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산 요청에 고민 깊어지는 채권단...결국 돈 문제
비용 부담 완화와 리스크 축소 이해 관계 맞물릴 수 있어
업황 악화 장기화로 모두 쉽지 않은 현실...시간에 달려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조건 '원점 재검토' 요청에 채권단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비용절감 차원에서 분리매각이 다시 부상될지 주목된다.
HDC현산의 요청이 결국 비용 절감을 위한 금액 조정에 맞춰지면서 아시아나항공과 자회사들을 떼내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항공업황이 악화되고 향후 불확실성도 커진 상황에서 대체 매수자가 나타나기 어려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10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전날 HDC현산의 조건 원점 재검토 요청에 산업은행 등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이 어떤 대응방안을 내놓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아시아나항공과 자회사들을 떼내는 분리 매각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HDC현산이 채권단에 인수 조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요청한 배경은 결국 비용 문제로 향후 협상이 이뤄지면 인수가격에 초점이 맞춰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 재협상 과정에서 논의될 수 밖에 없는 분리매각 방안
채권단이 그동안 가격을 비롯한 핵심적인 인수 조건에 재협상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혀왔지만 결국 재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게 항공업계의 시각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업황 타격이 장기화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현산 외에 다른 대체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HDC현산이 인수 포기를 선언하고 손을 떼게되면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을 직접 관리하면서 업황 개선 후 매각을 추진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채권단이 져야할 부담과 리스크가 워낙 커져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자칫 항공업황 악화로 인한 실적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지금보다 더 좋지 않은 조건에도 매각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항공사 인수합병(M&A)은 분명한 매수자 우위의 시장”이라며 “급한 쪽은 매도하려는 측이지 매수하려는 측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매수 의향이 있는 대체자가 있더라도 이를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서두를 이유가 하나도 없을 것”이라며 “자칫 실적 부진이 심화되면서 회사 가치가 더 하락하면 그나마 있던 매수의향도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 탓에 채권단과 HDC현산간 협상이 어떻게든 원만하게 마무리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재협상 과정에서 서로 밀고 당기는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상되지만 결국 타협점을 찾아 타결로 귀결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시각을 기반으로 아시아나항공과 자회사를 분리매각 하는 방안이 급부상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앞서 산업은행은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의 통매각 원칙을 적용해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자회사인 에어서울, 에어부산, 아시아나IDT, 아시아나개발, 아시아나세이버, 아시아나에어포트 등 6개 회사가 HDC현산 측에 매각됐다.
인수 비용 부담이 걸림돌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분리 매각은 현산에게는 비용 절감을 통한 투자 부담 완화를, 산은 등 채권단에게는 리스크 축소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양측이 모두 윈-윈 할수 있는 그림이다.
◆ 분리매각도 쉽지 않은 현실...시간 가면 더 어려워져
다만 업황 부진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자회사들의 분리 매각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에어부산과 에어서울 등 두 LCC만해도 매수하려는 이들이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LCC 업계 1위인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해 주식매매계약(SPA)까지 체결했지만 계약조건 변경 요청이 제기되면서 딜 클로징(인수거래 종결)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해외 기업결합심사의 승인 완료 전이라는 것이 명목상 이유지만 실질적인 걸림돌은 이스타항공의 직원 임금 체불과 구조조정 문제 때문이다.
코로나19 이전부터 경영상 어려움을 겪은 이스타항공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으며 국내선과 국제선 운항을 모두 중단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고 지난 2월부터 임직원 월급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고 체불 임금만 250억원에 이른다.
이에 회사측은 지난 4월 말 전 직원 1600여명의 22%에 달하는 350여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조종사 노조 등의 반발로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제주항공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이스타항공 인수에 1700억원을 지원받기로 한 상태지만 이는 고용 유지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 뒤 인력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인수전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인수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에서는 HDC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재검토 요청으로 아시아나항공 매각 시나리오는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게 된 상황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항공사 M&A가 점점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가장 좋은 것은 HDC현산과 채권단간 재협상이 잘 이뤄져 기존 통 매각방식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겠지만 이제는 분리매각도 염두에 둘 수 밖에 없게 됐다”며 “활발한 M&A를 통한 재편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지만 현재와 같은 업황에서는 쉽게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