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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BJ펜과 GSP, 다른 행보 다른 커리어


입력 2020.04.26 10:36 수정 2020.04.26 15:51        김종수 객원기자 ()

GSP, 철저하게 실리만 취하고 화려한 전적으로 떠나

비제이 펜, 위대한 업적 이루고도 패배 위험 감수하며 끝까지 싸워

조르주 생 피에르. ⓒ 뉴시스 조르주 생 피에르. ⓒ 뉴시스

한 시대를 풍미했던 BJ펜(41·미국)과 조르주 생 피에르(38·캐나다)는 한때 UFC 라이벌로 불렸다.


통산 커리어만 놓고 봤을 때 생 피에르(26승 2패)에 비해 펜(16승 14패)이 너무 초라해 보이지만, 전성기 퍼포먼스만 놓고 보면 충분히 라이벌로 불릴만했다.


문제는 전적 관리다. 생 피에르는 2007년 맷 세라에 불의의 일격을 당한 후 더 이상의 패배 없이 13연승으로 커리어를 마쳤다. 반면 펜은 기량이 쇠퇴하는 가운데도 고집스럽게 현역 생활을 이어가며 2011년부터 치른 8경기에서 1무 7패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퇴장했다.


펜과 생 피에르의 파이팅 스타일과 마인드는 둘의 1차전을 보면 확연하게 갈린다. 생피에르의 아슬아슬한 판정승으로 끝났지만 경기를 지켜본 팬들과 관계자들은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을 승부”라고 입을 모았다. “체급 차이를 감안했을 때 펜의 승리였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생피에르는 리얼 웰터급인 반면, 펜의 주 체급은 라이트급이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페더급도 무리 없어 보였다. 당시 웰터급에서 최고 수준의 타격을 구사한다는 극찬을 받았지만 천재성을 타고난 펜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사이즈도, 타격 옵션의 다양성도 생피에르가 우위였지만, 펜은 감각적인 펀치 센스를 앞세워 스탠딩 싸움을 지배해나갔다.


생피에르의 잽이 나오는 타이밍에서 카운터를 꽂거나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때리는 훅과 어퍼컷 등이 일품이었다. 반 박자 빠른 앞손 싸움도 생피에르를 당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언뜻 보면 단순하고 투박하게 보였지만 감각, 센스 등에서 생피에르보다 위에 있었다.


물론 생피에르 역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자신 있었던 스탠딩 싸움서 밀려 난감했을 상황에서도 그라운드 게임 위주로 냉정하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테이크다운 디펜스가 좋은 펜도 체급에서 우위에 있는 생피에르의 거듭된 압박을 밀어내기는 한계가 있었다.


생피에르는 타이밍 태클은 물론 힘으로 뽑아드는 슬램까지 섞어가며 펜을 무너뜨렸다. 펜은 정상급 주짓떼로답게 하위에서의 대처로 큰 데미지는 입지 않았다. 그러나 생피에르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라운드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려가며 차곡차곡 포인트를 쌓으며 판정승을 불렀다.


이후 둘은 한 차례 더 격돌했다. 2차전에서는 그래플링 파워가 더욱 물이 오른 생피에르가 체급의 우위를 제대로 살리며 완승을 거둔다. 하지만 생피에르의 바셀린 도포 문제가 제기되며 또 논란이 됐다. 이래저래 잡음이 끊이질 않았던 둘의 맞대결이다.



엇갈린 커리어, 전적 관리의 중요성


둘은 한때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커리어에서 큰 차이가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펜의 통산 전적은 엉망이다. 그의 전성기를 보지 않았거나 최근 종합 격투기에 빠진 팬이라면 전적 등 종합적인 데이터만보고 저평가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펜이 얌전히(?) UFC 라이트급에만 있었어도 지금보다 월등한 커리어를 쌓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한창 때 펜은 체급 내에서 독보적 기량과 존재감을 자랑했다. 펜은 만족할 줄 모르는 사나이였다. 당시 한 체급 위에서 극강의 포스를 자랑하던 맷휴즈를 꺾고 웰터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라이트급 챔피언 하빕 누르마고메도프가 웰터급 최강자 카마루 우스만을 깬 것과 다름없다.


더 이상 상대가 없다고 느낀 펜은 K-1히어로즈로 훌쩍 떠나버린다. 그곳에서도 싸움꾼으로서의 기행은 계속된다. 체급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드웨인 루드윅, 호드리고 그레이시 등을 잡아낸 펜은 당시 최강 신성으로 불리던 료토 마치다와 헤비급으로 격돌한다.


마치다는 이후 UFC로 넘어와 라이트헤비급 챔피언까지 차지한 리얼 중량급 파이터다. 당시 펜은 체중을 높이기 위해 과자와 빵 등을 닥치는 대로 먹어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15kg의 체중 차이가 있었다. 아쉽게 판정패하기는 했으나, 박빙의 승부를 펼치며 천재의 재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후 펜은 UFC 라이트급으로 돌아와 괴수로 불리던 션 셔크를 환상적인 플라잉 니킥으로 무너뜨리며 여전히 체급에서 적수가 없음을 입증했다. 셔크를 패퇴시킨 직후 펜은 또 탈 체급 매치를 선언하며 웰터급 생 피에르와 대결한다. 그러나 앞서 거론한대로 생피에르의 바셀린 도포 사건 의혹 속에 체중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TKO로 경기를 내준다. 체급 차이를 무시하기에는 웰터급 생피에르의 기량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이후 펜은 케니 플로리안, 디에고 산체스 등을 완파하며 라이트급에서만큼은 여전히 지배자로서의 위용을 자랑한다. 안타깝게도 프랭키 에드가와의 1차전을 마지막으로 펜의 천재 행보는 금이 가기 시작하고, 이후의 전적은 엉망이 되어버린다.


당시 펜은 정타에서 앞서며 타이틀을 지켜내는 듯했지만 결과는 에드가의 만장일치 판정승이었다.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쏟아졌고, 심지어 에드가의 세컨까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을 정도다. “펜이 주최 측에 미운털이 박혀 손해를 봤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당시 결과는 역대급 편파 판정 중 하나로 꼽힌다.


에드가와 리매치를 가졌지만 기량이 급격하게 떨어져가는 시점에서 나날이 발전하는 상대와의 기량 차이를 실감하고 만다. 체력적 부분에서의 차이는 펜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요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정상급 파이터의 필수 조건 중 하나는 체력이다. 펜은 전성기에서도 체력이 문제였다. 초반에는 압도적 기량을 앞세워 상대를 밀어붙이다가도 이후 체력이 떨어지며 경기력도 급감한다. 펜이 평균 정도의 체력만 가지고 있었어도, 생피에르와의 1차전은 편파판정 억울함 없이 완벽하게 제압하고, 휴즈와의 2차전 역전패도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비제이 펜. ⓒ 뉴시스 비제이 펜. ⓒ 뉴시스

어쨌든 잘 나갈 때 전적 관리를 못한 펜은 에드가와의 연전을 기점으로 커리어가 엉망진창이 된다. 반면 생 피에르는 파이팅 스타일을 바꿔가면서까지 안정적인 승률머신으로의 운행에 성공한다. 비록 ‘수면제’라는 오명을 피하지는 못했으나 성적만 놓고 봤을 때 웰터급 역대 최고의 파이터임은 부정할 수 없다.


생 피에르는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적재적소에서 잘 활용했다. 지루한 경기운영에도 잘생긴 백인영웅 이미지로 미국, 캐나다 시장에서 인기가 높았다. 당연히 PPV 수입도 높았고, 그로인해 UFC의 대우도 좋았다. 아시아, 남미 선수가 비슷하게 경기를 펼쳐나갔다면 엄청난 야유에 시달렸을 것이 분명하다.


진정한 싸움을 위해서라면 타체급도 거침없이 날아가던 펜과 달리 생 피에르는 상황파악에 능했다. 웰터급 마지막 경기에서 조니 헨드릭스에게 사실상 밀렸음에도 뜻밖의 판정승을 거둔 그는 자신의 한계와 두꺼워진 선수층을 의식해 은퇴를 선언한다. 깔끔하게 커리어를 마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후 생 피에르는 미들급으로 깜짝 컴백한다. 당시 미들급은 마이클 비스핑이라는 역대 최약체 챔피언이 왕좌에 있었는데 그러한 기회를 놓칠 생 피에르가 아니었다. 생 피에르는 자신의 상품성을 이용해 타이틀매치를 펼쳐 비스핑을 꺾고 미들급 챔피언에 등극한다. 그리고는 쟁쟁한 도전자들의 도전을 피한 채 다시 은퇴의 길을 택한다. 철저하게 실리만 취하고 빠졌다.


최근 생 피에르는 자신의 커리어에 훈장이 될 또 다른 매치업에 관심을 가진 바 있다. 라이트급 챔피언 누르마고메도프의 대결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UFC도 반응이 미지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생 피에르가 이긴다면 그는 3체급 타이틀 획득이라는 굉장한 업적을 달성하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를 볼 때 그대로 은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화끈했던 전성기, 팬들을 피 끓게 하는 열정, 탄탄한 전적 등 전설로 기억되는 역대급 파이터들은 자신만의 확실한 장점을 앞세워 격투 역사를 썼다. 내려갔다. 어떤 점에 더 비중을 두느냐는 개인별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펜과 생 피에르의 엇갈린 행보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김종수 기자 (asd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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