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동결 합의·파기 반복한 25년…불신의'업보' 자초
싱가포르회담 후에도 핵 프로그램 가동 정황…먼저 과감한 조치 보여야
핵동결 합의·파기 반복한 25년…불신의'업보' 자초
싱가포르회담 후에도 핵 프로그램 가동 정황…먼저 과감한 조치 보여야
역사적인 2차 북미정상회담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막을 올린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국제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에 대한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7일 회담장인 메트로폴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첫 대면후 모두발언을 통해 "사방에 불신과 오해의 눈초리들도 있고, 또 적대적인 낡은 관행이 우리가 가는 길을 막으려고 했다"며 "어느 때보다도 많은 고민과 노력, 그리고 인내가 필요했던 기간이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는 국제사회의 여론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한편 대내외적으로 비핵화 진정성을 거듭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일각에선 '불신'을 초래한 장본인은 결국 북한이며, 김 위원장은 불신의 '업보'를 해소하기위해 과감한 비핵화 조치에 합의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25년간 핵 동결 합의를 수차례 번복하면서 현재의 핵 위기를 만들었다. 북한은 19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지만 1993년에 한미연합훈련인 '팀스피리트' 개최를 문제삼아 조약 탈퇴를 선언했다.
이에 미국은 제네바합의를 통해 북한의 NPT 잔류를 전제로 경수로 교체와 대체 에너지 제공을 약속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이 합의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2002년에 핵동결 해제 및 핵시설 재가동을 선언했다.
또 북한은 2005년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공동성명'에서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 포기"를 명시하고 "미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철저한 검증·사찰 요구를 받자 이에 반발하며 6자회담은 좌초됐고 불과 1년 뒤에 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김 위원장 집권 직후인 2012년 2월에는 북미가 베이징에서 회담을 갖고 우라늄농축프로그램 중단과 핵·미사일 실험 유예(모라토리엄) 등 비핵화 사전조치와 대북 식량지원을 골자로 한 '2·29 합의'를 체결했다. 아울러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 등의 내용이 담긴 '9·19공동성명' 이행도 재확인했다.
그러나 그해 4월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를 명분으로 내세워 장거리로켓 실험을 감행했고, 이후 비핵화에 대한 언급 자체를 피하며 '벼랑끝' 상황을 자초했다.
지난해 남·북·미 비핵화 협상 및 대화가 이뤄지는 와중에도 북한이 핵 활동을 지속한다는 분석이 잇따르면서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구심은 더욱 커졌다.
지난해 11월 '38노스'는 북한 평산 지역의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일대 우라늄 광산 및 정광 공장이 가동된 정황을 포착했다고 보도했고, 국제원자력기구는 싱가포르 회담 개최를 한 달 앞둔 시점에도 영변의 방사성화학연구소에서 증기가열기가 가동된 정황이 나타났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또 워싱턴포스트는 7월 북한이 산음동 연구 시설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제조하고 있는 것을 미 정보당국이 파악했다고 보도했고, 6월 말에는 싱가포르회담 이후에도 북한이 핵탄두 및 관련 장비·시설을 은폐하려 한다는 미 국방정보국의 보고서가 알려졌다.
이에 국내외 전문가들은 '완전한 핵폐기'가 담보되지 않은 핵동결 협상은 사실상 실패와 다름없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향후 북한이 태도를 돌변하고 핵무력을 다시 휘두르는 이른바 '과거의 실수' 되풀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1955년부터 핵 개발에 나선 북한은 핵탄두 중량이 500kg 이하로 충분한 소형화가 이뤄졌으며 이를 전국 곳곳에 철저하게 은닉할 수 있는 역량까지 확보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핵 관련 활동을 중지시키는 동결 협상만으로는 핵 위협을 근본적으로 억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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