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산림에 살던 미국선녀벌레의 '도심 습격'…민원 '속출'
이상고온에 병해충 '우글우글'…정부·지자체 공동 집중방역 실시
이상고온에 병해충 '우글우글'…정부·지자체 공동 집중방역 실시
경기도 군포시에 거주하는 주부 최모 씨(54)는 요새 밤이 오는 게 두렵다. 날이 어두워지면 베란다 방충망에 불빛을 쫓아 온 흰색 벌레가 '다닥다닥' 붙어있어 아예 불을 끄고 지내기 일쑤다. 답답함에 불을 켤 때면 벌레가 집 안으로까지 침범하기도 해 아닌 밤중에 벌레잡기로 진땀을 빼기도 한다. 낮에는 폭염에, 저녁에는 벌레에 몸살을 앓는 최 씨. 그에게 이번 여름은 너무나 가혹하다.
미국선녀벌레의 습격에 전국 농경지는 물론, 일부 지역의 도심 주택가에도 방역 비상이 걸렸다. 이상고온 현상이 지속되는데다 유충을 쓸어내릴 비 소식도 없어 개체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피해와 불편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 씨는 22일 '데일리안'에 "저녁때만 되면 방충망에 벌레들이 우글우글 붙어있고, 어쩌다 집 대문이라도 열면 순식간에 여러 마리가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며 "안 그래도 폭염에 열대야에 지독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벌레까지 더해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토로했다.
실제 최 씨가 살고 있는 군포시에는 최근 미국선녀벌레의 방제에 대한 민원이 다수 접수됐다. 지난 16일 정모 씨는 시 홈페이지를 통해 "더운 여름에 문을 열고 지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밤에 집을 출입하는 것도 힘든 상황인데 방제 등의 조치는 전혀 이뤄지는 것 같지 않다"며 시 차원의 방제 실시를 요청했다.
이 같은 상황은 비단 이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앞서 20일 성남시 홈페이지에도 미국선녀벌레에 대한 방제를 요청하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의 작성자 최모 씨는 "산 때문인지 시기 탓인지 미국선녀벌레가 날뛰는 바람에 미치겠다"며 "밤만 되면 집, 방안으로 5~7마리 정도는 기본으로 들어와 잘 시간에 (벌레) 잡느라 힘을 다 쓰고 있다. 시청·구청 차원에서 해결책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처럼 경기도 지역을 비롯해 도심지역인 서울에도 시청을 비롯한 각 자치구청에 지난 6월부터 불편신고가 이어지고 있다. 고온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면서 농촌이나 산림지역에서 주로 번식하던 벌레가 도심 주택가 등으로 퍼지고 있어 주민 생활에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본보에 "재작년부터 이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며 "유충일 때는 주로 등산로나 산책로에 하얀 물질이 쌓여있어 보기 흉하다거나 알레르기 유발에 대한 우려로 민원이 많이 발생하고, 성충이 된 지금은 밤에 불을 켜 놓으면 방충망 안으로 들어오려고 해 생활에 불편하다는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약 방제를 비롯해 끈끈이를 수목에 달아놓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수시로 방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개체 수가 워낙 많고 사실상 천적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선녀벌레 개체 수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에 대해 농촌진흥청 등 관련 기관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설명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관계자에 따르면 이 벌레의 부화 조건은 고온건조한 환경인데, 본격적으로 부화가 시작되는 올해 6월의 기온이 평년보다 1.4도 가량 높았고, 강수량은 평년의 45% 수준이었다.
전국적으로 이상고온 현상이 지속되면서 주택 등 도심뿐만 아니라 농경지 피해도 크게 우려되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에는 도내 23개 시·군 농경지 6198ha에 걸쳐 미국선녀벌레가 창궐하고 있어 긴급방제비용으로 예비비 12억을 긴급하게 투입했다. 벌레가 작물의 즙액을 빨아먹고, 과실에 하얀 왁스물질을 배설해 그을음병을 일으켜 작물의 생산량과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등 농가의 손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충청과 광주를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미국선녀벌레와 갈색날개매미충 등 농가에 피해를 입히는 병해충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방제에 나서고 있다. 병해충으로 인한 피해가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이 보이자 정부 차원에서도 철저한 방제를 강조하고 있다. 실제 농촌진흥청과 산림청은 각 지자체와 협력해 공동으로 지난 8월 18일부터 집중방제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지금 농촌진흥청, 산림청, 지자체가 공동으로 1차 집중방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오는 9월에도 2차 집중방제를 실시할 계획"이라며 "벌레가 방제를 피해 농지와 산림을 오가고 있는 상황에서 두 지역이 동시에 집중적으로 방제를 실시해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선녀벌레가 농촌 지역에 발생한 지는 이미 여러 해가 지났지만 최근에 도심지역으로의 확산이 눈에 띄고 있다. 그런 부분을 감안해 각 지자체에 방제 정보를 계속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1차 집중 방제기간은 오는 26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며, 2차 집중 방제기간은 9월 5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 기간 동안에는 전국 892개 방제구역별 동시방제가 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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