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사업 '브레이크' 역할해온 외교부
'눈엣가시' 한미워킹그룹 담당자 만난 날
"康 망언 두고두고 기억하고 정확히 계산할 것"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6개월 만에 발표한 담화문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직격했다.
표면상 북한 코로나19 대응에 '의문'을 표한 강 장관을 비판한 것으로 보이지만, 대미관계를 주도하고 있는 '외교부 흠집내기'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여정 부부장는 9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네 문장, 207자 담화문에서 "남조선 외교부 장관 강경화가 중동 행각 중에 우리의 비상방역 조치들에 대하여 주제넘은 평을 하며 내뱉은 말들을 보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었다"며 "속심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정확히 들었으니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강 장관은 지난 5일 바레인에서 열린 '마나마 대화'에 초청받아 진행한 연설에서 "북한이 우리 방역 지원 제안에 호응을 잘 하지 않고 있다"며 "코로나19 도전이 사실상 '북한을 보다 북한답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연구소 교수는 "강 장관 발언은 진의가 어떻든 '코로나19 확진자 제로'라는 북한 최고 지도자의 최대 성과를 정면에서 부인하는 모양새가"라며 "강 장관의 다소 신중하지 못한 발언은 결과적으로 남북관계 경색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한미관계를 총괄하는 외교수장만 콕 집어 때림으로써 보다 적극적인 한국의 '독자 행보'를 요구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박지원 국정원장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 안보·통일 인사들은 하나같이 대북사업에 적극적이지만, 외교부는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상대적으로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앞서 이인영 장관 취임 초 통일부가 속도를 냈던 남북물물교환 등 '작은 교역' 구상은 대북제재 저촉 우려를 제기한 외교부 영향으로 무산된 바 있다. 외교부가 통일부의 대북 드라이브에 사실상 제동을 건 셈이다.
북한은 그간 북한 이슈와 관련한 한미 협의채널인 한미워킹그룹을 노골적으로 비판해오기도 했다. 한국이 워킹그룹이라는 '올가미'에 묶여 미국에 '굴종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외교부 주도 워킹그룹에 대한 불만은 현 집권세력 내에서도 여러 차례 터져 나온 바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이인영 장관 등 정권 주요 인사 역시 워킹그룹 '조정' 필요성에 공감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외교부는 워킹그룹이라는 하나의 채널로 미 행정부 각 부처가 검토해야 할 사항을 통합해 논의할 수 있는 만큼, 기존 운영 방식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워킹그룹 책임자들이 머리를 맞대는 날, 강 장관 비판 담화를 내놓은 것은 한국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평가다. 워킹그룹 출범 당시부터 호흡을 맞춰온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은 이날 오후 외교부청사에서 회담을 가졌다.
태영호 의원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김 부부장 담화문이 "남북대화를 재개하려면 강경화 장관을 교체하라는 메시지처럼 들린다"고 밝혔다.
태 의원은 이번 담화가 "우리 정부 관계자들을 ‘입단속’시키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더 중요하게는 향후 남북관계에서 '주연'으로 등장할 김여정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김정은의 계산된 전술"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태 의원은 "북한은 앞으로 강 장관이 현직에 남아 있는 한 남북대화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내년 초 청와대 자체 인사교체 일정에 따라 강 장관이 교체되면 (북한이) 김여정 압력에 의한 조치로 간주해 대화 복귀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김 부부장이 "대한민국 입법권에 이어 인사권까지 개입하고 있다"며 "국회에서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이 통과되고, 앞으로 '청와대 인사시간표'에 따라 강 장관이 교체되더라도 마치 우리 정부가 김여정 요구에 의해 외교부 장관을 교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외교부는 이날 김 부부장 담화와 관련해 "(강 장관 발언은) 남북 간 방역협력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라는 짧은 입장을 내놨다. 강 장관 발언이 북한을 자극할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에둘러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