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 "검찰개혁,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지금은 되레 '친정권' 세력이 개혁 칼자루 잡아
내부 반발에 국민도 의구심…개혁 정당성 붕괴
"단순 검란에 그치는 상황이 아니라 민란 수준"
자칭 '촛불혁명'으로 집권했다는 문재인정권의 통치 명분과 정당성이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무리한 '찍어내기' 작업으로 인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헌법학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법치주의가 문민정부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고 진단했다. △현 정권이 추진하는 이른바 '검찰개혁'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에서 나타난 공직사회의 모습 △문재인 대통령의 침묵 등이 모두 문제라는 지적이다.
허영 교수는 최근 법률신문과의 대담에서 "검찰은 준사법기관으로서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기관이기 때문에,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며 "검찰총장의 임기를 2년으로 정한 것도 그런 취지이지만, 지금 그 자체가 위협받는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허 교수의 지적대로 '검찰개혁'이란 정권의 눈치를 보며 '살아있는 권력'에 부화뇌동해 검찰권을 휘두르는 현상을 방지하고, 검찰권 행사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게 옳은 방향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친정권'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주체가 돼서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던 검사들을 개혁 대상으로 내모는 본말전도의 현상이 보인다.
정치권 관계자는 "문재인정권이 '검찰개혁'이라는 타이틀을 휘두르고 있는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나 그 뜻을 맹종하는 몇몇 '정치검사' 같은 사람들을 개혁하자는 것 아니냐"며 "개혁의 대상이 돼야할 사람들이 주도자가 돼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권력에 줄서고 정권의 눈치 보는 일을 없애자'는 검찰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한다"면서도 "그런 (권력에 줄서고 정권의 눈치 보는) 사람들이 주도를 해서 제대로 일을 하는 검사들을 찍어내고 좌천시키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개혁 대상이 주체가 돼서 칼자루를 잡고 휘두르려는 현상은 일반 국민들 뿐만 아니라, 당장 조직 내에서 누가 개혁돼야할 대상이고 누가 개혁을 주도할 자격이 있는지 뻔히 아는 구성원들의 반발을 자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 출신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추천을 받아 임명된 한동수 대검찰청 감찰부장은 지난 27일 수도권 소재 검찰청 부부장검사에게 전화해 "진정한 '검찰개혁'에 동참할 생각이 없느냐"며 감찰부 파견근무를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제안은 그 자리에서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용규 인천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도 법무부 감찰담당관실로 파견을 명받았지만, 파견근무 하루만에 인천지검으로 다시 복귀했다. 감찰담당관실로 가자마자 윤석열 총장을 대면조사할 것을 지시받았는데, 이에 "무리한 감찰"이라며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검사장 출신인 석동현 변호사는 "개개인별로 엉터리도 있을 수 있지만 검사들 대다수는 '아닌 것은 아니다'고 한다"며 "정상적인 법률 교육과 직무연수를 거친 검사들은 적법·정당하지 않으면 정치권력자들 뜻대로만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법무부·검찰 조직내 개혁 대상이 스스로 주체가 돼서 칼자루를 잡는 모습은 비단 검찰 내부에서의 반발만 촉발하는 게 아니다. 국민들 사이에서도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며, 집권 세력이 그토록 되뇌이던 '검찰개혁'의 정당성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대국민 여론조사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배제·징계청구 조치가 잘못됐다는 응답이 월등히 높게 나타난 게 그 방증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단순히 검란에 그치는 상황이 아니라 민란 수준 아니냐"고 말했다.
리얼미터가 교통방송의 의뢰로 지난 25일 추미애 장관의 윤석열 총장 직무배제 처분에 대한 평가를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 56.3%가 "잘못한 일"이라고 답했다. 특히 그 중 국민 과반인 50.3%는 "매우 잘못한 일"이라고 답해, 추 장관의 처분을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추 장관의 처분이 "잘한 일"이라는 응답은 38.8%에 그쳤으며, 그 중에서도 "매우 잘했다"는 응답은 30%선에도 못 미치는 28.7%에 머물렀다. 여론조사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