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대선후보 출마, 태극기 민심 왜곡이자 보수우파 공멸
태극기 민심의 사분오열과 각자도생…지도부 책임
"전통적 보수표심만 똘똘 뭉쳐도 승산 있다"
지난 겨울 대한문 광장을 뜨겁게 달궜던 태극기 집회는 그 자체로 우리나라 정치사의 일대 사건이었다. 해방정국 이후 최초로 우파가 광장으로 몰려나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번 탄핵국면에서 우파들의 투쟁환경은 과거 정권의 민주화 투쟁 때보다 훨씬 열악했다. 애꾸눈 언론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선동된 군중들로부터는 ‘4% 소수의 시대착오적 발버둥’이란 비아냥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엄동설한 눈보라와 칼바람을 무릅쓰고 열심히 싸웠다. 그 어떤 집회에 비할 바 없이 평화롭고 비장했고 장엄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와 상관없이 태극기 집회는 4․19, 6․29 못지않은 자발적 민심의 대분출로 자리매김 되었어야 마땅하고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탄핵은 인용되었고 그렇게 결사적으로 지키고자 했던 법치와 우파가치는 매도되었다. 또한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은 파면되고 구속까지 되었다. 그 와중에 3명의 소중한 애국시민이 목숨을 잃고 폭력집회라는 누명까지 뒤집어 썼다.
태극기 민심의 사분오열, 갈등과 반목, 사후 무대책…탄기국 지도부 책임
더 최악인 것은 나라를 걱정해 한마음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애국시민들이 대선을 앞두고 사분오열 되어 갈등과 반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집회를 주도한 탄기국 지도부의 책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그들은 탄핵 인용 이후에 대한 대책이 전무했다. 집회 참가자들이야 단 한 차례도 헌재 판결에 대해 의심치 않았지만, 적어도 수백만의 군중 집회를 이끄는 지도부라면 여기에 대한 대책도 있었어야 했다.
이러한 지휘부의 역량 부족이 3명의 안타까운 희생을 낳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애국시민 3명의 희생을 너무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든 것 역시 지휘부의 책임이다.
그들은 탄핵이후 운동방향에서는 더 치명적인 판단착오와 실수를 저질렀다. 대통령 파면에 따른 대선국면에 대한 대응이 그것이다.
태극기 집회의 명분이 보수우파 가치 수호와 부당 탄핵 반대인 만큼 누가 뭐래도 최우선 과제는 정권 재창출이어야 했다.
우파진영의 기대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어 방향성을 잃고 말았다.
김진태 의원 패배 이후 승복하고 한국당 대선전 도왔어야
그래서 선택한 것이 태극기 집회를 지켜온 김진태 의원을 자유한국당의 후보로 추대하는 것이었다. 김진태 의원으로서는 갑작스런 출마였지만 나름대로 선전했다. 그러나 대선 후보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당내 경선에서 홍준표 후보에게 패했다.
좋던 싫던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면 깨끗이 승복하고 자유한국당 내에서 김진태 후보가 얻은 지지 만큼의 지분을 가지고 정치세력화 해서 대선전을 도와야 했다. 자유한국당의 정체성이 마음에 안들면 당내에서 태극기 민심을 등에 업고 싸워서 바로 잡아야 했다. 그것이 법치와 우파가치를 실현하고 부당 탄핵을 바로 잡는 첫걸음이다. 또한 지상과제인 정권 재창출의 희망을 쏘는 길이기도 하다.
신당 만들고 독자후보 낸 것은 최악의 선택
그러나 탄기국 지도부는 최악의 선택을 한다. 졸속으로 신당을 만들고 자유한국당 조원진 의원을 탈당시켜 독자적인 대선후보를 낸 것이다.
신당의 창당과 대선후보 선정 과정을 보면 전혀 보수우파 가치를 지향하는 정당 답지 않다. ‘진박 감별사’란 말로 전 소속당내 갈등을 촉발한 인물을 태극기 집회 몇 번 참석했다고 지도부 몇 명이 쑥덕거려 대선후보로 내세운 것은 코미디다.
박 전 대통령과 몇 분 동안 독대했기 때문에 자신이 친박 후보라고 주장하고 나서는 것은 태극기 민심을 오도한 것이며, 영어의 몸으로 고통 받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을 두번 죽이는 행위다.
태극기 민심 균열…홍준표, 조원진, 남재준 제각각 지지, 심지어 선거 포기
이런 작태는 태극기 민심의 균열을 가져왔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지지와 신당 조원진 지지, 그리고 통일한국당으로 입당한 남재준 지지로 갈라졌다.
우파의 분열을 틈 탄 국민의 당 안철수 후보의 중도 코스프레로 반문재인을 위해 안철수를 찍겠다는 층도 생겨났다. 패배의식에 쩔어 아예 선거를 포기하겠다는 숫자도 상당하다. 이 모든 갈등과 분열의 책임은 탄기국 지도부가 져야 한다.
신당세력은 인명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주도한 당내 경선과정의 불공정을 내세워 이러한 분열을 정당화하지만 명분이 없다. 차기 총선을 꿈꾸는 정치꾼들의 실리만 있을 뿐이다.
숭고한 태극기 민심을 팔아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려는 짓이고, 뻐꾸기가 뱁새 둥지에 알을 낳아 부화케한 후 주인을 밀어 내고 둥지를 차지하는 얌체 같은 ‘탁란(托卵) 행위’로 인식될 만하다. 무엇보다 우파정권 창출이 지상과제인 시점에서 보수 분열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다.
태극기 민심의 정치세력화 필요성을 백번 인정한다 하더라도 갈등만 조장하는 이런 졸속은 안된다. 대선이 끝나고 시간을 가지고 긴 호흡으로 추진했어야 했다.
폐족임을 자처하고 은인자중 했던 노사모의 전례
이번 야당의 경선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세력의 화려한 부활은 그런 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하고 그 핵심 세력들이 지리멸렬 했을 때, 노사모 그룹에서 노짱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당을 만들고 깜냥이 안되는 후보를 내세워 대선에 나섰다면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던 민심이 다 따라 갔을까? 노 전 대통령의 명예가 회복 되었을까? 그들은 폐족임을 자처하고 은인자중 했고 그 결과 오늘이 있었던 것이다.
아직 기회는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발등의 불인 이번 대선을 분열 없이 치뤄야 한다. 그래야 친북좌파정권의 출현을 막고 우파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 태극기 민심의 본질인 우파가치 수호와 박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을 이루는 유일한 길이다.
드물게 3파전의 대선 구도가 짜여진 것도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전통적 보수성향의 표만 확보해도 이긴다. 좌파성향의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간 이전투구식 난타전도 호재다.
금신전함 상유십이, 출사력거전 즉유가위(今臣戰艦尙有十二 出死力拒戰則猶可爲)라고 했다. "아직 신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있나이다. 죽기로 나가 싸우면 오히려 이기나이다"
임진왜란 후 억울한 모함으로 투옥되었다가 정유재란 때 원균의 칠랑해전 참패로 다시 복귀한 이순신 장군의 출사표다.
12척으로 포기하지 않았던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의 교훈
이순신은 명랑에서 12척의 배로 왜군 133척을 맞아 대승을 거뒀다. 그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철수하는 왜군을 노량에서 대파함으로 왜군의 재침 의지를 꺾어 놓고, 장렬히 전사한다.
지금 우리나라 보수우파가 딱 칠랑해전 대패 후 조선 수군 꼴이다. 그러나 열두 척이 똘똘 뭉쳐 죽을 각오로 싸우면 이길 수 있다.
더 이상의 백가쟁명(百家争鳴)과 각자도생(各自圖生)은 보수우파의 공멸과 국가와 역사의 퇴보로 이어질 것임은 불문가지다. 역사 앞에 죄를 짓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글/ 윤종근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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