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銀 관련 대출 연체 2000억 돌파…하반기에만 24.9%↑
우려했던 중기·가계는 안정세…대기업 여신 속도도절 모드
국내 4대 은행이 대기업들에게 내준 대출에서 제 때 상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금액이 올해 하반기 들어서만 500억원 가까이 불어나며 2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려가 컸던 중소기업과 가계대출에서는 오히려 연체가 줄고 있는 반면, 안정성이 높다고 믿었던 대기업에서부터 건전성 우려가 불거지는 형국이다. 대마불사에 기반 한 여신 관행에 금융권이 자칫 발등을 찍힐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은행들도 서서히 대기업 대출을 둘러싸고 속도조절에 나서는 모습이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신한·KB국민·우리·하나은행 등 4개 시중은행들이 보유한 대기업 대출에서 1개월 이상 상환이 미뤄지고 있는 액수는 총 2170억원으로 전 분기 말(1737억원)보다 24.9%(433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별로 보면 우선 신한은행의 대기업 대출 연체금이 390억원에서 584억원으로 49.7%(194억원) 증가했다. 우리은행 역시 208억원에서 527억원으로, 국민은행도 92억원에서 181억원으로 각각 153.4%(319억원)와 96.7%(89억원)씩 해당 금액이 늘었다. 하나은행의 대기업 대출 연체만 1047억원에서 878억원으로 16.1%(169억원) 줄었지만, 액수는 여전히 최대였다.
반면 중소기업이나 가계대출에서 발생하는 연체는 감소세를 나타냈다. 조사 대상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 관련 연체액은 같은 기간 1조2346억원에서 1조1174억원으로 9.5%(1172억원) 줄었다. 가계 대출에서의 연체도 1조2086억원에서 11.4%(1381억원) 감소한 1조705억원을 기록했다.
이 같은 흐름은 은행들의 기존 예상을 다소 벗어나는 결과다. 은행들은 코로나19 이후 중소기업과 가계를 중심으로 여신 건전성이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해 왔다.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력이 취약한 차주들이 많은 만큼, 코로나19 타격으로 인한 연체도 더 빠르게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
하지만 이런 예측과 달리 문제는 대기업 쪽에서 먼저 불거진 모양새다. 금융권에서는 코로나19가 유래 없는 특수 상황인 만큼, 대기업이란 이유로 대출 심사를 느슨하게 하는 여신 심사 관행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비교적 신용도가 높기는 하지만, 한 건당 규모가 큰 대기업 대출의 특성에 대한 염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반적인 연체 발생 사례는 적을 수 있겠지만 부실이 현실화 할 경우 리스크가 단숨에 몸집을 키울 수 있어서다.
이처럼 경고음이 울리자 은행들도 최근 들어 대기업 대출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지난 달 말 4대 시중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70조2855억원으로 올해 상반기 말(71조7832억원) 대비 2.1%(1조4977억원) 줄었다. 코로나19에 따른 시중의 자금 수요가 확대되면서, 같은 기간 이들의 전체 원화 대출이 984조9814억원에서 1017조6301억원으로 3.3%(32조6487억원) 늘어난 것과 상반되는 흐름이다.
은행별로 봐도 추세는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신한은행의 대기업 대출은 15조8108억원에서 15조3467억원으로 2.9%(4641억원) 감소했다. 하나은행 역시 17조1874억원에서 16조3704억원으로, 국민은행도 21조5514억원에서 20조8944억원으로 각각 4.8%(8170억원)와 3.0%(6570억원)씩 관련 금액이 줄었다. 우리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만 17조2336억원에서 17조6740억원으로 2.6%(4404억원) 증가했다.
결국 앞으로의 관건은 앞으로 대기업들의 경영 상태가 얼마나 나아질 수 있을지 여부에 달려 있다. 올해 초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국내 대기업들의 업황은 한 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환경에 놓이기도 했지만, 하반기 들어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회복세가 확실한 반등으로 이어져야 은행들도 여신 위험을 덜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지난 달 국내 제조 대기업들의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81에 그쳤다. 업황 BSI는 기업이 인식하는 경기 상황을 지수화한 것으로, 기준치인 100보다 낮으면 경기를 비관하는 기업이 낙관하는 기업보다 많다는 뜻이다. 대기업 BSI는 지난 6월 57로 2009년 2월(43) 이래 최저까지 추락했다가 하반기 들어 오름세로 전환했다. 하지만 지표 상 지금도 앞날을 부정적으로 보는 대기업들이 훨씬 다수인데다, 국내에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직전인 지난 1월(83) 수준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다행히 기업 업황이 최악의 고비는 넘긴 것으로 보이지만, 확실한 V자 반등을 이루지 못하면 장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은행들로서는 대기업 여신 리스크 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