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단 인사서 새 인물 발탁 통해 안정 속 ‘변화’ 추구
임원 인사는 40대 젊은 인재 전진 배치 등 혁신 예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말 인사를 통해 ‘뉴 삼성’을 위한 변화와 혁신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전통적인 성과주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대에 대비해 안정 속 변화를 적절히 꾀하고 있다.
2일 재계에 따르면 이날 단행된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삼성SDS 등 계열사 사장단 인사의 가장 큰 특징은 불확실성 증가로 조직 안정을 꾀하면서도 변화와 혁신 강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에서는 주력 사업인 반도체에서 사업부장들을 새로 교체했다.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메모리사업부장에 이정배 D램개발실장을, DS부문 파운드리(Foundry·반도체 위탁생산)사업부장에 최시영 글로벌인프라총괄 메모리제조기술센터장을 각각 사장으로 승진시키며 신규 선임한 것이다.
반도체 사업에서 가장 핵심이자 중추인 메모리사업에서 새 인물을 발탁한 것은 미래를 보다 선제적으로 대비하겠다는 포석이다. 또 올 들어 잇따라 성과를 낸 파운드리사업의 수장 교체는 성과의 속도를 더욱 높여 나가기 위한 주마가편(走馬加鞭·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한다)의 인사로 해석되고 있다.
또 이재승 소비자가전(CE)부문 생활가전사업부장(부사장)을 회사 최초로 생활가전사업부 출신 사장으로 승진시키며 전통적인 성과주의 기조는 재확인했다.
◆ 조직 안정 무게에도 인재 발탁…변화·혁신 의지 강조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글로벌 경영환경으로 인해 김기남 DS부문장(부화장)·김현석 CE부문장·고동진 IT모바일(IM)부문장(이상 사장) 등 3인 대표이사를 유임하는 등 조직 안정을 꾀했지만 변화와 혁신을 위한 의지는 강하게 피력한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SDS는 대표이사 교체를 단행하며 변화에 더 방점을 찍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최주선 대형디스플레이사업부장(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신임 대표이사에 내정했다. 최 신임 대표는 기존 직책인 대형디스플레이사업부장을 겸직한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설계 전문가로 활약하다 지난 1월 삼성디스플레이로 와 퀀텀닷 디스플레이 개발을 주도해 온 만큼 이번 인사는 연구개발(R&D)를 통한 디스플레이 기술 고도화와 함께 사업적 성과를 더욱 강화해 리더십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폴더블(접히는·Foldable)에 이어 롤러블(둘둘 마는·Rollable) 등 신기술로 제품 상용화를 꾀하고 스트레처블(늘어나는·Stretchable) 등 이 뒤를 이을 수 있는 새로운 기술 개발도 적극 꾀할 계획이다.
삼성SDS도 황성우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내정했다. 나노 분야 전문가로 불리는 황 신임 사장은 종합 기술원에서 소프트웨어(SW)를 포함한 다양한 개발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경험과 글로벌 역량, 풍부한 대내외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회사를 글로벌 IT 솔루션 기업으로 더욱 성장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또 이 부회장의 동생인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남편인 김재열 사장도 주목받았다. 그동안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스포츠마케팅연구담당 사장을 맡아온 김 사장은 새로 글로벌전략실장에 선임되면서 삼성의 글로벌 핵심 인재 영입에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됐다.
이번 사장단 인사는 예년에 비하면 인사 폭이 크지는 않다. 지난 2015년에 4명, 2017년에 7명, 2018년에 4명의 사장단이 교체된 바 있다. 코로나19로 불확실성이 증대된 상황을 감안하면 조직 안정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새로운 인물로 변화를 모색하겠다는 의지는 드러냈다.
특히 이번 사장단 인사로 전체 사장단 평균연령은 58세로 종전(59세)보다 한 살 젊어졌다. 보다 젊은 경영진들을 내세워 신성장 동력 발굴을 통한 새로운 도약을 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에서는 이번 사장단 인사에 대해 이 부회장이 그동안 ‘뉴 삼성’의 실현을 위해서는 유능한 인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온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그동안 능력만 입증되면 외부에서라도 적극 영입하는 등 인사에서 열린 자세를 유지해 왔다”며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영환경에서 기업과 그룹의 생존을 위해서는 유능한 인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이 부회장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다만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은 이뤄지지 않았다. 부친 이건희 회장이 지난 10월 말 별세하면서 회장 자리에 오를 수는 있게 됐지만 2건의 재판이 진행되는 등 사법리스크가 여전한 상황이어서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정기 인사와 별도로 시간을 두고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임원 인사에서는 안정보다 변화·혁신에 방점
사장단 인사에 이어 단행될 임원 인사에서는 변화의 폭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에서는 최고위층인 사장단 인사에서는 코로나19를 비롯한 변수들을 감안해 안정적 변화를 줬다면 실무 임원진 급에서는 혁신을 위한 변화에 초점을 맞춘 대대적인 쇄신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대표이사가 교체된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SDS는 물론, 사업부문장이 바뀐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와 파운드리사업부를 중심으로 젊고 유능한 인재를 대거 발탁하는 경향이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격변하는 시장의 속도를 감안하면 불확실성이 큰 미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초격차 경쟁력과 지위를 언제라도 잃을 수 있다는 긴장감이 변화와 혁신을 위한 새 인물 발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는 수장들의 변화가 없는 사업부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전망이다. 스마트폰과 네트워크사업이 주력인 삼성전자 IT모바일(IM)부문은 고동진 부문장(사장)이 유임된 가운데 노태문 무선사업부장(사장)과 지난 1월 선임된 전경훈 네트워크사업부장(사장)도 자리를 그대로 유지했다.
올해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에도 안정적으로 사업을 전개해 나간다는 전략이 읽히지만 추후 이뤄질 임원 인사에서는 변화 조짐이 감지된다. 이르면 3일 단행될 것으로 보이는 임원인사에서 IM부문은 40대 임원들을 적극 발탁하며 새로운 기술과 제품 개발을 통한 혁신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는 시장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불확실성이 그 어느때보다 강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최고위층은 교체하지 않으면서 실무 임원진들에서는 변화를 꾀해 조직 안정 속 혁신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의 별세 후 처음 단행되는 인사인 만큼 이재용 부회장이 변화와 혁신을 위한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계기로 삼으려 할 것”이라며 “불확실성 시대에 기업 생존을 위해 젊은 인재를 과감히 발탁하는 기조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