 학벌주의 지적이 따라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소속이 너무 오래 된다면 감추고 싶을 것이다. 대학은 일시적으로 정체성을 갖게 할 뿐, 영원히 머물게 할 수는 없다. 때문에 오랜 동안 대학을 다니고 있는 이전 오래된 학번들은 과잠을 입기 힘들다. 더구나 입학연도를 적은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정체성이 필요하다. 그 정체성을 원하는 대로 얻는다면 희소한 가치를 얻는 셈이 된다. 그 정체성은 바로 회사나 기업과 같은 새로운 조직 구성원이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그 구정체성과 신정체성의 경계에서 오락가락한다. 젊은 세대의 새로운 정체성이 드라마에도 반영되어 주목을 받는다. 이러한 점은 드라마 ‘미생’에서 잘 보여 주었다. 정장 자켓을 입고 셔츠에 넥타이 그리고 목에 건 신분증이 바로 이를 뜻한다. 그것은 회사원을 의미한다. 고용불안 시대에 어느 직장인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복에 대한 환상은 바로 자신이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선망에서 비롯된다. 혹은 그것이 가져다 줄 자신의 차별적인 소속감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제복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담아내고 있는 상징 기호에 다름 아닌 것이다. 경찰 제복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이제 자아실현은 아니더라도 일자리 즉 직원이 되어 일을 하는 터전이다. 그것은 단지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것이다. 군복은 더 이상 칙칙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망을 투영하거나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줄 같은 존재를 상징하는 듯이 보인다. 자아 투영의 심리가 그렇다고 해도 군대는 군대라는 점을 우리는 모르지 않으며,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다.

무엇보다 요즘 드라마에서 군 제복이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이상적인 조직의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목표를 위해 서로 갈등하기 보다는 항상 인화단결하고 미션을 언제나 완수해 낸다. 끈끈한 전우애가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더구나 그들은 항상 자신보다는 상대방, 전체 조직, 그리고 나라와 사회를 염려한다. 그것이 비현실적이라고 하지만, 그런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연인까지 각별하게 다 챙긴다. 바쁘다는 핑계 같은 것은 부차적이다.

아니 그러한 장애 요소는 오히려 국가와 사회를 구하여야 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극적인 요소가 되어버린다. 제3의 공간에서 일개 개인과 국가가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 전력투구하는 모습이 이채롭고 희소한 가치 충족을 대신 이뤄준다. 이런 충족감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을 대가로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기보다 남에게 희생하고 봉사하는 모습은 이상적이고 그것은 문화적인 것이다. 물론 현실은 다를 수 있다.

저성장 고용불안은 소속감을 줄 수 있는 정체성의 제복에 대한 열망을 강화 할 것이다. 우리는 제복을 통해 자신이 이상적으로 삼는 무엇인가를 충족하기 위해 착용한다. 다만, 흔히 우리가 잘 알고 있고 좋다고 여기는 그 무엇을 채우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대부분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어떻게 코디해야 하는 지조차 모르는 청춘들처럼 이리저리 휘둘리고는 한다. 클론 제복이면 어떠랴, 다만 강압적으로 조직 안에서 강제로 착용하기보다 자신 스스로 결정하는 모습이 그 결과에 관계없이 아름답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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