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 당하는 기분, 존중에 대한 교육의 부재
공동체사회, '남 탓' 아닌 '존중에 대한 교육' 필요
'무시' 당하는 기분, 존중에 대한 교육의 부재
공동체사회, '남 탓' 아닌 '존중에 대한 교육' 필요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존중, 배려, 소통 등의 기본가치가 바로 선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간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이런 가치들을 중시하는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통합가치포럼'을 운영해왔다. 포럼에서 논의된 내용을 엮어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한 일곱빛깔 무지개'를 펴냈고, 데일리안과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이러한 가치를 국민들과 공유하고 확산하기 위해 매주 3회, 총 27회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주 >
한 집에서 살던 남자를 살해하고 시체를 토막내 호수에 유기한 조성호에게 범행 이유를 물었다. "어리다고 무시해서 죽였습니다", 서울 강남역 근처 화장실에서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여자를 무참히 살해한 피의자에게 범행 이유를 물었다.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습니다", 대구에서 건설회사 사장을 죽인 그 회사 전무에게 범행 이유를 물었다. "사장이 평소 나를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이 끔찍한 살인 사건들에는 확연한 공통점이 있다. 무시당해서, 그래서 화가 나서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다. 무시는 존중의 상대 개념이다.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살인에 이르는 분노를 야기한 것이다. 물론 사건마다 '무시'라는 이유로 단순화할 수 없는 기타의 문제들이 있다. 조성호는 단독범이라 하기 어려운 의문점을 가지고 있고, 강남역 살해범은 심각한 정신질환자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무시'라는 사유 자체만으로도 범행의 동기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존중받지 못함’은 인간에게 커다란 상처를 준다.
'무시' 당하는 기분, 존중에 대한 교육의 부재
요즘 들어 무시당해서 사람을 죽였다는 사건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요점만 추려서 얘기하자면 존중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해서이다. 존중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자신에 대한 존중이다. 우리 교육은 그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타인에 대한 존중은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존중에는 일종의 톨레랑스 정신이 필요하다. 나와 '다르다'라고 하여 그가 '틀렸다'라고 생각하면 존중의 마음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타인을 존중하려면 상대와 나와의 관계 위상을 인정해야 한다. 결혼하면 시집이나 처가의 서열에 맞춰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 나보다 어리다고, 나보다 학벌이 좋지 않다고 상대를 무시하거나 그에게 대접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 시골로 이사 가서 도시에서 한 가닥 하다온 사람 대접을 받으려 하거나 노인정에 나가서 "내가 왕년에…"만 강조하면 따돌림 당하기 십상이다. 길거리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사람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인정하고 그냥 지나쳐야 한다.
학교에서 의무에 앞서 권리를 더 많이 가르친 그릇된 교육의 역습
대개 무시당하는 일은 내가 상대를 먼저 무시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나보다 못났거나 나보다 나을 것이 없는데 나를 떠받들지 않아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먼저 기존의 질서에 스며들지 않으면 그 대가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무시당함’이다. 고로 내가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상대에 대한 존중과 기존 질서에 대한 인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내가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치를 우리 사회에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자신은 다른 사람을 무시하면서 남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에는 분노한다. 심지어 부모도 무시하면서 부모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은 못 참는다. 교사를 무시하면서 교사가 무시하는 것에는 화를 낸다. 자신이 지켜야 할 것에 대해서는 듣기 싫다고 하면서 자신에게는 불만을 토로할 권리가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요즘의 세태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혹은 학교에서 의무에 앞서 권리를 더 많이 가르친 그릇된 교육의 역습이라 할 수 있다.
살기 좋은 사회 위해서는 '남 탓' 아닌 '존중에 대한 교육' 필요
타인에 대한 존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존중이다. 자신에 대한 존중감이 강하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자존감은 명예심과 긴밀히 닿아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품위 있게, 명예롭게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 자존감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는 사람은 그릇된 일을 저지를 확률이 적다. 소중한 자신을 악의 구렁텅이에 방치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의해 낮게 평가될 때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타인의 평가에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을 스스로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평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 교육은 자존감 높은 사람, 스스로 명예롭게 생각하는 사람, 품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 덕목 자체를 가르치지 않는다. 품위를 가르치지 않으니 사회에는 경박한 사람이 판을 치고 있다.
흑역사, 스스로를 비하하는 교육이 문제다
심지어는 스스로를 비하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는 우리 현대사를 흑역사로 가르치고 정부의 잘못하는 것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헬조선이니 금수저 흙수저니 하며 우리나라가 청년들이 살 수 없는 나라라는 점 등을 너도나도 강조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성찰은 없고 남 탓만 하는 경향은 질곡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 방어로 보일 정도이다. 내가 태어난 세상,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자긍심과 긍정적인 마인드가 없다면 자존감이 길러질 수 없다. 자존감이 없다면 명예심도 얻을 수 없다. 그러면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범죄를 막고 안전하고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선되어야 할 것은 존중에 대한 교육이다. 그 중에서도 자존감을 길러주는 교육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 서둘러야 할 과제이다. 말로 자존감을 가져라, 스스로를 존중해라 백날 이야기해봐야 소용없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이며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가 자랑스러운 집단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자존감과 자긍심은 얻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국가에 대한 자부심, 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 타인에 대한 예의 등을 가르치는 것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존감을 길러주는 중요한 요건이 된다.
글/황인희 통합가치포럼위원
△주요 약력
·현직 : 두루마리역사연구소 소장
·학력 : 이화여대
·경력 : 한국출판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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