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2012', 국민의당 대선 후보 안철수는 누구?
잘 나가는 의사, 벤처 CEO서 정치인으로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54)가 4일 국민의당의 최종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앞서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와 박주선 국회부의장과 치른 일곱 차례 현장투표 경선에서 안 전 대표는 75.01%라는 높은 최종 득표율로 '압도적'으로 1위에 올랐다.
1962년 2월 26일 부산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잘 나가는 의학박사에서 컴퓨터 백신프로그램 개발자로, 또 벤처기업 CEO에 이어 정치 지도자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정치인 안철수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청년과 깊은 연관이 있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할 시절 그는 학생들의 고충과 고민에 늘 귀를 기울여 왔다. 깊어만 가는 청년들의 좌절과 방황을 보고 고민한 끝에 2011년 안 후보는 청춘콘서트를 열기 시작했다. 청년들을 직접 만나고, 자신의 경험과 배움을 나누며 그들의 멘토로 활약했다.
안철수의 '청춘콘서트'는 '안철수 신드롬'으로 발전했다. 2011년 안철수 후보는 서울 시장 선거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되며 국민들로부터 50%를 넘는 지지율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 자리를 박원순 후보에게 어떠한 정치적 거래도 없이 양보했다. 언론은 '아름다운 양보'라고 표현했고, 국민들이 대통령 후보로서 안 후보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안철수 후보는 '새로운 정치'를 꿈꿨다. 2013년 4월 실시된 노원 병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60.5%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됐다.또한 그해 11월 그는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추진위원회'의 출범을 알렸다. 이른바 '새정추'는 "국민의 절실한 요구에 가치 있는 삶의 정치로 보답하고자 한다"는 목표 아래 2014년 2월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가 결성됐다.
민주당과의 통합과 당대표 사퇴
안철수 후보는 김한길 전 의원의 손을 잡고 '제3지대 창당'을 선언, '새정치민주연합'을 탄생시켰다. 안철수 후보와 김한길 전 의원은 1기 공동대표에 취임했다.
그러나 2014년 7월 재보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1석을 잃었고 안 후보는 책임지고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비대위 체제를 거쳐 문재인 대표 체제가 됐지만 재보선에서 참패했다.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과 당 혁신을 둘러싸고 마찰이 빚어졌다. 안 후보는 고민 끝에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다.
2016년 2월 2일, 안철후 후보와 뜻을 같이한 사람들은 '미래를 향한 담대한 변화'를 선언하며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 체제였다.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두 달 뒤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통합을 할지, 하지 말지 당내 의견이 갈렸다.
안 후보는 야권통합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많은 이들이 조롱하고 비판했지만 안철수 후보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진심은 전해졌다. 2016년 4월 13일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큰 성과를 얻었다. 정당명부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하며 전국정당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16년 만에 양당체제가 허물어지고 다당제의 출발점이 마련됐다.
국민의당 창당, 4.13 총선 승리
2017년 제 19대 대통령선거에 도전하면서 안 후보는 이제 다시 청년을 외친다.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라는 도산 안창호의 말을 강조하며 "젊은이들이 꿈을 갖고 도전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5월 9일 열리는 대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안 후보의 지지율이 '급등세'를 보이면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양자대결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가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을지, 또 '청년이 웃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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