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삼분지계? TK-PK 균열에 너도나도 '호남 띄우기'
3당 합당후 굳건하던 영남 분열에 새누리 호남 공들여
탈환하려는 더민주 지키려는 국민의당, 복잡해진 셈법
뺏으려는 새누리당, 탈환하려는 더민주, 지키려는 국민의당
바야흐로 호남 전성시대다. 야권의 성지였던 호남에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의 구애가 쏟아지고 있다. 호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국민의당이나 호남 탈환을 노리는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여권의 대선주자급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도 호남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조차 호남출신이고 국회의장단 역시 헌정 사상 최초로 전부 호남출신이다.
여야를 막론한 호남 구애에는 전통적인 지역구도였던 영남대 호남 구도가 지역 소(小)분할주의로 변모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새누리당, 뺏으려는 자
대선후보난에 시달리고 있는 여권내에서도 차기 대선주자로 빠지지 않는 김무성 전 대표는 8월부터 민생투어에 나섰다. 비공개투어라지만 자신의 SNS를 통해 그날그날 자신의 체험과 소회를 적었기 때문에 사실상 대선주자의 민심청취 행보였다.
김 전 대표의 첫 발길은 전남 진도 팽목항이었다. 이후로도 벌교와 소록도를 들러 광주를 찾았다. 광주에서는 5·18 국립묘지와 김 전 대표의 선친이 설립했다는 전남방직을 들렀고, 5·18 국립묘지에서 그는 "이제 5·18 민주정신을 살리기 위해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서도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무엇보다 특별하게 생각하는 호남을 위한 선물이었다.
이정현 의원의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 당선도 여권의 호남 구애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표는 여당에게는 불모지인 호남에서 최초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에 이어 최초로 보수당 대표가 됐다. 이 대표가 당 대표로 당선된 이유에는 위기감을 느낀 친박계의 결집이 주효했다. 범친박계 후보 세 명중 유독 이 대표에게 표가 쏠린 것은 PK의 분화로 위기감을 느낀 TK 세력의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정현 대표의 당선 이유를 '영남의 분화'로 봤다. 과거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이 '영남'이라는 테두리에 묶여 보수여당의 집권에 큰 역할을 해왔지만, 이번 4·13 총선에서 더민주가 PK지역을 5석이나 차지하는 등 '영남 밴드'가 흔들리고 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TK가 PK에서 뺏긴 지분을 호남의 보수층을 통해 만회하고자 호남출신 이 대표를 전략적으로 밀어줬다는 분석이다.
더불어민주당, 돌려받으려는 자
새누리당의 이 같은 서진(西進)에 당황한 야권은 호남 사수를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당장 흥행에는 물음표가 붙지만 순항중인 더민주 전당대회의 당권주자들부터 각각 자신을 '호남의 며느리', '광주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지칭하는가 하면 '호남 없이는 안 돼'를 외치며 호남에 올인하고 있다.
13일 전주에서 열린 전북 대의원대회에서 첫 연설자로 나선 추미애 후보는 연분홍 옷을 입고 연단에 올라 "호남으로 시집올 때 사랑해주셨다"며 자신을 '호남 며느리'로 강조했다. 이어 "아들을 낳고 호적을 전북으로 하면서 지역차별 없는 세상을 소망했다"며 호남의 감성에 호소했다. 김상곤 후보는 자신을 광주에서 태어난 '광주의 아들'이라며 "광주에서 태어나 호남정신을 실천하며 살아왔다"고 소개했다. 그는 "단언컨대 정권교체는 이곳 호남에서 시작된다"며 호남의 역할론을 상기했다.
이종걸 후보는 "호남 없이는 더민주의 미래가 없고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면서 "새누리당이 호남 출신 대표를 선출한 것은 내년 대선에서 이기겠다는 전략적 포석"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새누리당이 호남 출신 대표를 선출했지만, 친박(친박근혜계) 대표라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면서 "우리는 친노·친문 패권집단에 휘둘리지 않는 비주류 독립후보인 이종걸을 당 대표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잠재적 대선후보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행보도 '호남'에 방점이 찍히고 있다. 박 시장은 12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광주정신'을 주제로 강연한 것에 이어 같은날 저녁 광주 상무지구 한 호프집에서 '원순친구들 준비모임'의 지지자 100여 명과 팬클럽 창단모임을 가졌다. 현직 서울시장이 타지역에서 지지자들과 팬클럽 창단 모임을 가진 것이다.
박 시장은 팬미팅에 앞서 가진 '광주정신' 강연에서 "광주정신은 제 삶의 20대부터 현재까지 나침반이자 햇불이었다"며 "척박한 시민운동의 단추를 달기 위해 젊은 나날을 바치고, 아름다운 재단과 가게를 통해서 나눔의 정신, 공동체 정신을 확장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명백한 호남 민심 잡기다.
국민의당, 지키려는 자
여야를 가리지 않는 '호남구애'에 가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국민의당이다. 나머지 두 당은 '공세' 입장인 것에 반해 국민의당은 이들로부터 호남을 '방어'해야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은 지난 4·13 총선에서 호남의 전폭적인 지지속에 원내교섭단체, 원내3당 입지를 공고히 다졌다. 하지만 총선이 4개월여 지난 지금, 국민의당의 '기반'이자 '거점'인 호남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당장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호남에서 국민의당과 더민주의 지지율 격차는 총선이후 꾸준히 좁혀지고 있으며, 대권주자 지지율 조사에서는 안철수 전 대표가 문재인 전 대표에게 따라잡힌 후 고착화돼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당도 호남을 위한 본격적인 맞춤 전략에 나서고 있다. '사드 배치'에 가장 먼저 반대한 점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국민의당이 창당초기부터 주요가치로 공표해온 것은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였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사드 배치' 문제에서 제1야당이 주춤할때 가장 먼저 '반대'를 당론화하면서 강하게 부딪쳤다. 진보, 야권으로 대변되는 호남을 향한 제스처였다.
지난 9~10일 1박2일 일정으로 이러진 국민의당 지도부의 전북방문도 결국 '호남민심 달래기'의 일환이다. 1박2일 간의 방문 내내 국민의당 지도부는 호남, 특히 전북을 위한 맞춤형 공약을 당론으로 쏟아냈다.
'지역소분할주의'의 대두, 혼돈의 2017년 대통령선거
정치권은 호남을 향한 정치권의 구애 원인으로 전통적인 지역주의구도의 붕괴를 손꼽는다. TK+PK라는 공고했던 '영남밴드'의 붕괴와 1당 독주였던 호남 패권의 분리가 각 세력별 이합집산을 불렀다는 주장이다.
각자 목표로 하는 것도 다르다. 새누리당은 PK의 일부가 여전히 공고한 만큼, 호남 보수 30%만 흡수하면 된다. 호남 갈라치기다. 반면 내년 대선에서 집권을 목표로하는 더민주는 호남의 100% 탈환이 목표다. 유력한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가 PK에서 일정 지분을 보유한만큼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고한 호남을 기반으로 영남을 갈라친 것과 비슷한 지역구도를 만들어야한다.
대선까지는 1년여 시간이 남은만큼 지금 당장 유불리를 따지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호남은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변수로 등장했다. 정치권이 호남으로 몰리는 이유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