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 이정현, 보수 정당에 호남 역사 쓰다
'박 대통령 복심' 새누리당 신임 대표로 당선
전국 정당 발돋움…'반기문 대망론' 탄력 받을 듯
‘박 대통령 복심’ 새누리당 신임 대표로 당선
전국 정당 발돋움…‘반기문 대망론’ 탄력 받을 듯
그야말로 이변이다. “제가 당 대표가 되면 바다를 가르는 것보다 기적”이라던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은 9일 ‘인간 승리’ 신화를 썼다. 영남 기반의 보수 정당에서 최초로 호남 출신 당 대표가 되면서다.
이날 오후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의 제4차 전당대회에서 이 신임 대표는 4만4421표로 이주영·주호영·한선교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저는 오늘 새누리당 당 대표에 당선됐다”며 “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이 영광되고 거룩하기까지 한 책무를 다 하고자 기꺼이 새누리당 당 대표직을 맡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 순간부터 새누리당에는 친박, 비박 그리고 어떤 계파도 존재할 수 없음을 선언하며, 당연히 패배주의도 지역주의도 없음을 선언한다”며 “민생부터 챙기고, 사회적 약자들, 방황하는 청년들 문제 해결부터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비주류, 비엘리트 소외지역 출신이 집권여당의 대표가 될 수 있는 대한민국은 기회의 땅”이라며 “위대한 한국을 지키고 국민을 지키고 가치를 지키는 새누리당이 되도록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영남 정당에서의 호남 출신 ‘비주류’ 이 대표의 ‘무모한 도전’은 많은 이의 주목을 받아 왔다. 17대 총선에서 당에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광주에 출마했지만, 예상대로 낙선했다. 득표율은 1.03%(720표)였다. 연고도, 연줄도 없던 그의 손을 잡아준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2004년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이 대표의 광주 출마를 인상 깊게 보고 수석부대변인으로 발탁했다. 이 때부터 박 대통령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 대표가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부터다. 박 대통령이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패한 후 ‘정치적 칩거’ 생활을 할 때 이 대표는 대변인 격으로 박 대통령의 옆을 지켰다. 이 대표는 박 대통령의 추천으로 18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성했다. 19대 총선 때 광주에 다시 출마, 39.7%라는 보수 정당 역대 최고의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야권 연대에 밀려 석패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캠프’의 공보단장으로 활약하며 ‘왕의 남자’가 됐다.
호남 출신 비주류 비엘리트 이 대표는 새누리당에서 청와대 수석, 지역구 재선, 집권여당 대표까지 새 역사를 쓰게 됐다. 지난달 16일 “호남에서 새누리당으로 23년째 출마했다. 새누리당에서 호남인으로 33년간 꿈을 키워왔다. 등 뒤에서 쏟아지는 비웃음을 참아왔다. 이 땅의 많은 비주류, 비엘리트들에게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희망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한 것은 지역주의에 번번이 좌절했던 그를 떠올리게 한다.
이 때문에 이 대표의 당선은 여러 의미를 가진다. 영남 기반의 보수 정당에서 지역주의의 벽이 무너졌다는 것, 즉 새누리당의 비주류가 주류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점은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영남 정당인 새누리당이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할 기회가 마련됐다는 해석이다.
친박계의 당권 탈환도 주목된다. ‘뼛속까지 친박’ 이 대표를 당 대표 자리에 올려놓은 것도 친박계의 역할이 컸다. 앞서 ‘비주류’인 이 대표가 지난 1일 공개된 MBN·리얼미터의 당원 선거인단 1014명 대상 조사에서 23.8%로 타 후보를 월등히 앞선 것도 친박계의 결집으로 인한 영향으로 분석됐다. 전대를 앞둔 주말에 논란이 된 ‘오더 투표’가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이정현 체제’ 출범으로 ‘반기문 대망론’도 탄력 받을 전망이다. 친박계는 박 대통령의 성공적인 임기 마무리와 자신들에 의한 정권 재창출을 목표로 삼아왔다. 이러한 계획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옹립 시나리오도 포함돼 있다. 박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대구·경북(TK)과 반 총장의 지지 기반인 충청 연합으로는 반기문 대망론의 위력이 제한적일 거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 대표의 당선으로 그의 기반인 호남까지 잇는 ‘삼각 연대’가 꾸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대표와 함께 선출된 최고위원 4명 중 3명(조원진·이장우·최연혜 의원, 강석호 의원은 비박)과 청년 최고위원 유창수 글로벌정치연구소장이 모두 친박으로 분류되면서 당 내 기반이 없는 반 총장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처럼 여론조사 비율을 높이는 등의 조정을 하거나, 반 총장을 추대하는 형태로 본선 진출에 유리한 구도를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본보와 통화에서 “이 대표의 당선은 친박계의 결집이며, 영남 정당에서 최초로 호남 출신 당 대표가 나왔다는 점에서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할 기회가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며 “반 총장의 대권 가도에 유리한 구도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신 교수는 분권형 개헌(이원집정부제)이 아닌 4년 중임제로의 개헌 논의가 점화될 거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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