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6조원이던 신용융자 5개월 만에 16조원으로 급증
부동산, 펀드 등 투자대안 없어…자본시장 현주소 돌아봐야
올해 주식시장에는 여태 찾아볼 수 없던 개미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우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촉발된 '동학개미운동'으로 유입된 자금은 2년 2개월 만에 코스피 2400선을 넘겼다. 개인투자자는 이번 달 들어 하루 평균 30조원이 넘는 주식을 거래하면서 국내증시 방향을 좌우하는 확실한 큰 손으로 부상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개미들이 증시에 밀어 넣은 돈의 출처다. 물론 거래대금으로 사용된 돈 대부분은 개인이 융통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자금일 것이다. 월급을 사용하고 남은 돈이거나, 모아뒀던 여유자금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빚'이 현재 개인이 투자하는 돈에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빚투(빚내서 투자한다)라고 불리는 신용거래융자가 대거 증시에 투입된 것이다.
문제는 이 빚투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신용거래융자잔고는 15조766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달 3월 6조원에 불과하던 빚투 규모는 단 5개월 만에 9조원이 넘게 불어난 것이다. 심지어 지난 18일에는 16조326억원까지 치솟으며 사상 처음으로 16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코스피시장에 투입된 빚투 금액은 7조7106억원이고, 코스닥시장에는 8조563억원이 들어갔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역대급이다.
빚투가 가져올 부작용은 누구나 우려할 정도로 크다. 빚투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언론 보도는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는 중이다. 오죽하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신용거래융자를 포함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서 제외된 대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발언했을 정도다.
빚을 내서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는 대개 시세차익을 노린 단기 투자가 대부분이다. 주가가 조정 기간에 돌입해 급락하기라도 하면 투자자는 큰 손실을 입게 된다. 또 빚투는 증권사의 반대매매까지 증가시킨다. 반대매매가 늘어나면 매도물량이 대량으로 풀려 주가가 하락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개인들은 주식을 다 팔아도 빌린 대금을 갚지 못해 깡통계좌를 떠안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왜 개인투자자가 이런 위험성을 부담한 채 빚까지 내어가며 증시에 뛰어드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이미 현대는 노동 소득보다 자산수익률 증가 속도가 더 빨라진 시대가 됐다. 이에 개인들이 자산투자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을 사용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과거에는 부동산이 이들의 자금을 빨아들였지만 수억 원대를 호가하는 주택가격이 부담되는데다 현 정부 들어 마련된 23번의 부동산 대책이 개인의 주택 투자를 막아 세우고 있다.
지속된 저금리 기조로 낮아질 대로 낮아진 다른 상품 수익률도 개인투자자를 자극할 수 없게 됐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5월 28일 기준금리를 종전 대비 25bp 인하한 0.5%로 변경했다. 3월 50bp를 떨어뜨린 빅컷을 단행한 후 2개월 만에 또 금리를 낮춘 것이다. 이에 은행 예·적금은 물론, 증권사의 발행어음, CMA 등 금융상품 수익률은 0%대에 머무르고 있다.
아울러 라임자산운용, 옵티머스자산운용 등이 발행하고 각 증권사들이 판매한 사모펀드가 '사기'사건에 연루돼 초유의 환매중단을 선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펀드에 대한 투자자 신뢰도가 바닥을 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지금의 과열된 빚투는 우리 자본시장이 지닌 아쉬움이 투영된 현상이다. 동학개미운동을 이끄는 한 축은 2030인 젊은 세대다. 자산이 없는 젊은 투자자가 현재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은 주식시장에 한정됐다. 결국 빚투는 유일한 지렛대인 빚을 활용해서라도 수익을 얻고 싶은 개인 투자자의 간절한 심리가 반영된 결과다.
코로나19를 뚫고 나타난 코스피의 역대급 장세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저금리·저성장이 당연시 된 현 시대에 돈을 '믿고 맡길 곳'이 없어진 개미들의 아우성이 낳은 결과다. 물론 코스피의 이 같은 상승세가 실물경제 성장을 동반한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동학개미들의 이 같은 아우성이 국내 금융·증권사들에 대한 불신과 마땅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에 탄생한 것이라는 이 오싹한 사실은 자본시장의 현주소가 어떤지 돌아봐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