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드는 개헌론에 흔들리는 야권 공조
친문계 "지금 개헌 이야기하는 것은 순수하지 못한 정치적 의도"
비문계 "개헌에 대한 이해 부족, 본인이 대통령 된 것처럼 행동"
박근혜 대통령 탄핵 논의에 돌입한 야권이 개헌(改憲) 문제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탄핵에 대비하기 위해 국회 추천 총리를 임명하는 과정에 돌입하면, 자연히 대통령의 임기·권한을 축소할 수 있는 헌법 개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정가에선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킬 유일한 방안으로 개헌이 회자된다.
물론 현재까지는 당 차원이 아닌 유력 인사들 간 의견이 부딪치는 정도이지만, 이는 각자의 소속 정당 및 정파의 이해관계와도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다. 동시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박 대통령의 퇴진과 국회추천 총리 인선 간 선후관계에 대해 이견을 드러내는 것과도 연결돼 있다.
일단 차기 대선판에서 여야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를 앞세운 민주당 친문계로서는 이 시점에서 굳이 권력구조 개편으로 ‘판’을 흔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 야권에선 비문(비 문재인)계, 여권에선 비박(비 박근혜)계 의원들이 개헌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총리 추천 문제가 여의도 이슈로 부상한 후 가장 먼저 공개 논쟁을 벌인 건 민주당의 전·현직 대표들이다. 문재인 전 대표와 김종인 의원이 지난 21일 개헌 문제를 두고 각각 상대방 주장의 의도를 문제 삼으며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문 전 대표는 이날 대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금은 개헌을 말할 시기가 아니다. 지금 시기에 개헌을 이야기하는 것은 뭔가 순수하지 못한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고 날을 세웠다. 또 "개헌이 필요하지만 다음 대선 때 후보들이 공약해서 다음 정부 초기에 개헌을 실현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도 했다. 그는 지난 15일에도 "지금은 개헌을 논의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반면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김 의원은 같은 날 손학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 세미나에 참석해 "최근의 현실을 보고도 시간이 없느니 이런저런 핑계로 개헌 논의를 안 하려는 일부 정치 세력이 있는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문 전 대표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김 의원은 이 자리에서 "우리의 대통령제가 지난 70년간 어떻게 운영됐는지 되새겨본다면 왜 지금 7공화국을 만들기 위해 개헌을 해야 하는지 결론이 나온다"며 "이런 사태를 또 한 번 경험하면 경제고, 민주주의고, 희망이고 아예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결심하면 개헌은 언제라도 할 수 있다. 지금 같은 시기엔 더욱 좋다"고 강조했다.
손 전 고문도 "국정 농단 상태는 6공화국 헌법 체제의 총체적 폐해,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폐해가 그대로 드러난 것 아니겠느냐. 헌법 개정을 통한 권력 구조의 개편이 필요하다"며 정치권이 속히 개헌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즉각적 개헌 논의에 부정적 입장을 비친 문 전 대표를 향해 "개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개헌 논의에 관한 속도 차는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 문제로도 직결된다. 민주당의 입장은 ‘대통령 퇴진부터’다. 일단은 야권이 단일대오를 형성해 박 대통령 퇴진에 매진할 때라는 것이다. 추미애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은 첫째도 퇴진, 둘째도 퇴진, 셋째도 퇴진이다. 그 기조 아래에서 탄핵을 검토하고 적절한 시기에 과도내각 문제도 검토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반면 국민의당은 ‘총리부터 추천하자’는 입장이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당 비대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탄핵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선 총리 후 탄핵’ 합의를 해야 한다”며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더라도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게 헌법적 절차”라고 말했다. 대통령 궐위 시에도 박 대통령의 대리인격과 다를 바 없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 대행을 맡는 한, 현 정국을 수습할 수 없다는 논리다.
한편 개헌 시기와 총리 추천 문제와 관련해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22일 문 전 대표를 사이에 두고 공개적으로 파열음을 냈다.
이용호 국민의당 의원은 이날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문재인 전 대표 때문에 최근 시국 상황 접근·수습에 혼선이 빚어지는 것 같다"면서 "우리 당이 그동안 대통령이 탄핵이 되든, 사퇴를 하든 간에 책임총리를 세워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이것은 문 전 대표를 위해서는 현재 황교안 총리가 그대로 있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1인 대통령 중심제의 폐해가 나타난 만큼 차제에 분권형 개헌도 추진해야 하는데, 문 전 대표는 요즘 개헌에 반대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며 "이것은 마치 본인이 청와대 근처까지 가서, 집권의 문턱까지 갔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착각 때문에 빚어진 게 아닌가 한다. 문 전 대표는 요즘 마치 대통령이 다 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에 민주당은 국민의당이 '야권 분열 행위'를 하고 있다며 거세게 반박했다. 금태섭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를 비난하는 것을 전략적인 목표로 삼은 것 같다"며 "야권 공조를 흔드는 목적이 무엇인지, 새누리당에서 나오는 근거 없는 이야기까지 동원해서 상대 당을 흠집 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권 공조를 흔드는 것은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나오는 100만 시민들의 마음을 저버리는 행위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국민의당을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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